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깜깜이' 체대 입시 실기고사, 사교육 부추긴다

최예지 조선에듀 인턴기자 입력 2018.05.25. 14:03 수정 2018.05.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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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방법 다르면 이름 같아도 사실상 다른 종목.."체대 실기 지나치게 복잡"
-대학, 실기고사 방법 대부분 공지 안 해..수험생 "학원 이용할 수밖에"
체대 입시 실기고사 모습. / 조선일보 DB


#체육대학(이하 체대) 진학을 희망하는 고2 박호준(가명)군은 요즘 학원에 다녀야 할지 고민이다. 입시를 혼자 준비할까 생각해 봤지만, 대학 입시 요강을 봐도 실기고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나와 있지 않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주변에서도 “고사장 환경이나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파울 규정을 알기 위해서는 학원에 다니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달에 30~40만원인 학원비가 부담돼 걱정이 크다.

#김명진(가명·19)씨는 2018학년도 K대학 체대 입시 실기고사장에서 적잖이 당황했다. 20m 왕복달리기에서 반환점을 도는 수행법을 ‘목각 옮기기’로 알고 준비했지만, 막상 시험장에 가보니 ‘부저 누르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행 도구가 다르면 반환점을 도는 스텝도 달라지기에 수험생들이 이를 미리 알아야 하지만, K대는 구체적인 수행법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씨를 비롯해 그간 목각을 이용한 수행법으로 실기고사를 준비해온 많은 수험생이 낭패를 봤다. K대가 주요 정보를 공지도 없이 갑자기 바꾼 일은 올해 입시를 치른 수험생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학부모 사이에서 “체대 입시 실기고사가 ‘깜깜이’로 진행된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기고사 종목이 복잡한데다 대학 측에서 전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서다. 이는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험생·학부모들은 “실기고사 정보를 얻으려면 학원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기고사 방법 복잡한데, 정보 공개 안 하는 대학 多

체대 입시 실기고사는 복잡하다. 종목별로 수행 방법과 도구가 다양해서다. 예를 들어 10m 왕복달리기 종목에서 반환점을 도는 방식은 크게 ‘목각 옮기기’ ‘버저 누르기’ ‘고깔 돌기’ 등 세 가지다. 윗몸일으키기 종목의 수행 도구도 전자센서, 삼각대, 발걸이 등 3~4가지에 이른다. 배구 브레디 테스트(벽에 공을 토스하는 종목)에 사용되는 벽의 소재는 시멘트, 나무, 철판 등으로 다양하다. 메디신 볼 던지기(땅에 발을 붙인 채로 서서 공을 멀리 던지는 종목)의 경우에도 수행 도구인 공의 물렁물렁하고 딱딱한 정도가 대학마다 다르다. 실기고사 수행 방법과 도구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한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수행 방법과 도구가 다르면 이름이 같더라도 사실상 별개 종목”이라고 말한다. 수행 방법과 도구에 따라 준비법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수행 방법과 도구가 통일되지 않을수록 수험생은 더 많은 유형의 실기고사를 준비해야 한다. 지난해 1년간 체대 실기를 준비했다는 이윤재(19)씨는 “(왕복달리기에서 목각·버저·고깔의 사용 여부 같은) 정보를 정확히 모르면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고 했다. 박재용 과천 중앙고 체육교사는 “학생들은 특정 수행 방법을 몸에 익혀 간다”며 “실기고사 4~5종목에서 모두 상위권을 기록해야 합격할 수 있는데, 한 종목이라도 준비했던 방식과 다르게 진행되면 다르면 기록이 낮아져 불합격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실기고사 방법이 복잡한 것도 문제지만, 대학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수험생 부담이 더욱 커진다. 체대 입시 실기고사를 실시하는 수도권 주요 20개 대학의 2018학년도 정시 요강을 확인해본 결과, 절반에 해당하는 10개교가 실기고사 주요 정보를 안내하지 않았다. 수행 방법 및 도구, 파울 규정, 점수 배점 등을 기술하지 않거나, 종목명만 간단히 기재하는 식이다.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에 재학 중인 김성준(25)씨는 “모집요강에는 대개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 나와 있지 않다”며 “(실기 준비에 필수인) 수행 방법이나 고사장 환경은 혼자 준비해서는 알 수 없는 정보”라 말했다.

