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통일 대비 300조 한반도 뉴딜 열릴까'

송진식 기자 입력 2018.05.05. 13:51 수정 2018.05.06. 04: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문 대통령이 오시면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환담하면서 건넨 말이다.

정상회담은 철저히 ‘계산된 만남’이다. 하물며 10년 넘게 대립하다가 극적으로 열린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허튼말을 꺼냈을 리 없다. 김 위원장은 “평창 고속열차가 좋다고 들었다.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말을 이어갔다. 낙후된 북한의 교통인프라 개선을 좀 도와달라는 뜻이다. 그리고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과 현대화가 남북 간 경협 관련 사안으로는 유일하게 선언문에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 수행원 없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판문점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이 건넨 USB 받아들일 것”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김 위원장의 의도는 분명하다. 본인이 천명한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경제부문을 개방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중심으로 낙후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시설(SOC)에 대한 남측의 대대적인 투자와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통일연구원이 추산하는 통일비용은 831조원, 이 중 북한 SOC 구축에 필요한 비용은 289조원이다. 민간부문에서 통일에 투자할 2790조원을 제외한 수치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될 이른바 ‘한반도 뉴딜’은 열릴 것인가.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이기도 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담긴 휴대용저장장치(USB)를 김 위원장에게 건넸다. 신경제지도 구상에 대한 북측의 공식적인 반응은 아직까지 없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 구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홍순직 국민대학교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구상에서 언급된 내용의 상당수는 이미 북한이 2011년 공개한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며 “북한이 특히 전력과 에너지난이 심각해 관련 SOC에 대한 투자유치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한반도를 에너지·관광 중심의 ‘환동해 경제벨트’, 생태·녹화 중심의 ‘접경지역 평화벨트’, 첨단산업·물류 중심의 ‘환서해 경제벨트’ 등 이른바 ‘H형’ 벨트로 묶어 개발해 통일시대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 구상은 문 대통령만의 발상도, 단기간에 짜여진 계획도 아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대북정책을 거치며 남북한이 경색국면에 있는 와중에도 통일 한반도를 대비한 통합경제개발 정책은 마련돼 왔다. 홍 수석연구원은 “역대 정부의 북방정책을 선택 계승하는 한편, 북한의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5개년 경제개발계획 등 최근의 경제·핵 병진 노선,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등 변화된 정치·경제 여건을 고려해 만든 게 신경제지도 구상”이라며 “단기적 성과보다는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지향하는 게 구상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구상’ 단계지만 이르면 5월 중 구체적인 계획안이 마련돼 확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직 확정된 계획이 아닌 탓에 구상안의 세부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7년 발간된 <국정자문기획위 백서>에 언급된 대략적인 신경제지도 구상의 내용을 보면 실제 북한의 10개년 전략계획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백서에서는 환동해 경제벨트의 경우 ‘금강산~원산’, ‘단천~청진’, ‘나선’을 남북이 공동개발한 후 동해안과 러시아를 잇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원산의 경우 동해선은 물론 서울과도 연결되는 ‘경원선’의 합류지로 대표적인 교통의 요충지다. 북한도 10개년 계획에서 원산을 출발점으로 하는 철도와 고속도로의 신설을 언급한 바 있다. 단천~청진 구간은 단천, 김책, 청진 등 북한의 대표적인 공업도시가 몰려 있는 지역이다. 북한의 10개년 계획에도 ‘김책 광업제련단지’, ‘청진 중공업지구’ 조성이 포함됐다.

단천은 마그네사이트, 아연, 금, 철 등 많은 광물이 매장돼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자원지대다. 국토연구원은 통일 대비 북한에서 수행할 수 있는 11개의 핵심 개발 프로젝트에 ‘단천 자원특구 개발’을 별도로 넣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김책, 청진 등을 공동개발하는 과정에서 단천 일대 지하자원을 활용해 남한이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 및 중국과 국경을 인접한 나선(나진과 선봉) 지역은 이미 북한이 경제무역지대로 선정해 북한 개혁개방의 상징이 된 곳이다. 북한이 10개년 계획에서도 나선 석유화학 중공업지구 개발을 언급했고, 2015년 11월 발표한 종합개발계획에서도 관광과 물류 등을 포함한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나선 일대에 관광지, 산업구, 내수기업 등 부문별로 18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게 종합계획의 골자다.

