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클린턴의 북한과 트럼프의 북한이 다른 이유

입력 2018.06.04. 18:18 수정 2018.06.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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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핵무기 없이 탄도미사일 개발만으로 미국 만났던 2000년의 북한
핵무력 완성한 2018년 북한 태도 다를 것… 북-미 접점은 어디에

북한 고위 인사로는 18년 만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이 미국을 방문했다. 2000년과 2018년의 북한과 미국은 전혀 다른 위치에 서있다. 지난 5월3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환영 만찬에 앞서 김 부위원장에게 주변경관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간에도 나이테가 있다. 역사에도 매듭이 있다. 긴 세월 돌아 다시 마주한 결정적 장면, 언젠가 느꼈던 경험의 흔적이 기시감을 부른다. 2018년 5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 목전까지 갔던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을 떠오르게 한다. 과거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격동의 현장에서, 다시 숨을 고르게 된다.

북핵 문제의 핵심에 ‘탄도미사일’이 있다. 실어나를 ‘운반 수단’이 없다면, 핵탄두는 위협이 될 수 없다. 북한은 ‘독자적’으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냉전 시절, 혈맹이라던 옛 소련도 중국도 관련 기술 이전을 피했기 때문이다. 결정적 계기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전쟁)이 불을 뿜던 1973년 가을 시나이반도로 가보자. 그해 10월19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모스크바발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소련 당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타스> 통신은 김일성 주석이 평양에서 이집트와 시리아 대사를 만나 군사 원조를 포함한 물리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군사 장비가 아닌 인력 지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집트 공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는 미 국방부의 최근 보고서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동전쟁 참전에 대한 보상

2000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왼쪽)이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성사 직전까지 갔던 북-미 정상회담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연합뉴스

외교안보 전문매체 <디플로맷>도 지난해 8월28일 이집트와 북한 관계를 분석한 기사에서 “1973년 (10월 전쟁을 앞두고)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이집트 공군참모총장이 북한군 전투기 조종사들을 직접 이집트 공군에 편입시켰다”고 전했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주도했던 비동맹운동(NAM)에 북한은 초기부터 적극 가담했다.

1973년 10월6일 시작된 전쟁은 같은 달 25일 끝났다. 앞선 세 차례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압승이었지만, 개전 초기 이집트 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심리적 타격’은 컸다. 이스라엘이 기존의 완강한 태도에서 벗어나, 이후 중동평화 협상에 나서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디플로맷>은 “1973년 전쟁을 지원한 북한에 대한 보답으로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1976~81년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북한에 제공하도록 결정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뛰어들 수 있었던 토대였다.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다. 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장은 한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변인’이라 불렸던 김명철 재일 조미평화센터 소장이 1998년 펴낸 <김정일, 조선통일의 날>의 내용을 따 이렇게 전했다. “(북한 군부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1973년 10월에 일어난 제4차 중동전에서 미그 21기의 조종간을 잡은 조명록 당시 공군 대좌(대령)가 직접 이끄는 조선인민군 공군특공대는 이집트 공군 항공 편대를 이끌고 기상천외한 강습작전을 수행하여,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빼앗겼던 시나이반도를 되찾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북이 이집트로부터 넘겨받은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은 그 공헌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받은 것이었다.”

조명록 당시 공군 대좌는 이후 승승장구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겸 차수(대장)까지 오른다. 북한 탄도미사일 개발의 문을 연 그가 2000년 10월9~12일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함으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주렁주렁 훈장을 단 군복 차림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북한은 핵실험을 하기 전이었고, 북-미 간 쟁점은 아직 개발도 끝나지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었다. 그로부터 18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김영철 부위원장이 다시 미국을 방문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2000년 10월과 분위기는 비슷하다. 당시 조명록 차수는 국방위 제1부위원장 신분이었다. 국방위 체제는 북한이 막대한 식량난에 따른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비상국가 체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과 비슷한 당국가 체제로 복귀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당 부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에 간 것은 북한의 정치체제가 2000년과는 달리 정상화했음을 보여준다. 2000년 당시 북한은 핵실험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핵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북한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협상력을 갖추고 미국에 간 셈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평창겨울올림픽을 거치며 만들어진 대화 국면의 특징이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점이다. 김 부위원장은 중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갔다. 중국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중국 쪽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대화 국면에서 북은 남쪽이든 미국이든 대화에 앞서 반드시 중국을 먼저 거쳤다.”

