은행 '점심시간' 논란.."1시간 보장" vs "일 어찌 보라고"

조현아 입력 2018. 4.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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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융산업노조, 점심 휴게시간 1시간 보장 요구
은행원도 업무강도 높아..현행 근로기준법 적용해야
점심에 은행 문 닫으면 어떡하나? 직장인들 '불만'


【서울=뉴시스】조현아 위용성 기자 = 평균 연봉 9000만원, 말끔한 차림, 엘리트 느낌이 강한 은행원은 늘 선망받는 직업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은행원이 일의 고달픔을 조금이라도 토로하면 '배 부른 소리 한다'는 식의 거센 비판이 일곤 한다.

금융권 노동조합의 점심시간 1시간 요구로 은행원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은행권에 지난 2002년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고, 2009년 폐점시간이 오후 4시로 단축된 당시에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이번에도 노사 협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고객은 뒷전'이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은행원들은 다른 직장인처럼 점심 휴게시간을 갖겠다는 것인데 대체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평균 연봉만 놓고보면 화려해보일 수 있어도 실상은 실적 압박, 고객 응대 등으로 업무 강도가 높고 인력 감축 등 불안한 현실에 놓여있는 처지라고 말한다. 반면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점심시간에 은행이 문을 닫으면 불편을 어떻게 감수하라는 것이냐며 팽팽히 맞선다.

일단 노조는 중식 휴게시간 1시간 보장안을 협상 테이블에 내놨고, 노사는 다음달 10일 차기 대표단 교섭을 갖기로 했다. 은행권 점심시간 1시간 보장은 현실화될 수 있을까?

◇"교대로 식사, 휴게시간 보장 안 돼"

은행권 노조의 주장은 이렇다. 하루 8시간 일하면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이 주어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은행원의 휴게시간도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봉이 높은 은행원이라고 해서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노동존중 사회 구현'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일선 영업지점에 나가있는 은행원들은 점심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은행 문은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열려있지만 오전 8시 전에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고 문을 닫은 뒤에도 오후 7시는 돼야 일이 끝난다. 야근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고객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교대로 식사를 하는데, 다음 사람을 생각하다보면 20~30분 내에 얼른 먹고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A은행의 분당지점 은행원은 "점심시간에 밥은 거의 20분 만에 먹고 돌아온다"며 "지점에 직원이 20명 정도인데, 실제 상담창구에는 3명이 앉아있기 때문에 교대로 돌아가면서 밥을 먹다보면 점심시간 1시간을 기준으로 1명당 20분씩 밖에 못쓴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산하 금융경제연구소가 지난해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점심시간을 1시간 이상 사용하는 직원 비율은 전체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74%는 1시간 이내로 썼다. 이는 시중은행 14곳을 대상으로 전직원 7만4200여명 중 3만44명(45%)가 응답한 결과다.

해외의 경우 일본의 은행들은 대체로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은행들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미국 은행의 경우 점심시간에 대부분 영업을 하지만 폐점시간은 오후 3~6시로 각기 다르게 운영하고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지금처럼 점심시간을 교대로 쓰는 것은 시간대를 바꾼다 하더라도 휴게시간 보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라며 "사측에서 휴게시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다른 대안을 내놓는다면 은행 문을 닫을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 산업인데, 고객 생각은 안해"

반대 목소리도 높다. 근로자의 노동권도 중요하지만 당장 불편함은 고객이 감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직장인들 사이에 불만이 더 크다. 평일 오후 4시면 문을 닫고, 주말에는 아예 열지 않아 점심시간이 아니면 은행을 찾을 시간이 거의 없다. 은행들마다 점심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도 아니고 담합하듯 모든 은행들이 점심시간에 셔터를 내린다면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근 카드 재발급을 위해 회사 근처의 은행을 찾았던 직장인 김모(28)씨는 "평일에 은행 갈 시간이 점심시간밖에 없어서 다른 일을 보면서도 시간을 신경써야 했다"며 "그런데 점심시간에 문을 닫으면 아예 은행 갈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일괄적으로 점심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게 달가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대면 영업을 강화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야 하는 과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큰 돈이 오가는 대출 상담 등을 위해 은행을 찾는 수요도 많다.

가뜩이나 은행 점포축소 등으로 고객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데 주력 영업시간인 점심시간에 문을 닫으면 영업 자체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B은행의 한 간부는 "점심을 위해 문을 닫자는 것은 은행 영업 환경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의만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본다"며 "점심시간에 은행 문을 닫아놓으면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의 불만이 결국 어디를 향하겠느냐, 대부분 고객들은 '배가 불러 앓는 소릴 한다'고 느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비스 산업이라는 은행의 특성을 고려한 현실성있는 요구인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인력 충원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소비자가 이용하는 편의성 측면으로 볼 때 은행 문을 닫는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영업점에 인력을 더 배치하는 식의 조치를 취해야지 소비자에게 짐을 전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hach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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