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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김정은 누가 '게임의 규칙' 어겼나

입력 2018. 05. 21. 14:38 수정 2018. 06. 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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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북, ‘세기의 담판’ 앞두고 비핵화 방식 내세워 한미 동시에 흔들기…
‘주고받기’식 협상 안 되면 판 깨질 우려도

‘이게 다 볼턴 때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17일 백악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하는 동안 배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왼쪽)이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만지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가운데) 오른쪽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보인다. REUTERS

넉 달여 숨가쁘게 내달려온 ‘한반도 냉전 해체 프로젝트’가 첫 번째 갈림길에 섰다. 한-미 연례 연합군사훈련 ‘맥스선더’와 미국에서 거론되는 ‘리비아 방식’을 통한 북한 비핵화 논의에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나선 탓이다. 70년 세월 켜켜이 쌓인 ‘불신’이 화석처럼 굳어진 상태에서 지각의 판 자체를 뒤엎어버릴 협상이 쉬울 리 없다. 잠시 숨 고른 뒤, 다시 뛰어가야 할 길이 멀다. 냉정한 현실인식이 중요한 때다.

섣부른 북-미 정상회담 성공 예감

‘만족스럽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지난 5월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한 뒤 환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조용한 경고음은 지난 5월6일 나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비핵화 결정은 제재 압박의 결과가 아니다. 둘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와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건 정세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셋째, 우리의 평화애호적 의지를 나약성으로 판단하고 압박과 위협을 계속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5월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두 번째로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양쪽은 회담 결과에 대해 ‘흡족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북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 석방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 ‘대문 사진’을 석방된 억류자 3명과 같이 찍은 기념사진으로 바꿔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엄청난 성공”을 예고했다. 섣부른 일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1주일 남짓 남겨둔 5월16일 북한이 입을 열었다. 남쪽을 향해선 <조선중앙통신> 보도문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 전통문을 통해 당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 연기를 통보했다. 맥스선더 훈련에 F-22 스텔스 전투기 등 전략자산이 동원되는 것을 문제 삼은 게다. 미국을 향해선 같은 날 오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언론보도문)를 내어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 등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형태의 비핵화 방식을 고집하는 것을 성토했다. 북-미 정상회담 참여를 ‘재고’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북은 5월17일 리선권 위원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남 경고의 수위를 높였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4·27 판문점 선언 이전부터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미국의 핵 관련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단을 맞바꾸는 일종의 ‘쌍중단’ 상태가 이뤄졌다. 폼페이오 장관의 두 번째 방북 때 이런 정도의 의견을 교환했을 텐데, 그간의 암묵적 합의를 한미가 어긴 것으로 판단하고 북한이 반발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지금까지 진행돼온 남북, 북-미 협력은 전형적인 ‘주고받기’식으로 이뤄졌다. 북한이 선제적으로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면 지금까지 유지됐던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는 측면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상당히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건드리고 나온 셈이다.”

북한이 손해보는 비대칭적 교환

일부에선 “북이 이미 용인했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새삼 문제 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3월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끈 남쪽 특별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 평창겨울올림픽 때문에 연기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년 수준으로 재개되는 것을 이해한다. 둘째, 그러나 한반도 정세가 안정 상태로 들어가면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후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고,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됐다. 한반도 정세가 안정화했음에도, 기대했던 ‘연합군사훈련 조절’은 없었다는 얘기다.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북-미 간 통 큰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거래의 성격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한에 ‘핵능력’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와 안보 위협 해소, 체제 안전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후자는 엄밀히 말해, ‘의지’의 문제다. 결국 능력과 의지를 맞바꾸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비대칭적이다. 등가교환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장 미국은 (지난 5월15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3’을 시험발사했다.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지 않아도 미국의 핵능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전략자산 전개 중단 요구는 최소한 ‘운용적 군비통제’ 정도는 해달라는 얘기다. 이른바 방어적·연례적이며 사전에 계획된 훈련이라 해도, (북의 반발로 긴장이 고조되는) 안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의지와 능력의 교환은 비대칭적이고, 따지고 보면 북한이 손해다.”

군비 통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운용적 군비 통제다. 군사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위기 때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게 뼈대다. 핵심은 켜켜이 쌓인 불신을 지우기 위한 신뢰 구축 조처다. 군사훈련을 사전 통보하고, 특정 규모 이상의 훈련 제한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신뢰가 쌓이면, 다음 단계인 구조적 군비 통제로 나아갈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북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5월23~25일)를 선제적으로 추진하며, 비핵화 의지를 재차 분명히 했다. <노동신문>은 5월18일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1차 확대회의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핵·경제 병진노선’의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기로 한 지난 4월20일 당 중앙위 7기3차 전원회의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처다. 역시 비핵화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구갑우 교수의 말이다.