환서해 경제벨트의 경우 수도권부터 개성공단, 평양, 남포, 신의주를 연결해 산업·물류·교통 벨트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남포는 10개년 계획에서 북한이 IT산업단지로의 육성을 천명한 지역이다. 신의주는 북·중 왕래와 무역의 요충지로 북한에는 더없이 중요한 곳이고, 남한에도 중국의 대륙횡단철도(TCR)와 남한의 철맥을 잇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수도권부터 신의주까지를 잇는 작업은 북한과 남한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

경의·동해선은 시작일 뿐

문 대통령은 이처럼 ‘원대한’ 구상을 김 위원장에게 제시했지만 정작 선언문에는 경의·동해선 문제만 언급됐다. 유엔의 대북제재 탓에 경협문제 논의를 최소화한다는 게 양측 정상의 입장이었지만, 경의·동해선의 언급은 상징 차원을 넘어 당장 남북이 실행할 수 있는 경협사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은 2003년 단절구간 공사가 완료돼 이미 연결이 끝난 상태다. 남북이 합의한 만큼 일부 철로에 대한 보수만 진행하면 열차 운행이 가능하다. 동해선은 강릉~금강산 구간을 잇는 게 핵심과제인데, 북한의 금강산역부터 남한의 제진역까지는 2004~2005년에 복원이 끝나 남북 간 철도 연결은 완료된 상태다. 이 때문에 동해선은 남측 미연결구간인 강릉과 제진 간 110.2㎞ 구간만 선로를 새로 놓으면 남북 연결이 최종 완성된다. 강릉과 제진은 모두 남한지역이므로 유엔 제재 여부와 관계없이 공사가 가능하다. 강릉~제진 구간과 더불어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부산~삼척 간 공사가 완료되면 부산부터 북한을 지나 러시아의 대륙횡단철도(TSR)를 잇는 철도망이 완성된다.

강원연구원이 올 3월 추정한 바에 따르면 동해선 강릉~제진 간 공사에 필요한 예산이 2조3000억여원, 이미 공사 중인 부산~삼척 간 소요 예산까지 더하면 남한측 동해선 사업비는 5조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복선화 구간이 3%에 불과한 북측 동해선의 현대화 작업까지 감안하면 남북과 TSR을 관통할 동해선 사업비는 수조원이 더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경의·동해선 사업은 시작일 뿐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는 프로젝트별로 많게는 수십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 대규모 SOC 사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경의·동해선 사업 다음으로 가시적인 게 환서해 경제벨트를 이어줄 서울~신의주 간 철도 현대화와 고속도로 신설 사업이다.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위원장에게 말했다. 여기에 ‘단서’가 있다. 현재 남북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이 유력한 곳으로 지목된 곳은 서울~신의주 구간뿐이다.

2017년 9월 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비핵·평화 번영을 위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학술회의’에서도 서울~신의주 간 고속철도 사업이 거론됐다. 서울과 신의주 고속철 건설을 통해 중국의 베이징, 동북3성을 잇는 ‘동북아 1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서울~신의주 간 고속철도 신설사업은 국토연구원의 2015년 보고서 <한반도·동북아 공동발전을 위한 북한 국토개발 핵심프로젝트 실천방안 연구>에서 보다 자세하게 언급돼 있다. 보고서에서는 고속철 건설과 함께 서울, 개성, 평양, 신안주, 신의주를 잇는 도로의 개·보수와 고속도로 신설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2015년의 이 보고서에서는 사업 예산을 추산하지 않았지만 이보다 앞선 2013년에 나온 같은 보고서에선 서울~신의주 간 고속철, 고속도로 건설 추산 비용을 도로사업비 7조6659억원, 철도사업비 9조465억원 등 총 26조2124억원으로 예상한 바 있다. 2013년 보고서는 환서해축, 동해축 교통망 건설 등 북한 국토개발 핵심 프로젝트 11곳에 필요한 총예산 규모를 ‘최소’ 93조여원으로 추산했다.

