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기업 간판 믿었는데, 인테리어가 내집 망쳤다

이미지 기자 입력 2018.05.28. 03:08 수정 2018.05.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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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 年5000건 넘어서

제주에 사는 전모(33)씨는 2016년 10월 국내 유명 인테리어 대기업인 H사 이름을 내건 업체와 리모델링 공사 계약을 하고 8140만원의 대금을 냈다. 이듬해 1월까지 공사를 끝내겠다던 업체는 지지부진 공사를 미루다가 작년 5월 "자금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다"고 전씨에게 통보했다. 이 업체는 결국 문을 닫았고, 전씨 외에도 공사를 맡긴 10여 가구가 피해를 보았다. 전씨는 "대기업 간판을 믿고 공사를 맡겼는데,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러스트=김성규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부 강모(59)씨는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는 말에 단지 내 인테리어 업체에 화장실 공사를 의뢰했다. 공사를 시작한 업체는 "화장실과 붙어 있는 방까지 전부 배관을 교체해야 한다"며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현금 결제를 하지 않으면, 공사비가 10% 할증된다고도 했다. 강씨는 "돈을 더 줬지만, 타일이 갈라지고 LED 조명이 꺼지는 등 하자가 계속 발생한다"며 "바가지를 썼다"고 말했다.

최근 주택 리모델링·인테리어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부실 공사나 애프터서비스(AS) 관련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인테리어 관련 피해 건수는 5082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대리점·제휴업체를 통해 매출을 늘리면서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인테리어 관련 대기업들의 영업 방식도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간판은 대기업, 실상은 영세업체

인테리어 공사를 맡긴 소비자 중 상당수는 한샘·KCC·LG하우시스 같은 대기업과 계약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시공 품질을 기대한다. 그러나 사실상 공사는 대기업이 '대리점' '제휴점' '파트너' 등의 방식으로 관리하는 영세업체가 진행한다.

한샘의 경우 본사가 직접 운영하는 플래그숍이나 대리점 외의 제휴점들이 '한샘IK' 등의 간판을 달고 영업한다. 이들은 한샘 제품을 납품받아 이를 시공하는 조건으로 한샘 이름이 붙은 간판을 사용한다. LG하우시스 역시 대리점에 물건을 납품하고 인증대리점, 일반 대리점 등의 명칭을 붙여준다. 시공은 대부분 지역 자영업자(대리점)의 몫이다. 계약서에도 '시공 책임은 을(대리점)이 지고,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만 LG하우시스가 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KCC도 시공은 대리점이 하고 있다.

이런 구조를 두고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쓰게 하려고 영세업체를 대상으로 '간판 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기업들은 "전국에 직접 시공팀을 보내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영세 업체에 일감을 가져다주는 상생 구조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이주영 한샘 상무는 "영세업체들이 인테리어 계약을 따내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한샘 이름을 쓰게 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깜깜이 견적서·비전문가 시공 만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인테리어 관련 피해 중 가장 많은 것은 부실공사로 인한 하자 발생(57.3%)이었다. 계약 내용과 다른 시공(10.7%), 하자보수 요구 사항 미개선(9.2%), 공사 지연(9%), 계약 관련 분쟁(8.4%), 추가비용 요구(4.2%)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은 "공사금액이 1500만원 미만인 경우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은 사업자도 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하자 발생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계약 전에는 공사 기간을 짧게 잡아놓고 막상 공사에 들어가면 기간을 늘리거나 하자보수에 대한 AS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에 사는 정모씨는 1040만원을 들여 욕실과 방, 거실 등 아파트 내부 공사를 했다. 정씨는 "공사가 지연되면서 예정보다 한 달 늦게 이사를 했고, 입주 4개월 만에 누수가 발생했는데 해당 업체가 AS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계약과 달리 싸구려 자재로 시공하는 경우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과 인건비 등을 정확히 쓰지 않고 공정별 금액을 뭉뚱그려 '깜깜이 계약서'를 쓴 뒤 값싼 자재로 바꿔 이윤을 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현금 결제를 유도해 세금을 탈루하거나 카드 수수료 등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도 빈번하다.

자재·시공비 공개하고 표준화해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13조3000억원 규모이던 리모델링(인테리어 포함) 시장 규모는 2016년 28조4000억원으로 10년 만에 2배 수준으로 커졌다. 전문가들은 "시장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관련 소비자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사 비용과 공정, 제품 가격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인테리어 공사 관련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실내건축·창호 공사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공사대금을 지급하기 전 하자가 발견되면 소비자가 보수를 요구할 수 있고, 보수가 끝나기 전까지 공사금액 지급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는 자율 규정이기 때문에, 업체 멋대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할 때 자재 등을 특정하고 해당 제품의 가격을 적은 뒤 거기에 인건비 등을 더하는 식으로 계약서를 쓰도록 해야 한다"며 "공정별 비용을 표준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