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사무장 첫 비행 때 조현민 모친 안하무인..총수 일가 매뉴얼 따로 있다"

박주연 기자 입력 2018. 4. 21. 06:02 수정 2018. 4. 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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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땅콩회항’ 피해자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이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복직 후 교묘한 감시와 탄압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대한항공에는 총수 일가가 탑승했을 때 필요한 개인별 맞춤 서비스 매뉴얼이 존재해요. 일종의 갑질 매뉴얼이죠. 하지만 조 회장 가족들은 항상 기분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엄청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16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47)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러나 때론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9)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35)와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69)의 갑질 논란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에겐 이들의 갑질이 놀랍지 않은 일이다.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44·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4년 12월 일으킨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최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땅콩회항은 뉴욕발 대한항공 1등석에서 조 사장이 기내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난동을 부리고 비행기를 회항해 박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많은 국민이 박 사무장을 응원하고 조 사장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국민 요구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 사장은 2015년 5월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났고, 대법원 확정판결 후에는 사건 당시보다 높은 직급인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반면 박 사무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돼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약자에게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울분을 느낀다”며 “사측의 교묘한 감시와 탄압이 이어지고 있지만 항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 일가가 항공편을 이용해 해외에서 개인 물품을 불법적으로 들여왔다는 최근 의혹과 관련해선 “팀장직을 수행할 때 회장 일가의 물품이라며 기내에 싣는 것을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4~5번”이라며 “대한항공이 하루 수백 편 운항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물품을 들여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머리 뒤편에 있던 어른 주먹 크기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생긴 작은 종양이 몇 년 사이 수술이 불가피할 정도로 자랐기 때문이다.

- 수술은 잘됐습니까.

“의사가 한 달 후 다시 체크하자고 했어요. 양성종양이지만 혹시 두개골 모양이 변형될까 염려하더라고요.”

- 언제 생긴 건가요.

“처음 발견한 것은 2014년 조현아씨 사건이 나고 6개월쯤 후였어요. 머리 뒤로 작은 단추 크기의 볼록한 게 만져졌어요. 신경 쓸 일이 많아 방치했는데 1년쯤 지나자 지름 5㎝ 정도로 커졌어요. 병원에선 검사 결과 다행히 뇌 바깥쪽에 생긴 종양이니 추적관찰하자고 했어요. 그게 20㎝로 자라면서 수술하게 된 거예요.”

- 인스타그램에 ‘핵폭탄 같은 스트레스’로 종양이 생겼다고 썼어요.

“업무 복귀 후 작년 여름부터 스트레스가 컸어요. 돌이켜보면 조현아씨의 경영일선 복귀를 염두에 두고 사내에서 저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특히 사내 익명 블라인드앱을 통한 음해가 계속되고 그에 따른 조롱과 수군거림이 이어졌어요.”

- 어떤 음해였나요.

“조현아씨 사건 직후에는 저를 성추행범으로 모는 등 터무니없는 루머로 공격했지만 작년 여름부터는 사실에 기반한 공격이 시작됐어요.”

- 예를 들면요.

“작년 말 비행 중 하드랜딩(급격한 추락) 충격으로 제가 바닥에 넘어지면서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가 재발했어요. 당시 머리 종양 때문에 바로 눕지 못해 목에 담까지 온 데다 복용하는 불면증 약도 기내에선 먹어선 안되는 상황이라 몸상태가 최악이었어요. 당시 제 업무 중 하나가 면세품 판매였어요. 크고 작은 박스들을 올렸다 내리고 운반해야 하는데 무거운 것은 50㎏에 달해 힘든 작업이에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후배 둘에게 사정을 말하고 한국 도착 후 박스들에 자물쇠를 거는 일을 도움받았어요. 그러자 다음날 블라인드앱에 제가 일하기 싫어 주니어 승무원들에게 일을 떠넘겼다는 글이 앞뒤 정황설명 없이 올랐고 악플들이 달렸어요. 사측이 저를 감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한 증거예요.”

- 사측이 감시를 했다고요.

“한 후배가 안타까웠는지 어느날 차 한잔 하자고 하더니, 회사 노무팀에서 지속적으로 전화해서 제게 흠이 될 만한 게 없는지 캐물었다고 말해줬어요. 객실승무본부장이 팀장, 부팀장을 주기적으로 면담하면서 저의 동태를 묻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게 실체구나 싶었어요. 윗선의 지시로 저를 감시하는 눈들이 더 있을 것이라 직감했죠.”

