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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3시간 넘게 폭행, 남자가 남긴 어이없는 한마디

남지우 입력 2018.05.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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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BS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 "폭력인지 헷갈린다면, 그건 폭력"

[오마이뉴스 남지우 기자]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정부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함에 따라, 각종 데이트폭력 사례에 대한 호소와 폭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작년 2017년 일어난 데이트 폭력은 1만303건으로, 지난 4년간 1000건 이상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전에는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을 '지나치게 사적인 것' '사랑싸움'으로 치부해버렸지만 이제는 정부와 입법부가 나서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2일 방송된 KBS 2TV 시사 프로그램 <추적60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들을 듣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남자친구였던 가해자의 폭행으로 전치 7주의 진단과 뼈에 쇠를 박는 수술을 받게 된 피해자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른 남성과의 관계를 의심한 가해자의 폭행으로 열흘 간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세상을 떠난 여성의 이야기까지, 방송 내내 물리적인 폭행을 동반한 데이트 폭력의 사례를 나열하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특히 광주서부경찰서에 불려온 한 남성이 "사랑하니까(폭력으로 여자 친구를 벌할 권리가 있다)"라고 증언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논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차에 태워 세 시간 가량 폭행하고 그 이후에도 폭력을 일삼았다. 그는 연인 관계의 '사랑'을 모든 폭력의 정당함으로 치환하는 비합리적인 사고를 내비치고 있었다.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사랑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남성들의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전문가는 "데이트폭력이라 따로 이름 불릴지라도, 이는 언어상의 차이일 뿐이지 일반적인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며 "데이트폭력은 곧 감금, 성폭력,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표창원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은 "데이트 폭력은 일반적인 폭력보다 더 위험한 범죄"라며 "상습적이고 지속될 것이며, 끔찍한 잔혹 범죄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는 범죄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데이트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시선들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데이트 폭력'이라는 명칭이 그 범죄 내용의 심각성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데이트 폭력'을 일반 범죄와는 다르게 분류해 더욱 강하게 처벌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폭력 등 가해를 한 행위자가 '내가 널 사랑해서 그렇다'라고 피해자를 설득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부조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남자친구에게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송은 두 가지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폭력을 당한 것이라 생각하는 '정당화' 현상이다. 이는 오류를 바로잡기보다 행동에 맞춰서 자신의 생각이나 목표를 바꿔버리는 현상으로,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당당히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방해하고 가해자가 자신을 때린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결과를 낳는다.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이러한 정당화 현상은 피해자 마음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쟤도 저런 사람을 만난 게 잘못이야'라고 피해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연인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서만 유독 그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검열 없이 발생한다는 것.

두 번째는 피해자의 이타적 망상이다. 가해자를 사법처리로 넘기더라도 피해자는 자신이 고발한 가해자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고 '한 번 더 봐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의 성향을 자신이 바꿀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으로, 이는 가해자를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호소하는 피해 여성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심리다.

이에 대해서 중앙대학교 이나영 교수는 "내가 상대방의 폭력적 행위를 받아줌으로 인해서 그 사람을 보듬어주고 그 사람의 상처를 안아주면서 내가 오히려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라고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자신의 피해 경험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라고 부연했다.

'왜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냐'고 묻기 전에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이렇듯, 폭력 이후의 여성들은 공통적인 범주의 심리현상을 보이며 "피해 여성들은 가해자를 왜 떠나지 못 하냐"는 비난 섞인 물음에 대답한다. 그것은 피해자들이 바보라서도 아니고, 피해 경험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 원치 않는 정당화의 과정을 겪기 때문에 폭력을 폭력이라 인식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데이트 폭력 범죄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금, 우리는 해외의 어떤 사례들을 참고해 더 나은 법안을 만들 수 있을까. 방송에서는 다양한 외국 사례를 보여줬다. 영국엔 잠재적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위한 '가정폭력정보공개청구제도' 이른바 '클레어법'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1994년 일찌감치 '여성폭력방지법'을 제정해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범죄를 준엄하게 다루고 있다. 호주에서는 2012년 '가정 및 가족 폭력 보호법'을 통해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가정폭력의 범위에 넣으면서,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했다.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방송 말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홍영호 박사는 "폭력인지 아닌지 헷갈리면 일단 폭력으로 인식을 해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폭력의 여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의 발생 자체가 데이트 폭력이고, 경찰의 힘을 빌려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사소한 폭력이더라도,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인식의 전환 또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 날 방송에서는 물리적인 '폭행'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데이트 폭력의 사례들에 대해 다뤘지만, 앞서 언급했듯 어떤 행동이 사소하다 느껴진다고 해서 폭력이 아닌 것은 아니다. 데이트 폭력은 언어폭력, 성행위의 강제, 감시와 일상 규제 같은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모든 '사소함들'을 폭력이라 인지하는 것이 데이트 폭력 근절의 첫 걸음이 된다.
2일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악마가 된 연인-데이트폭력'의 한 장면.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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