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년 전 이순신 장군 울렸던 '백의종군로' 걸어보니
한양 떠나 124일 '눈물의 행로' 중
구례~순천 119km 도보코스로 조성
지리산 호수공원, 서시천 등 장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1545~98)이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 8월 15일 전남 보성 열선루(列仙樓)에서 선조에게 올린 장계 내용이다. 그는 사흘 후인 8월 18일 수군을 재정비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칠천량 해전의 참패로 괴멸 위기이던 조선 수군을 재건해 정유재란의 전세를 바꾼 순간이었다.
학자들은 당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 출전한 것 자체가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격파한 것만큼 기적적인 일로 여긴다. 명량대첩을 치르기 불과 12일 전만 해도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백의종군은 관리가 벌을 받아 관직을 삭탈 당한 채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말한다. 올해는 1545년 4월 충무공이 태어난 지 473주년이자 백의종군로를 걸은 지 421년이 되는 해다.
이중 도보 코스로 조성된 전남 지역 행로는 백의종군길의 백미다. 전남 구례를 출발해 섬진강을 거쳐 순천까지 이어지는 119㎞의 행로에는 전국에서 탐방객이 찾는다. 백의종군로 도보 코스는 지리산자락인 구례에서 시작된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산수유 시목지가 있는 계척마을을 출발해 산동면사무소까지가 첫 코스다. 서시천을 따라 형성된 옛길을 문화생태 탐방로로 만들어 놓은 구간이다.
구례 산동면사무소에서 구례읍내까지 가는 길은 마치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옛 시골길을 걸으며 지리산이 품은 경관과 정자, 작은 마을들이 어우러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석벽에 세운 정자인 운흥정과 ‘지리산 호수공원’, ‘서시천 뚝방길’도 탐방객을 맞는다. 구례읍에 들어서면 백의종군의 몸으로 구례를 찾은 이순신을 가장 먼저 맞아준 손인필 비각과 ‘이순신 백의(白衣)바위’ 등을 볼 수 있다. 손인필은 충무공과 함께 전쟁터를 누비다 노량해전 때 전사한 인물이다.
손인필 비각 안에는 손인필의 후손들이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 안치돼 있다. ‘백의바위’는 이순신이 손인필의 집에 거처를 정한 뒤 찾은 곳이다. 그가 훗날 『난중일기』에 ‘밤에 앉아 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 하랴’라는 글을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구례읍을 나서면 벚꽃길로 유명한 섬진강변을 따라 이순신의 행로가 이어져 있다. 순천에 일부 조성이 완료된 백의종군길로 향하는 구간이다. 순천 황전면에 있는 ‘황전늘품길’은 폐선 철도부지를 흙길로 만들어 걷기에 좋다. 황전면사무소에서 백야교와 매실밭 등을 거쳐 8㎞ 정도를 걷다 보면 ‘송치재’가 나온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던 충무공의 참담한 심정을 반영해 ‘장군의 눈물길’이란 명칭이 붙은 구간이다.
남도의 백의종군로를 기획한 박창규 전남도립대 교수는 “구례를 중심으로 도보 역사코스를 조성함으로써 차량 탐방 위주인 전국 주요 거점의 백의종군로와 차별화를 꾀했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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