클린턴 만날 때 핵무기도 없었다

18년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그간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단행했다. 지난해 9월3일 한 6차 핵실험에 대해 북한은 ‘대륙간탄도로켓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라고 밝혔다. 폭발력은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폭의 15배였다. 같은 해 11월29일 새벽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 15형’ 미사일의 사거리는 1만3천㎞로 추정됐다. 사실상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튿날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의 전략적 지위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얘기다. 북한이 지난 4월20일 ‘핵·경제 병진노선’의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에 따른 자신감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미국 입장에선, (조 제1부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의 방미 사이에) 천지개벽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의 미국과 2018년의 미국은 ‘광년의 차이’가 있다. 2001년에는 9·11 동시테러를 경험했고, 네오콘이 미국을 수렁으로 몰아간 이라크전쟁(2003년)이 벌어졌다. 2008년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휩쓸었다. 2000년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막 빠져나온 상태였다. 국력이 최저점이었을 때다. 반면 미국은 패권의 전성기였다. 북-미 간 힘의 격차, 협상력의 격차가 엄청나던 시절이다. 김 부위원장이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중 관계가 구조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차원을 넘어 미-중 간 패권 경쟁을 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결국 2000년과 2018년을 북-미 관계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 고위 인사의 방미란 점에서만 비슷하다. 북-미 간 협상력의 차이, 미국 패권의 일정한 하락, 외교력의 질적 저하를 놓고 보면, 2000년과 2018년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2000년 조명록과 2018년 김영철의 차이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북-미 정상회담은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판문점에선 의제를 놓고, 싱가포르에선 경호와 의전 문제를 놓고 각각 실무회담이 열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영철 부위원장이 미국 방문길에 나서면서, 북-미가 3개의 장소에서 3개의 회담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여전히 ‘조성된 정세’와 이를 뚫고 나갈 방도를 놓고 북-미 사이에 메워야 할 간극이 크다는 점을 방증한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5월20일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의 압박’ 정책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궁지에 몰렸고, 결국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는 게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능력이 확인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김 위원장 역시 자신이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협상에 임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 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북-미 정상회담에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할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식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미국 언론은 여전히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예정된’ ‘열기로 한’ ‘열릴 수도 있는’ 따위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도 크고 작은 부침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5월31일 김영철 부위원장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북-미 협상 과정에서) 길이 구불구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렵게 보이는 순간도 있고, 걸림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는 건 협상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다. 구갑우 교수의 말이다.

“큰 틀에서 북한은 비핵화의 대가로 5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미국 핵 관련 전략자산 한반도 철수다. 둘째, 미국 핵 관련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단이다. 셋째, 재래식 및 핵무기 공격 포기, 곧 불가침 선언이다. 넷째, 한국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 체결이다. 다섯째,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수교다. 북의 요구사항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식 ‘리얼리티쇼’를 위해서도 필요한 현재 핵(완성된 형태로 보유한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제거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6월12일 정상회담에서 이런 식으로 큰 틀에서 합의가 된다 해도, 그 문제를 둘러싸고 아주 긴 실무 협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인정해야 할 것들

‘비핵화는 길고 어려운 여정이다. 위기를 만날 때마다 남과 북이 손을 맞잡아야 한다.’ 지난 5월26일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정상회담을 마무리한 뒤 남북두 정상이 환한 얼굴로 얼싸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은 지난 5월29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백악관 집무실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이른바 ‘북핵 문제’는 다층의 고차방정식이다. 해법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다. 비핵화의 대상을 굳이 나누자면, 핵무기와 핵 물질·기술로 양분할 수 있다. 북-미 협상이 이뤄진 직접적 동기는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군사적 능력, 곧 핵무기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집중할 것도 이 부분으로 보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주도하게 될 핵물질과 핵시설을 비롯한 관련 기술을 대상으로 한 비핵화 과정은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세계적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지난 5월25일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마무리하기까지 1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혜정 교수의 말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상원 청문회(5월24일)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비핵화’와 같은 방식으로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놓고 보면, 평화협정 체결과 수교, 경제제재 해제 등 3가지 정도다. 하지만 이걸 다 해준다고 해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갈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북한 입장에선 핵능력과 평화 의지의 교환인데, 의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불안한 거래, 밑지는 장사로 여길 수 있다는 뜻이다. 협상장의 문을 열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이 국면을 넘어가야 다음 국면으로 갈 수 있다.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리 좋은 ‘로드맵’이 나오더라도, 결국은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최상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일정한 기간은 북이 핵능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 단계를 견뎌낼 힘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일단 시작하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2000년 10월 조명록 제1부위원장 방미 2주 남짓 만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의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서였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석연찮은 패배를 당했다. 플로리다주 개표 문제를 두고 지리한 공방이 오갔다. 클린턴 대통령은 방북 정상회담에 나설 기회를 놓쳤다. 북으로선 대화의 ‘시점’과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을 게다.

2018년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은 이미 한 차례 ‘취소’됐다. 이를 복원하는 데는 5월26일 전격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의 힘이 컸다. 남북관계사에서 단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했던 ‘실무형 정상회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27일 대국민 담화에서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65년 동안 요지부동이던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 프로젝트가 쉬울 리 없다. 숱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주변 정세가 어려워질 때마다,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함께 돌파해나가야 한다. 5·26 정상회담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혜정 교수와 구갑우 교수의 이구동성이다.

누구도 평화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남북관계를 통해 국제질서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판문점 선언에 녹아 있다. 그걸 실행에 옮긴 것이 4차 남북 정상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를 그대로 읽겠다. ‘우리 두 정상은 6·12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한 우리의 여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긴밀히 상호 협력하기로 하였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다. 그 여정에 누구도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엄청난 결기가 느껴진다.”

대담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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