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일본 언론보다도 북한에 관심이 없나

최원석 2018. 4. 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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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한국 기자도 사쓰마와리로 훈련합니다.’ 일본 기자를 만났을 때 이 말을 영어로 꺼낼 뻔했다. 일본어는 못 하지만 말을 걸고 싶었다. 반가운 척을 해보겠다고, 일본어에서 따온 말을 한국 언론계에서 수십 년 째 쓰고 있다고 이야기할 순 없었다. 여전히 몇몇 언론사가 도제식으로 수습 기자 기르는 일도 자랑은 아니라, 그저 한번 웃자고 저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지난 3월 19일부터 21일 핀란드에서 열린 남북미 1.5트랙 회담 취재 현장. 일본 기자를 만난 단상을 쓴다.

회담이 헬싱키에서 열린다는 소식은 갑작스러운 뉴스였다. 연합뉴스가 상보를 올리고, 핀란드 언론도 몇 시간 뒤 기사를 올렸다. 나는 알고 지내는 핀란드인 기자에게 연락해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반가워했다. 동북아 안보 문제를 꾸준히 다루는 핀란드 언론이지만 역시 구체적인 정보는 한국이 빨랐다. 본업은 미디어교육 대학원생이지만, 모처럼 생긴 취재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카메라 두 대와 삼각대를 챙겼다. 핀란드에 상주하는 한국 특파원이 없어 자료 화면을 촬영해두면 유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차하면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할 준비도 했다. 노트북과 휴대전화 배터리를 넉넉히 충전해 헬싱키로 갔다.

남한 및 미국 대표단이 머무는 숙소는 미국계 힐튼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엔 일본 취재진인 듯한 사람 몇이 눈에 띄었다. 고급 차량에 탄 채 주변을 조심스럽게 사진 찍는 무리도 보였다. 나는 우연히 현장에 와 있던 연합뉴스 베를린 특파원 이광빈 기자를 만났다. 이광빈 기자는 일찌감치 일본 취재진과 미국 측 인터뷰를 마쳤다고 말했다. 나는 KBS 런던 특파원 박재용 기자와 이광빈 기자 사이에 끼어 한국 대표단 한동대 김준형 교수를 인터뷰했다. 핀란드 공영방송 Yle 기자도 한국 취재진 덕분에 김 교수를 인터뷰했다.

각국 대표단의 일정과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중립국답게 입이 무거웠다. 일본과 핀란드 취재진이 북한 대표단 모습을 겨우 포착한 건 핀란드 정부가 예약한 저녁 식사 장소에서였다. 사아가(Saaga)라는 이름의 핀란드 라플란드식 순록 요리 전문점 앞이었다.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모습이 헬싱긴 사노맛에 영상으로 실렸다. 호텔을 벗어나지 않을 거로 생각한 나와 일부 핀란드 취재진은 식당으로 들어가는 대표단을 놓쳤다. ‘물 먹고’ 허탈해하는 건 이곳 기자도 비슷했다.

일본 기자들의 끈질긴 취재 태도가 눈에 띈 건 이때쯤이다. 일정 초반 주핀란드 일본대사관에서 회담을 진행한다는 오보를 일본 언론에서 내긴 했지만, 이들은 그물망을 펼쳐 놓듯이 달라붙었다. NHK는 런던 특파원과 함께 모스크바 특파원을 파견했고, 촬영진 세 명, 여기에 핀란드인 프리랜서 기자까지 통역으로 고용해 취재했다. 니혼테레비(NTV)는 한국인 직원을 서울에서 합류시켰고, 교도 통신과 TBS도 취재진 세 명을 보냈다. TV아사히는 일본계 프랑스인 기자, 런던 특파원 등을 포함해 적어도 다섯 명 넘는 취재진을 동원해 회담을 취재했다. 얼추 세어본 인원만 스무 명. 빠르게 이동하려고 택시 기사를 온종일 고용한 기자도 있었다. 북한 대표단 숙소도 일본 기자를 따라가서야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비공식회담이라 참관국 핀란드의 발표 외에는 새어 나오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본 취재진의 집요한 태도가 더 놀라웠다. 어떻게든 북한 측과 접촉하려고 하루 수십만 원을 통역과 차량에 지출하고, 적지 않은 인력을 회담 내내 동원하는 투자가 인상적이었다. 헬싱키 회담 직후 스위스에서 남북 관련 취재를 이어간다며 한국어 통역을 소개해 달라는 기자도 있었다. 종종 중요한 북한 관련 첩보를 일본 언론이 가장 먼저 보도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했다. 관심만큼은 일본 취재진이 훨씬 높아 보였다.

이번에 핀란드 공영방송 Yle 국제부에 들렀다가 한국 기사를 번역해서 읽는 기자를 봤다. 남북한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만 잘 활용해도, 한국 언론은 훨씬 더 깊이 있는 기사를 내놓을 여건을 지녔다. 북한 가계도와 권력 구조를 달달 외우고, 누가 어느 자리에서 사라졌는지 포착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큰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현장 취재와 검증 체계가 아쉽다. 억측과 상상, 요샛말로 ‘뇌피셜’ (근거없이 객관성을 주장하는 말)로 쓰는 북한 기사는 언제쯤 줄어들까. 한국 언론은 과연, 통일 소식을 가장 먼저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나. 가을 수확은 봄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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