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판문점 북미회담' 거론에 김정은 "그 사람들 참, 자꾸.."

김현기 2018. 5. 2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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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모델이 뭔지도 모르는 트럼프
북한 오만, 협상력 상승 돕는 우리 내부
(워싱턴=연합뉴스) 이승우 특파원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CIA 국장이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지난 부활절 주말(3월31일~4월1일) 북한을 방문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이 사진을 공개하면서 구체적인 촬영 날짜와 세부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8.4.27 [백악관 제공=연합뉴스] leslie@yna.co.kr/2018-04-27 05:36:18/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김현기의 시시각각] 무지의 두려움, 무장해제의 무서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트럼프가 서두는 걸 간파한 노회한 북한이 얌전히 넘어갈 리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진 장면 두 가지가 나를 새삼 놀라게 했다.

먼저 미국. 트럼프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며 “북한에 적용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말하면서 내놓은 장황한 설명이 내 귀를 의심케 했다. 볼턴의 리비아 모델은 ‘2003년 리비아’다. 리비아는 2003년 3월부터 9월까지 미국과 비밀협상을 벌였고, 12월에 핵 폐기를 선언했다. 미국은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핵 폐기(CVID)를 관철했다. 볼턴의 ‘리비아 모델’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를 ‘2011년 리비아’와 헷갈렸다. 트럼프는 2011년 중동 전체를 휩쓴 ‘아랍의 봄’ 시민항쟁으로 전복되고 피살된 카다피를 ‘리비아 모델’이라 했다. “당시 미국은 카다피를 지켜 주겠다는 어떤 합의도 안 했지만 북한 김정은은 다르다”고 했다. 전혀 엉뚱하게 다른 상황, 다른 시점을 얘기했다. 둘 중 하나다. 첫째, 트럼프는 볼턴이 말한 리비아 모델이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쪽에 가깝다고 본다. 뭔가 리비아 모델은 아니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머릿속 지식은 카다피 몰락밖에 없었다고 본다. 준비되지 않은 미 대통령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하는 우리의 운명에 두려움이 몰려온다. 또 다른 가능성은 반전이다. 트럼프가 염두에 두고 있는 ‘트럼프 모델’이란 다름 아닌 이날 말한 ‘카다피 축출 모델’일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잘되면 그걸 ‘트럼프 모델’이라 부르겠지만 잘 안 될 경우 이 카드를 쓸 것임을 내비친 것일 수 있다. 실제 트럼프는 이날 비핵화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초토화(decimate)란 표현만 일곱 번을 썼다. 트럼프의 무지, 변심이 신경 쓰이는 이유다.

다음은 한국. 요즘 이른바 친문 인사들이 내놓는 말들을 보면 기가 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북한이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자 “(훈련을 축소하지 않은) 국방부 장관에 대해 경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잘 풀려야 북·미 회담이 잘 풀릴 것이란 맥락에서 한 이야기라고는 본다.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 비핵화의 첫발도 내딛지 않은 북한의 심기부터 살펴야 하고, 심기를 덜 살핀(정상적으로 훈련한) 괘씸죄를 물어 국방부 장관에게 경고를 줘야 하는 나라가 됐는가. 또 하나. 얼마 전 문정인 교수와 워싱턴에 온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검증을 절대시하는 ‘검증 원리주의자’들이 북·미 회담을 흔들어 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증을 절대시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절대시해야 한단 말인가. 철저한 검증은 비핵화의 핵심이다. 말은 똑바로 하자. 이건 원리주의가 아니라 원칙주의다. 우리 내부가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 드는 사이 북한의 오만과 협상력은 수직 상승 중이다. 베이징까지 가 허탕 친 우리 풍계리 취재팀은 굴욕이다.

마지막으로 백악관 관계자가 최근 전해 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의 2주 전 회담 발언에서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 마음가짐을 유추하길 바란다. 굳이 부연하자면 우리 모두 감동한 남북 정상회담이 있은 지 불과 열흘 남짓 후였다.

“한국에서 북·미 정상회담 판문점 개최 이야기를 많이 하네요.”(폼페이오), “참, 그 사람들. 자기네 역할 했으면 거기까지만 해야지, 왜 자꾸 더 하려고 그러는지.”(김정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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