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유와 성찰]레이디 버드와 소공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입력 2018.05.0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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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 상당수에 여성들은 입학할 수 없었다. 그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그러한 편견에 굴복하고 말았을까? 그럴 리가. 19세기 중후반부터 생겨난 ‘세븐 시스터스’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명문 여대들이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물론 그들은 먼저 연애를 했다. 1970년에 만들어져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쓴 영화 <러브 스토리>는 당시 남자대학이었던 하버드 학생 라이언 오닐과 여자대학이었던 래드클리프 학생 알리 맥그로 간의 연애를 그리고 있다. 연애 혹은 학업을 통해 자신을 단련한 여성들 중에서 결국 사회적 리더가 배출되었다. 캐서린 헵번과 같은 배우는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4번이나 받았고, 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고, 드루 길핀 파우스트는 하버드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일본 유학생은 귀국하여 일본에 쓰다주쿠대학(津田塾大學)이라는 여자대학을 세웠다.

그러한 여자대학에서 생애 첫 직장을 얻게 된 것은 내 쇄골에 떨어진 작은 행운이었다. 그곳에는 정말 미숙하지만 에너지가 폭발하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른바 ‘레이디 버드’들. 그래서 당시 30대 한국 남성이 경험할 수 없었던 레이디 버드들의 웃음, 울음, 괴성, 논변, 항변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서가 도서관 지하실의 고서 무더기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19세기 말 졸업생 한 명이 한국을 여행하며 사들인 고서예요. 손주들이 할머니 모교에 기부했죠.” 즉 당시 한국이라는 먼 나라까지 찾아온 서양 여성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여행기를 남긴 이사벨라 비숍만이 아니었다. 에너지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레이디 버드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 선글라스를 끼고 “I want to take issue with that(이의 있소)”라는 말을 즐겨 쓰던 기타리스트 J는 졸업식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대륙을 횡단할 거예요.”

세월이 흘러 나는 그곳을 떠났고, 한국의 남녀공학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는 중년 남자가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미국 여학생의 대학 진학 전야를 다루었다는 영화 <레이디 버드>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밤이 깊었고, 검토해야 하는 수업자료가 산적해 있었지만, 옛 학생들을 재회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서 동네 극장으로 갔다.

미국 여학생의 좌충우돌 성장기 같은 것은 이 땅에서 인기가 없는 것인지, 관객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하필 혼자 온 여자(대학생?) 옆에 자리가 배정되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레이디 버드>를 혼자 보러 오는 중년 남자는 달리 없는 탓인지, 아니면 무릎이 나온 추리닝을 입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녀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마치 바바리맨을 보는 것처럼. 억울했다. 항변하고 싶었다. “난 직장에서 당신 같은 사람을 일상적으로 보고 살며, 미국에서는 여자대학이 직장이었다. 그리고 배우 전도연을 닮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왜 날 바바리맨으로 취급하는가. 나를 추리닝맨이라고 하는 건 참을 수 있다. 사…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를 바바리맨으로 간주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난 바바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항변을 포기하고 그냥 영화를 보았다. 중년의 추리닝맨은 남북관계를 고민하느라 많은 것들이 귀찮으니까. 그런데, 내 옆의 그녀가 영화 후반부부터 울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의 갈등이 격화되는 부분에 가서는 소리 내어 흐느끼기까지. 직장에서라면 교수의 탈을 쓰고 근엄하게 위로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슬퍼 말아요. 고기를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그러나 동네 극장에서 나는 한갓 추리닝맨에 불과했다. “잘 추스르고 무사히 귀가하길 빌어요”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에는 한국판 레이디 버드라는 <소공녀>를 보러 갔다. 전날의 과오를 반성하며 이번에는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영화를 보러 갔다. 혼자 이 영화를 보러 온 중년 아저씨 관객은 이번에도 나뿐인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내가 흐느껴 울 것 같은 영화였다. <레이디 버드>에 나온 여학생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불우했기에 결국 노숙자가 되고 만 여자주인공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의연하고 강한 사람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쫓겨나 어디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노숙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서 가서 이 시대의 가장 의연한 캐릭터를 만나 보시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