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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자 사이프의 '운수 좋았던' 한국생활 17년

입력 2018. 05. 23. 05:06 수정 2018. 05. 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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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생이별' 무국적 이주민 사이프의 눈물
방글라데시서 이주.. 결혼 뒤 귀화
출생날짜 6살 많게 기재된 여권 '화근'
귀화처분 취소.. 방글라 국적 포기해 '무국적'

3년 전 단속 걸려 '보호소' 1년여 구금
보호 못받게 된 아들은 보육원에
디스크 심해 '보호' 일시해제됐지만
경제활동 제약.. 가족재결합 못해
"아들이랑 투닥거리는 게 소원"

[한겨레] 달이 차오를 때쯤 한 번씩, 사이프(41·가명)는 아들을 만난다.

“왜 밥은 안 먹고 햄버거 먹고 있어….”

지난 3월25일 오후, 경기 부천시의 한 보육원 앞에서 조우한 지용(12·가명)은 2주새 한뼘 더 커 있었다. 사이프는 아들의 어깨를 으스러질 듯 끌어안았다. 아빠와 아들은 함께 살지 않는다. 사이프의 신분이 불안정한 탓이다. 그의 공식적인 신분은 ‘강제퇴거 대상자’다. 본국인 방글라데시 추방을 목적으로 구금될 수 있는 처지다.

사이프(41·왼쪽)와 아들 지용(12)군이 지난 3월25일 경기 부천시의 한 보육원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만났다.

■ 운수 좋았던 날들…‘럭키’ 2001년, 일자리를 찾아 한국땅을 밟은 사이프가 자리 잡은 곳은 부천의 ‘럭키’라는 이름의 신발공장이었다. 사이프의 손을 거친 안전화는 제법 잘 팔렸다. 2005년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단칸방에 신혼 살림을 차렸고, 이듬해 지용이도 태어났다. 안정적 수입원과 가정이 있는 사이프의 귀화 신청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럭키(lucky), 운수 좋은 날들이었다.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입국 당시 실제보다 6살 많게 기재된 여권이 화근이었다. 당시엔 구직이 쉽도록 나이를 올려 서류를 만드는 게 대행사 관행이었다. 사이프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방글라데시는 2007년 기준 출생등록율이 10%(아시아개발은행)도 되지 않는다. 사이프가 뒤늦게 출생날짜를 바로잡기로 결심한 것은 가족등록부 개설을 앞뒀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어서”였다.

‘1971.03.10(여권상 생일)-1977.02.01.(실제 생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법무부는 그가 “허위 인적사항을 이용했다”며 귀화처분을 취소했다. 법원은 “남들이 기피하는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가정생활이 파탄날 수 있다”는 사이프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3년 4월, 그의 한국인 자격은 ‘취소’됐다. 복수국적을 정리해야 하는 귀화 규정에 따라 방글라데시 국적도 일찌감치 포기한 터였다. 방글라데시 대사관 쪽에 국적 회복을 문의하자 “이미 본국에서 국적 포기가 승인됐다. 구제 절차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국적자. 사이프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아빠가 됐다.

■ ‘보호’되지 못한 삶 2015년 1월,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사이프가 일하던 그릇공장에 들이닥쳤다. “얘는 서류도 다 있어요. 왜 데리고 갑니까.” 사장도 막아섰다. 사이프는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졌다. ‘(방글라데시로) 가야 한다’는 말이 들렸다. 퇴거대상이 된 것이다.

체류 기간이 지나거나 불법 취업 사실이 적발된 외국인에겐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진다. 이들을 본국 송환하기 전까지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다. ‘쫓겨날 사람들’이다. 당장 퇴거가 불가능한 이들은 여권이나 교통편이 마련될 때까지 수용된다. 하지만 사이프처럼 돌아갈 나라나 유효한 여권이 없는 이들은 기약이 없다. “송환될 수 없음이 명백할 땐 보호를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이지리아인, 우즈베키스탄인, 중국인…. 말도 통하지 않는 10여명이 한 데 구겨져 살았다. 출입국 당국이 집중단속에 나서는 명절이면 좁은 방은 만원이 됐다. “다들 한 번쯤은 밥을 안먹어요. 소리 지르거나 방안에서 용변 보는 사람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나중엔 무덤덤해졌어요.” 그 사이 사이프는 허리디스크가 생겼다. 고통으로 잠 못 들던 밤마다 그는 “감옥이란 이런 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보호처분은 보호소 밖 그의 가정도 ‘보호’하지 못했다. 그해 5월, 부천에 있는 사이프 지인의 집으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지용이의 결석을 알리는 합기도 학원 강사의 전화였다. 엄마가 자취를 감춘 집에 지용은 이틀째 혼자 있었다.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과자밖에 없었다. 사연을 전해 들은 사이프는 급식도 거부한 채 울다 3일간 독방에 갇혔다. 보호자가 없는 지용이는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 ‘해제된’ 자의 해체된 가정 2016년 2월, 보호처분이 ‘일시’ 해제됐다. 강제퇴거처분을 받고 수용됐다가 합법적 체류자격이나 난민지위를 얻으면 보호 처분이 해제된다. 반면 건강 악화 등으로 치료 등이 시급할 땐 조건부로 풀어준다. 몸은 자유롭지만,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3개월마다 처분을 갱신해야 한다. 해제 사유가 없어지거나 주거지 이탈, 취업 등이 적발되면 다시 수용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이프는 해체된 가정을 수습하지 못했다. 등록된 거주지가 이주민 쉼터여서 지용이를 데려오지 못했다. 신분증이 없으니 월세방을 얻을 수도 없었다.

2016년 10월, 대법원은 강제퇴거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사이프의 청구를 최종기각했다. “대한민국 국적과 출입국 관리행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가능성”과 “국내 인간관계와 생활기반이 상실되거나 단절돼도 이는 본인의 귀책사유”라는 1심 판결 그대로였다.

2018년 5월, 사이프는 여전히 무기한 구금될 수 있는 강제퇴거 대상이고, 무국적자다.

“일 마치면 집에 와서 지용이랑 투닥거리는 게 제 소원이에요.” (사이프)

“제 장래희망은 천문우주학자예요. 별이 너무 예뻐서요. 나중에 아빠랑 별 보러 갈 거예요.” (지용)

사이프는 오늘도 달이 차오르는 날만 기다린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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