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엉터리 판결이 사람을 죽였다"

이재덕 기자 입력 2018.05.29. 22:34 수정 2018.05.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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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재판 거래’ 항의…서울역서 천막농성 시작한 ‘KTX 해고승무원’ 김승하 지부장
ㆍ“판결 핑계로 임금 회수 4473일 누가 책임지나”
ㆍ대법정 진입 ‘초유의 시위’

‘왜 그러셨나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KTX 해고승무원이 대법정 앞 벽에 걸린 양 전 대법원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대법원 판결이 (청와대와의) 뒷거래에 의한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수많은 여성 노동자의 꿈을 짓밟았고, 대법원 판결로 사람이 죽었습니다. 4473일의 시간을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열차승무지부장은 2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본관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헌법질서를 어지럽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들을 즉각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엉터리 판결을 핑계로 지급했던 임금을 환수하는 등 해고승무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당시 정부와 철도공사도 사과하고 해고승무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KTX 해고승무원들은 이날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법정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대법정 안까지 뛰어들어갔다. 일반인이 대법원 대법정에 무단 진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 지부장은 “대법원장에게 면담 요청서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대법정인지도 모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면서 “대법원은 ‘대법정에 함부로 진입해서는 안된다, 절차와 법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대법관들이 법을 지키고 절차를 지켰으면 우리들이 여기에 올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날 대법원으로 달려간 것은 지난 25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2015년 2월 KTX 승무원 관련 재판’ 등을 미끼로 청와대와 거래를 하려 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KTX 승무원의 실제 사용자는 코레일’이라는 1·2심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1·2심 승소로 코레일로부터 미지급된 임금과 소송비용 등을 받았던 승무원들은 수천만원을 다시 회사에 돌려줘야 했다. 한 해고승무원은 억울한 마음에 대법원 판결 한 달 뒤인 2015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승무원은 김 지부장과 친자매처럼 지내며 코레일을 상대로 복직투쟁을 했다. 김 지부장은 “대법원이 사실상 내 친구를 떠민 것이나 다름없다”며 “내 친구를 살려내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당시 우리는 대법원에서도 이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법원은 ‘코레일 소속인 열차팀장은 안전을 담당하고, 철도유통 소속인 승무원은 서비스를 담당하는 등 업무가 구분돼 있고, 철도유통이 직접 승무원을 관리·감독한다’며 상식에서 벗어난 판결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조사단 발표를 듣고나서야 당시 대법원이 왜 그런 판결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KTX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24일부터 서울역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김 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KTX 해고승무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혀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우리는 천막에 있고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KTX 해고노동자들은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승무원들을 즉각 복직시켜야 하며 고등법원까지의 판결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인 김환수 부장판사와 KTX 해고노동자들이 오는 30일 대법원에서 면담을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