“북한은 외무성 공보 형태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발표했다. 이 내용을 <노동신문>에 게재하고, <조선중앙TV>로도 내보냈다. 북한 주민들에게 비핵화 과정이 시작된다는 점을 공표한 셈이다. 결국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이 풍계리로 초청한 중국·러시아·미국·영국·한국 등 5개국의 면면이다. 한국을 빼고는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빠진 프랑스는 북한과 수교가 안 된 상태인 반면, 영국은 상주 대표부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비핵화 과정의 진척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 유엔사령부 해체 문제 등 모두 안보리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내 정치가 걸림돌 될 수도

미국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뒤섞여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5월13일 주요 방송에 ‘겹치기 출연’해 내놓은 북한 관련 발언을 종합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미국의 입장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혜정 교수의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줄곧 기존 대북 정책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볼턴 보좌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북에 대한 경제 제재를 계속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선 행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의 효과를 부정하기 위한 게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5년간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북한이 원하는 안보 대 안보 교환을 안 했는데 이번엔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얘기를 종합하면, 미국 핵심 참모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를 지속해왔고, 북한의 안전 보장을 거부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해왔다는 점을 고백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실제 철회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다.”

김정은 위원장은 두 차례 방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과정의 원칙으로 ‘단계적, 동보(동시)적 방식’을 거듭 밝혔다. 비핵화란 기나긴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 단계마다 북-미가 발걸음을 동시에 내디뎌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쪽에선 비핵화의 ‘신속성’을 유독 강조한다. 구갑우 교수의 말이다.

“신속한 비핵화를 이루려면, 신속한 체제 안전 보장과 신속한 비핵화 대가 지급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숱한 대북 제재는 미국 국내법에 근거를 두고 이뤄졌다. 비핵화 과정의 신속성을 위해선, 그만큼 빨리 관련 미 국내법 개폐가 필요하다. 그게 가능할까? 북한이 빠른 걸음으로 비핵화로 나아가는데, 미국의 반응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의 대가로 제시한 대규모 민간투자만 해도, 미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구두 약속’일 뿐이다. 김 위원장이 ‘단계적, 동보적 조치’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 국내 정치가 향후 북-미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리비아식’ 접은 미, 북한 달래기?

‘북-미 협상, 완전 성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10일 인디애나주 엘크하트에서 열린 유세에서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담은 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김계관 제1부상은 담화에서 이른바 ‘리비아식 모델’을 강조하며, 대북 압박의 고삐를 더욱 죄려는 볼턴 보좌관을 겨냥해 ‘사이비 애국자’라고 비난했다. 북의 반발로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까지 불투명해지자 미국 쪽은 입이 바짝 탄 모양새다. 5월16일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나서 “리비아식 모델이 아닌 트럼프 모델”을 강조하더니, 이튿날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리비아 모델은 북한에 적용하지 않는다. 강력하고 적절한 대북 안전보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래서다. 지난 5월9일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실렸던 기이한 ‘부음 기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기사를 작성한 조지프 디토머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미 국무부에서 32년을 일한 베테랑 외교관이자, 북한·이란·파키스탄 등을 중심으로 핵 비확산 문제를 다뤄온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이렇게 썼다.

“2018년 4월27일 ‘최대의 압박 정책’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고 가족 대변인이 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여전히 ‘최대의 압박 정책’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그의 사망 사실은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의료진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대의 압박 정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던 순간부터 판문점 남쪽 지역에 발을 내디딘 순간 사이에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최대의 압박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까지는 적어도 ‘좀비’ 같은 존재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학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최대의 압박 정책’을 활용하려는 순간 그 육체적 형태가 먼지처럼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7년 3월 태어난 ‘최대의 압박 정책’은 짧지만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으며….”

오는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 해체 프로젝트’ 성공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다. 그리로 가는 길조차, 여전히 험난하다. 힘의 우위에 바탕한 ‘강압’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북-미 둘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뱀 같은 지혜’ 못지않게, ‘사자 같은 용기’도 절실하다. 이혜정 교수와 구갑우 교수의 이구동성이다.

“모두에 이익이 되는 평화를”

“한반도 냉전 해체는, 국제 질서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강대국 중심의 편향적 외교를 넘어서 국제 규범을 적절히 활용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군사적 방법에 의한 안보와 방위를 생각해왔던 우리의 사고와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나라 안팎의 ‘도전’이 실로 엄청날 것이다. 결국 규범과 이익의 문제다. 규범적으로 모두가 평화를 바라지만, 어떤 조건의 어떤 평화인지가 문제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평화라야 오래 지속이 가능하다.”  

대담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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