‘평양-남포 개발 프로젝트’ 파급력 커

문 대통령의 고속철 언급으로 서울~신의주 간 고속철 신설이 주목 받고 있긴 해도 고속철 건설의 경우 최장 10년 이상 기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동해선 사업만 해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산하는 남측 사업구간 실행기간만 8년 이상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양 정상이 회담에서 언급한 ‘2007년 10·4 선언의 이행’에 해당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단기적으로는 더 주목 받을 수 있다. 10·4선언으로 당시 양측이 합의한 사업 중 대표적인 것이 남포 및 안변에 ‘조선협력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역시 북한 경제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남포와 인근 평양지역을 묶어 ‘남포-평양 개발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평양의 은정첨단기술개발구와 남포 경제특구를 공동개발한 뒤 수도권과 교통망을 연결해 ‘제2의 개성공단’으로 육성하거나 이른바 ‘통일경제특구’로 육성한다는 게 프로젝트의 골자다.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평양-남포 지역의 개발은 북한 경제 재건과 남북 경제통합의 실질적인 기점을 만드는 중요 과제”라며 “논의되는 북한 내 여타 거점 프로젝트 중에서도 북한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가 가장 큰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85.7%를 기록했고, 판문점 선언에 대해 ‘잘했다’는 응답도 88.4%에 달했다. 여느 때보다 통일을 대비한 남북경협의 활성화 가능성이 높은 상태지만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2017년 9월에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이행방안’을 주제로 열린 세종정책포럼에서는 비공개 토론 시간을 통해 신경제지도 구상에 대한 비판과 개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의 대북 경협 프로젝트를 모아놓은 것일 뿐 새로운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과거에 구상했던 프로젝트도 포함돼 현실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전반적으로 남한 중심주의가 깔려 있어 북에서 실행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재원이 없어 민간부문 참여전략이 필요하다”, “당장 경협을 하려 해도 법제 미비와 관련 물적 인프라 부족으로 실행이 어렵다”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구상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보완할 게 많다는 것이다.

아직 구상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고, 정부의 신경제지도 구상 세부계획안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대략적으로 알려진 구상안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한 사안들이 있다. 예컨대 환서해축 개발의 핵심인 서울~신의주 간 교통망 건설문제만 해도 “북한의 폐쇄성을 고려해 고속철 등 철도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과 “사업기간과 효율을 고려해 고속도로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사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문제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고속철을 언급하긴 했지만 국토연구원 등은 11개 핵심 프로젝트를 언급하면서 환서해축과 동해축 교통망 연결을 가장 마지막 순위로 꼽았다. LH공사 등 전문기관들도 북한 내 대규모 SOC 공사 등을 통한 인프라 조성 시 ‘점(특구)-선(교통망)-면(도시)’ 등의 순서로 소규모 특구 개발부터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인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독일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종합적 계획과 전략 없이 국토 개발을 진행하다 중복투자와 과잉투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북측의 건설, 개발 역량 등을 사전교육 등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량 북한의 한 특구를 개발한다고 가정할 경우 기술이나 자재, 자본 등은 남측에서 조달한다고 해도 건설인력 등은 현지에서 충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개성공단 개발과정에서 모든 공사에 반드시 북측 노동자를 쓰도록 명문화하기도 했다. 과거 개성공단 조성공사에 참여했던 한 기업 관계자는 “북한 노동자의 경우 말은 통하지만 초기에 기술 부족, 제한된 근로시간 문제 등으로 공기가 지연되거나 공사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6일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광복 70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속가능성 확보가 관건

신경제지도 구상에 소요될 천문학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정부가 조성하는 남북경협자금은 연간 1조원 규모라 정부 재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정부 외 민간부문(기업)의 참여,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국들의 협력과 투자, 국제금융기구 등을 통한 자금조달 등 다양한 창구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하나같이 쉽지 않은 과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만 해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현대그룹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쓰러지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며 “대북 투자에 절대 쉽게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지자체와 기업 등 민간 경협주체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지난 10년간 경협 기반이 거의 붕괴된 상황”이라며 “민간 차원 경제협력 주체들의 맞춤형 전략 수립과 역량 제고, 사업의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