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OCI·아모레·오뚜기..北출신 기업 '고향의 봄' 꿈꾼다

이윤재,안병준 2018. 5. 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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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시대 역할 주목

◆ 한반도 경제공동체 만들자 ⑧ ◆

한반도에 해빙 무드를 타고 남북 경제협력이 가시권에 들어가면서 북녘에 고향을 둔 기업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1세대 북한 출신인 기업인들은 어릴적 피란길에 올라 사업 바닥부터 시작한 게 대부분이지만 천성적인 성실함과 시장 흐름을 읽는 탁월한 안목으로 차근차근 기반을 닦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식료품과 화장품 등에서 일가를 이룬 경우가 많았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국내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 이들은 최근 세상을 떠났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2·3세 기업인들이 남북한 번영을 고대한 선친 유지를 받들어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에서도 기업가의 꿈을 펼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 출신 기업인은 옛적부터 명성을 떨친 '개성 상인' 정신을 이어받은 기업인이 많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기틀을 다진 고 장원(粧源) 서성환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서 전 회장은 1924년 황해도 평산 출생이지만, 개성과 연이 깊었던 어머니 고 윤독정 여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 윤 여사가 개성에서 운영하던 '창성상점'이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의 토대가 됐다. 창성상점은 여성들이 머리를 쪽 짓는 데 쓰던 동백기름과 구리무(크림), 가루분(백분) 등 화장품을 팔았는데, 서 회장은 장사 밑천이 되는 동백 씨앗 등 원료 조달을 도맡으며 장사의 기본을 익혔다. 특히 윤 여사는 제품마다 '창성당 제품'이라고 눈에 띄게 표기해 이미 그 당시부터 브랜드에 대한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후 중국으로 징용을 다녀온 서 회장은 1945년 서울 남대문시장 부근 남창동에 기존 창성상점 간판을 지금의 아모레퍼시픽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로 바꿔 내걸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개성공단에 문을 연 '현대 면세점 개성 2호점'에 입점하기도 했다.

한국화장품과 잇츠한불(옛 한불화장품)을 이룬 고 송학(松鶴) 임광정 창업주도 1919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시기 월남해 맨손으로 기업을 일궜다. 1961년 한국화장품, 1989년 한불화장품을 세워 국내 화장품 사업을 이끌었다. 현재 한국화장품은 장남 임충헌 회장, 잇츠한불은 3남 임병철 회장이 이끌고 있다.

개성 출신 기업인은 화장품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 송암(松巖) 이회림 OCI 명예회장도 개성이 고향이어서 '마지막 개성 상인'으로 불렸다. 이 회장은 비단을 파는 점원으로 일하며 받은 개성 상인의 도제식 경영 수업을 토대로 1937년 건복상회를 세웠다. 이후 개풍상사 설립, 대한탄광 인수, 대한양회 설립, 서울은행 창립 등에 이어 1959년 동양제철화학 전신인 동양화학을 세운 뒤에는 40년간 화학산업에만 매진했다. 한일시멘트를 창업한 고 우덕(友德) 허채경 명예회장은 경기도 개풍 출신으로 '송상'이라 불리는 개성의 상업세력 후예로 알려져 있다. 신도리코 창업주이자 무차입 경영과 정도 경영에 힘쓴 기업인으로 평가되는 고 가헌(稼軒) 우상기 회장도 개성 출신이다.

식품업계에서도 이북 출신 기업인 활약이 돋보인다. 제빵업계 개척자인 고 초당(草堂) 허창성 삼립식품 명예회장은 황해도 옹진군 출신이다. 1945년 10월 서울 을지로에 삼립식품 전신인 '상미당'을 설립한 이래 60년간 제과·제빵 사업 외길을 걸어왔다. 1970~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삼립호빵' '크림빵' '보름달' 등 전통 제품과 '누네띠네' '꾸시꾸쉬' 등 최근 브랜드도 모두 허 회장의 손길을 거쳤다.

오리온과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은 함경남도 함주 출신으로 혈혈단신 피란해 부산에서 설탕 도매업을 하며 기반을 닦았다. 1955년 이병철 삼성 회장과 풍국제과의 배동환 씨와 함께 동양제당공업을 설립했고, 19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해 동양제과공업을 설립했다. 이후 시멘트, 금융업으로 사업을 넓혔다.

한국 낙농산업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고 진암(晉巖)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은 북청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1946년 월남해 서울 방산시장에서 담배 좌판을 벌이면서 사업 기반을 닦았다. 김 회장은 1956년 공흥산업, 1964년 신극동제분 등을 설립하며 무역과 제분업으로 돈을 모아 1971년 정부 투자기업 한국낙농가공을 인수해 매일유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낙농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라면의 아버지'이자 삼양식품 창업주인 고 이건(以建) 전중윤 선대회장은 강원도 금화군 임남면(현재 강원도 철원) 출신이다. 북한이 자연재해로 식량 사정이 악화된 1997년과 2007년에 라면 외에도 의약품 생수 등 긴급보호물자를 지원했다.

1902년 설립된 샘표의 창업주인 고 정재(靖齋) 박규회 선대회장은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1946년 남쪽으로 내려와 샘표식품 전신인 '삼시장유 양조장'을 인수하며 장류 사업을 시작했다. 2세인 고 박승복 회장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으며,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부친이 별세하자 회사를 물려받았다. 박 회장은 1990년대 초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를 역임하면서 북한 아동을 위한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1999년 11월에는 실향민 출신 기업인 등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고향투자협의회를 설립했다. 2000년에는 중견기업연합회장으로 일하면서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이북5도 행정자문위원, 함경남도 중앙도민회 고문 등을 맡았다. 3세인 박진선 사장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2007년 샘표에서 생산된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 전통장류 200상자를 '북한 장류제품 보내기 운동'을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

박 회장과 고향투자협의회 발기인으로 이름 올린 식품업계 기업인으로는 고 함태호 오뚜기식품 회장, 고 홍두영 남양유업 명예회장이 있다. 함 명예회장은 193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69년 오뚜기식품공업을 설립했다.

북한 출신으로 공동 창업한 회사도 눈에 띈다.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한 영풍그룹 창업주인 고 장병희 회장과 고 최기호 회장은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동향이다. 삼천리와 삼탄을 창업한 고 이장균·유성연 회장도 모두 함경남도 출신이다.

[이윤재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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