복직 했지만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 …감시에 음해·조롱까지 소송은 동료들에게 불공정과 반칙에 항거함을 보이려 한 것 경영 복귀한 조현아씨,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등 이미지 관리 자긍심으로 일했지만, 사무장은 회장일가 식료품 심부름도

그는 땅콩회항 사건 후 산재를 인정받아 1년여간 휴직했다가 2016년 4월 복직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팀장직을 맡는 데 필요한 ‘(영어)방송자격 A등급’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라인팀장에서 일반승무원으로 강등시켰다. 이코노미석 구역에서 입사 1~2년차 주니어들이 하는 짐 올리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다. 박 사무장은 지난해 말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받았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부당징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 토익 840점대와 토익스피킹 150점대, 리스닝은 만점에 가까운 실력자던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는 이미 방송자격 A등급을 취득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2014년 조 회장이 선배 사무장의 기내 방송이 마음에 안 든다고 버럭 화를 내자 모든 팀장의 방송을 재점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2015년까지 유예기간을 주면서 영어시험을 다시 치르게 한 거예요. 그러나 저는 2015년 휴직한 터라, 기회가 별로 없었고, 회사는 그걸 빌미로 불이익을 주는 거죠. 해당 영어시험은 대한항공이 주최하고 일반 여승무원이 채점관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오너 입맛에 맞게 등급을 결정할 수 있거든요.”

- 조현아 사장을 상대로 땅콩회항 사건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 2억원, 사건 이후 허위 진술을 강요한 대한항공에도 1억원의 손해배상도 이번에 같이 청구했죠.

“회사는 이 소송이 제가 사익을 위해 제기한 것으로 여론몰이 중이지만 민사소송에서 이기고 지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소송을 제기한 목적은 불공정과 반칙에는 우리도 단호히 항거해야 함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자 함이에요. 동료들도 각성하고 깨어나기를 바라요.”

- 노조는 도움이 안됐나요.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요.”

대한항공 3대 노조(대한항공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새노동조합) 중 객실승무원들이 유일하게 가입할 수 있는 대한항공노동조합은 전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사무장은 노조원이 아니어서 노조가 나설 수 없다”고 했다. 과거 팀장을 맡으면서 자동탈퇴됐고 재가입하려면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박 사무장은 자신의 3월 급여명세서에 기재된 노조비 공제내역을 보여주며 “노조원이 맞다”고 말했다.

- 동료들에게 섭섭함이 크겠어요.

“재판 과정에서 저와 가까웠던 동료 일부가 총수 일가에 잘 보이기 위해 저를 모함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어요. 지금도 저더러 관종이라거나, 심지어 제 머리에 난 혹도 ‘고기 먹어서 난 혹이라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분이 있어요. 그들의 자발적 복종이 안타까워요.”

- 자신이 언젠가 ‘제2의 박창진’이 될 수도 있는데, 이해할 수 없네요.

“두려움 때문이겠죠. 선례가 있어요. 2000년대 초반에 객실승무원들의 민주노조를 만들려다가 사측에 의해 파괴됐어요. 당시 사측은 주동자들을 색출했고 지금 저와 같은 과정을 겪게 했어요. 그 결과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거나 좌천돼 지금도 하위직에 머물러 있죠. 직원들은 총수 일가의 눈 밖에 났을 때 어떻게 불이익이 극대화되는지를 목격했기에 쉽게 나설 수 없는 거예요. 회사가 저를 원상복직시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그래도 이번에 조현민 전무의 욕설 음성파일을 언론에 제보한 대한항공 직원은 “겁도 나지만 박창진 사무장을 보면서 힘을 낼 것이고 후회는 안 할 것이다”라고 밝혔어요.

“제가 버티고 싸우는 이유예요.”

- 비행하면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자주 접했겠지요.

“대한항공은 비공식적으로 VIP전용 승무원제를 운용했어요. 저는 입사 1년차 때부터 발탁됐죠. 3년차 됐을 때 대리급으로 승진했는데 그때는 국내선에 한해 대리급부터 사무장 업무를 수행했어요. 사무장이 되어 제가 처음 차출된 것은 이명희 이사장이 경기여고 동문들과 지방으로 놀러가는 비행이었어요. 그분의 안하무인 태도를 보며 문제가 참 많다고 생각했어요. 대한항공에는 총수 일가가 탑승했을 때 서비스 매뉴얼이 따로 있어요.”

- 매뉴얼 내용이 뭔가요.

“조 회장과 세 자녀에 대한 개인별 맞춤 서비스 매뉴얼인데 내용이 엄청나요. 가령 두 번 물어보면 안된다, 말대꾸하면 안된다, 탄산수를 좋아하니 물이라고 하면 반드시 탄산수를 가져다줘야 한다, 짐은 꼭 먼저 받아서 올려줘야 한다, 누군가에겐 눈을 마주치면 안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눈을 마주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자세히 설명돼 있어요. 일종의 갑질 매뉴얼이죠. 하지만 조 회장 가족은 항상 기분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서비스하는 승무원들은 엄청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 부부 서비스 매뉴얼. ‘사모님 탑승 시 핫팩을 반드시 준비하라’ 등의 지시사항이 있다.