◇정시 직전, 학원비 월 200~300만원… “그래도 다닐 수밖에”

실기고사가 복잡한데다 대학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니, 체대 수험생은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권익위원회의 현황 조사(2014년)에 따르면 체대 입시 학원비는 월 40만원가량이지만, 정시 전형 앞둔 3개월간은 월 200~300만원까지 치솟는다.

두 자녀를 모두 체대 입시 학원에 보낸 김경자(가명·49)씨는 “체대 입시 학원은 전국 체인이 있어 정보 공유가 잘 되는 것 같다”며 “학원비가 비싸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녀를 체대 입시 학원에 보낸 오정민(45)씨는 “체대 입시는 설명회도 거의 열리지 않아 정보가 부족하다”며 “정보를 얻을 곳이 학원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학교에서 체대 입시를 지도하는 교사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강용수 경기 의왕고 체육교사는 “파울 규정을 시험 당일 현장에서 알려주는 대학이 일부 있다. 대학 측에선 모두에게 같은 시간에 알려줬으니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수년 간 데이터를 쌓은 입시학원들은 미리 알고 수강생을 지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학교에서 체대 입시를 지도하고 싶어하는 체육 교사가 늘고 있지만,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권 모 대학 정시 요강. 체대 입시관련 내용으로는‘실기실시 방법 및 요령은 시험 당일 지시에 의함’이라고만 표기돼 있다. 체대 입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해당 대학 정시요강 갈무리


◇“실기고사 정보 공개하고, 수행 방법도 간소화·통일해야”

수험생·학부모가 입시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정작 대학 측에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대학 정시 요강에 구체적인 설명 없이 종목 명칭만 기재한 S대학과 I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는 “실기고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전화로 묻는 분들에게만 유선상으로 답변하고 있다”고 했다. I대학의 경우 “(실기고사 시기가 다가오면) 학과 사이트에 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올린다”고 덧붙였다. 모집요강만으로는 수험생이 실기고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실기고사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모순된 답변을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실기고사 관리 투명성·공정성 확보 방안 등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전형 기본사항에 반영된 걸로 알고 있다. 기본사항에는 세부적인 걸 담을 수는 없다”며 “(정보 공개를) 수험생이 어느 수준까지 원하는지, (요강에는) 얼마나 명시됐는지 몰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입전형 기본사항에는 ‘예체능 실기고사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대학별 평가방법 및 방안(실기고사 연합 관리 등) 수립을 권장’한다고만 제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정보 공개를 유도하지는 않는다.

한편, 수험생이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대학도 있다. 고려대, 동국대, 중앙대 등은 정시 요강에 이미지를 첨부해 실기고사 수행 방법 및 도구, 파울 규정, 점수 배점 등을 상세히 기술한다. 경희대, 숙명여대, 한양대 등은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을 제공했다. 체대 입시를 경험한 학생들은 “이미지나 영상을 제공하면 실기고사를 훨씬 이해하기 쉽다”고 입을 모았다.

최승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은 “근본적으로는 실기 과목을 단순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체대 입시도 학교에서 준비하며 학생·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육교사들도 실기고사 종목을 통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성철 경기 광문고 체육교사는 “대학들이 실기고사에서 공통으로 채택하는 대여섯 개 종목이 있다. 나머진 대학 자율로 두더라도 이러한 공통 종목만이라도 세부적인 수행 방법과 도구를 통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사 역시 “PAPS(현행 초·중·고 학생 체력장 제도)를 참고해 표준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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