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분수대] 드루킹의 송하비결

김남중 입력 2018.04.20. 01:48 수정 2018.04.20.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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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논설위원
때아닌 예언서 바람으로 스산하다. 중심은 『송하비결(松下秘訣)』이다. 19세기에 ‘송하 노인’이 썼다는 사자성어 형식의 예언서다. 『정감록』 『격암유록』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예언서로 꼽힌다. 2003년 해석본이 출간돼 맞네 안 맞네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언서란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기 일쑤다. 후대의 끼워 맞추기식 해석이 다분해서다.

송하비결을 다시 소환한 이는 댓글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모(필명 드루킹)씨다. 개인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에 수십 건의 ‘송하비결의 재해석’이란 글을 올린 게 알려지면서다. 그는 송하비결에 통달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블로그 글에 일단이 엿보인다. “2003년 송하비결의 해석은 엉터리이니 절대 보지 말라”든가 “해석을 제대로 하면 송하비결만큼 잘 맞는 예언서는 동서고금에 없다”고 되풀이해 언급한다. 그러면서 “토 달지 말고 내 해석을 보라”고 주문한다.

드루킹이 실현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예언이 2016년 6월에 올린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다. 그가 근거로 끌어다 해석한 예언서 원문 문구는 ‘북문북두(北門北斗) 만월지식(滿月之食)’이다. ‘궁궐의 우두머리(대통령)가 달이 차면 기울 듯이 권력이 사라진다’는 거다. 2002년 9월엔 ‘전야어유(田野魚遊)’란 문구에 ‘왕은 바보 노무현이 될 것이다’란 해석을 갖다 붙였다.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을 예언한 거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의결된 다음달인 지난해 1월 올린 ‘2017년 대선의 승자는 누구인가?’란 글에서다. ‘팔방성토(八方聲吐) 해룡기두(海龍起豆)’란 대목을 인용했다. ‘온 나라가 (촛불시위 등으로) 시끄러울 것인데, 바다용이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고 풀었다. 대선 주자 중 바다에서 태어난(섬 출신인) 사람은 문 대통령밖에 없으니 해룡은 문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란 해석이 기막히다.

문제는 예언으로만 끝나지 않아 사달이 난 거다. 드루킹이 이끈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이 댓글조작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자인했다. ‘안철수는 MB 아바타’라는 댓글이 대표적이다. 드루킹은 경공모 회원들에게 읊게 했다는 ‘옴마니반메훔’ 진언보다 약발이 셀 거라 여긴 ‘댓글’로 자신의 예언을 실현하려 했던 걸까.

‘예언가’ ‘사이비 교주’ 같다는 말이 나오는 드루킹의 음습한 그림자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언제 칼 품은 ‘감옥발 송하비결의 재해석’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시절이 하 수상해 드는 생각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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