- 조현민 전무는 어땠나요.

“제가 처음 모셨을 때 조 전무는 임원이 아니었는데도 승무원을 대놓고 무시했고 정확한 문장으로 말하는 경우도 없었어요. ‘물 주세요’가 아니라 ‘물’, 뭔가 불만이 있으면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식이죠. 승무원들은 매뉴얼대로 당연히 해야 하는 말도 꺼내기 힘들어했어요. ‘음료 드시겠습니까?’라고 하면 ‘뭐야!’라고 반응하니까요. 한번은 착륙할 때 좌석을 똑바로 세워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여승무원이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해서 제가 가서 ‘착륙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아, 참, 나…’라고 하더군요, 오만함과 교만함이 그들의 공통된 특징이에요.”

- 이명희 이사장과 조 전무로 추정되는 사람이 각각 고성을 지르며 욕설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땅콩회항 사건 당시 상황이 더 명확히 유추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아요.

“당시 제가 조현아씨를 ‘야수였다’고 표현했더니, 사람들은 믿지 못했어요. 조현아씨는 지금 공개된 조 전무의 고성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고성과 욕설을 퍼부었어요. 하지만 저는 당시 녹음한 것도 없고 같이 있었던 동료들도 거짓 증언을 해 답답했죠. 저 혼자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 조 회장도 그런가요.

“일화가 있어요. 2011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몽골 방문 때 경제사절단으로 28개사가 같이 갔어요. 몽골공항이 협소해서 보잉747인 대통령전용기로 못 가고 중형기인 에어버스330으로 갔는데, 경제인들이 탄 비행기에 제가 사무장으로 올랐어요. 자리로 가서 조 회장께 인사드렸더니 늘 그렇듯이 인사를 받지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이후 건너편에 있던 다른 대기업 사장들께 인사하니까 그 자리에 앉아계시던 두 분 사장님이 ‘어이 사무장’ 하시더니, 귀엣말로 ‘조양호 저러는 거 우리가 다 아니까, 걱정하지마’ 하셨어요.”

- 고마웠겠어요.

“참담하고 수치스러웠죠. 저는 승무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데 우리의 보스가 정말 젠틀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면 좋잖아요. 조 회장 일가는 자신들만 세상의 주인공이고 타인의 삶은 세트장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조 전무도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잘못을 뉘우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저는 그가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정말 반성했다면 제게 지속적인 음해와 불이익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 조현아 사장이 최근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빠르게 복귀한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약자에게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울분을 느꼈어요. 심지어 2심 재판부와 대법원에서 조현아씨의 항로변경에 대해 무죄라며 면죄부를 줬잖아요. 권력층끼리 촘촘히 엮여 있고 서로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23년간 대한항공에서 성실히 일했고 국민으로서도 충실했어요. 그럼에도 제가 공들여 살아왔던 시간들은 함부로 취급되고 빼앗겼어요. 반면에 저들은 돈과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손쉽게 모든 것을 회복했어요. 저는 국가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느껴요.”

(위)\'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4년 12월 30일 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송되기 위해 서울 서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가운데)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4년 12월 30일 오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아래)\'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2018년 4월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 국가에는 왜요.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조 회장이 나서고 지원주자로 조현아씨가 같이 뛰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어요. 한진그룹이 올림픽에 후원을 많이 했는지 모르지만 조 회장 일가의 이미지 세탁 수단을 국가가 제공한 거잖아요.”

- 땅콩회항 사건 직후 외상후 스트레스, 신경쇠약,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죠. 산재판정을 받고 1년 정도 휴직하는 동안 뭘 하며 지냈나요.

“공황장애가 심해 6개월 정도는 병원에 갈 때 외에는 집 밖에 거의 못 나갔어요. 체중이 10㎏ 이상 빠져 60~62㎏밖에 안 나갔죠. 죽음을 생각하고 실행 직전까지 갈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다보니까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했어요. 잘못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버림받고 가까웠던 동료들까지 등을 돌리는 상황을 맞는다는 것은….”

그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 잠시 물기가 고였다가 사라졌다. 그의 고통이 느껴졌다.

- 목숨을 스스로 놓으려 했다고요.

“당시 큰누님이 갑상선암 말기였어요. 2015년 1월에 수술날짜가 잡혀 있었는데, 제 사건이 터지자 저를 돌보기 위해 집에 와 계셨어요. 그런 누님이 죽음을 결심한 제가 새벽에 베란다 문을 연 채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붙잡고 우셨어요. ‘말기 암 상황에서도 내가 너를 온전한 자리로 되돌려주고 싶어 애쓰는데 어떻게 네가 네 목숨을 쉽게 생각하느냐’면서요. 그때 같이 울면서 결심했어요. 죽을 결심까지 했으니 죽을 각오로 가보자고요. 사람들은 몰라요. 남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해요. 지금도 많이 아프지만 저는 더 정상인처럼 보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조현아씨가 재판부에 아들 쌍둥이 얘기를 하며 선처를 호소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구순인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이 상처받은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 건강은 당시보다는 좀 나아졌나요.

“좀 좋아지긴 했지만 공황장애와 불면증은 완치되지 않았어요.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끔씩 어떤 견디기 힘든 상황에 놓이면 머리 위까지 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점점 숨을 못 쉬는 상황에 처해요.”

- 박 사무장과 땅콩회항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였던 여승무원 김도희씨가 2015년 7월 각각 미국 뉴욕 법원에 제기한 민사소송은 각하됐지요. 당시 박 사무장이 내건 소송액이 500억원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은 1억원이었다면서요.

“사건 초기 국내 30대 로펌들을 찾아갔지만 저를 변호해주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었어요.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더 큰 고객인 대한항공에 밉보일 수 없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알아요. 그러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저를 돕겠다는 변호사를 소개받았는데 결과적으로 변호사도 아니었고 사기였어요. 이분을 이상하게 생각한 분들이 찾아와 이분이 저도 모르게 네이버카페를 만들고 모금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줘서 알았어요. 저는 500억원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 땅콩회항 사건 이후 삶이 180도 달라졌어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되고 있어요. 용기를 내 진실을 말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나요.

“회사가 사건의 원인을 저 한 명의 원죄로 몰기로 하고 동료들에도 입을 맞추도록 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당시 결국 언론에 진실을 말한 것은 벼랑 끝에서 더 밀리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것 또한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경남 거제 출신이다.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거제에서 고교까지 다닌 후 부산의 동아대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토익 840점을 받을 정도로 영어실력이 우수했던 그는 대학 4학년 때인 1996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롯데호텔, 한일은행에 동시에 합격했다. 그는 대한항공을 선택했다.

- 왜 승무원이 됐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셨는데, 외국에서 엽서와 선물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야자수 옆에 원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엽서였어요. 승무원이 된 후에야 그곳이 뉴질랜드 피지섬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저는 이국의 엽서와 사진을 보며 세상을 누비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또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시 김찬삼씨의 <세계여행기>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승무원이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거죠.”

- 승무원 일이 잘 맞았나요.

“십수년 전만 해도 항공기 승무원을 민간외교관이라고 했어요. 만족감과 성취감, 그리고 대한항공 승무원이라는 자긍심이 컸어요. 열정적으로 일했고 자기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매일 1시간 이상씩 운동을 해서 한번도 유니폼 사이즈를 늘려본 적이 없어요. 또 내적 관리를 위해 화법과 태도에 관한 공부는 물론, 철학서, 패션지, 시사지 가리지 않고 독서도 꾸준히 했어요. 대한항공의 성장은 오너 일가만의 힘으로 된 게 아니에요. 저 같은 수많은 노동자가 피땀을 흘리고, 국민들이 무한한 애정을 줬기 때문이죠.”

- 언제 보람을 느꼈나요.

“정말 많은데, 특히 탑승객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됐거나 처음 비행기를 타본 분들이 환하게 웃으며 잘 대접받은 기분을 느끼셨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덕분에 고객들이 주는 상도 수없이 받았고요.”

미국 LA 한인행사 때 대한항공 모델로 나선 박창진 사무장(오른쪽).

-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대한항공에서 제 목표는 진급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본받고 싶은 승무원이 되는 거였어요. 사건 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공부하고 운동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

우문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왜 온갖 모욕을 견디며 대한항공에 남아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현답이 돌아왔다. 그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인생의 주체로서 자신이 지금껏 공들여 일궈온 일과 직장을 왜 부당한 존재들에 의해 강탈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것이다.

그의 뜻이 통한 것일까. 요 며칠 새 조 회장 일가와 관련된 대한항공 직원들의 내부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20일 추가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 조 회장 일가가 해외에서 필요한 물품을 밀반입하기 위해 내부 전담팀을 운영했고, 주로 감시가 소홀한 새벽시간 항공편을 이용해 다양한 물품을 들여왔다는 직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어요.

“저도 팀장직을 수행하면서 4~5번 목격한 일이에요. 세계 각 지점의 현지 직원들이 회장 일가의 개인적인 심부름으로 고가품이나 식료품 등을 구매한 후 이륙준비를 위해 기내에 미리 탑승해 있는 사무장에게 전달해요. 한국 도착 후엔 지상 직원이 와서 찾아가고요. 현지에서나 도착 후 통관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 여부는, 추정은 가능하지만 장담할 순 없어요. 대한항공이 하루 수백 편씩 운항되기 때문에 회장 일가의 사적 물품이 얼마나 반입됐는지도 알 수 없고요.”

수술을 위해 병가를 냈던 그는 5월1일 다시 업무에 복귀한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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