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8 대한민국 미래 리포트>"사람 잡아다 벌주는 적폐청산은 지속불가능.. 시스템을 고쳐야"

김석 기자 입력 2018.06.07. 12:00 수정 2018.06.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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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에 참석한 정현호(오른쪽부터) 내일을 위한 오늘(내오) 대표와 박수영 아주대 교수, 문동욱 내오 운영위원이 미래 거버넌스(국가 경영)를 위해 필요한 한국 정치 개혁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 6부. 전문가 좌담 - ③ 정치분야

[좌담]

박수영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정현호 내일을 위한 오늘(내오) 대표

문동욱 내오 운영위원

[사회]

김석 정치부 차장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라도 그 수명은 길어야 5년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존 정부의 경제 정책과 대북 정책 등 국가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정책까지도 정권 교체와 함께 모두 없던 일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을 줄줄이 백지화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폐기하고 있다. 정치권의 극단적인 좌우 대립 탓에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중장기 정책을 마련하는 일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과 장년을 아우르는 전문가 3인과 한국 정치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미래 거버넌스(국가 경영)를 위해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살펴봤다.

―우리 정치는 미래 거버넌스에 대비한 장기적인 정책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현호 내오 대표(이하 정) = “최근 공공분야에서 미래 전략과 연구에 대한 흐름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 반가운데 국회에선 논의가 약한 것 같다. 최근 국회 미래 연구원이 설치돼 다행이지만, 중요한 싱크탱크 존재가 여전히 약하다. 외국은 싱크탱크 안에서 정책을 논의하고, 거기서 걸러진 것으로 토의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이 약하다.”

△문동욱 내오 운영위원(이하 문) = “우리나라에도 연구단체가 몇 개 있지만 대부분 정치 중심, 정당 중심으로 연구 단체가 꾸려져 있다. 국회 미래 연구원이 설립돼 박진 교수가 초대 원장이 됐는데 미래 환경을 예측하고 국가 중장기 미래전략을 짜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박수영 아주대 교수(이하 박) = “국회에 뭘 만들어도 안 될 것이다. 4년, 5년 주기로 투표하고, 보궐선거까지 하면 매년 선거하지 않나. 매년 단기적으로 갈 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뛰어넘는 국가전략연구원을 만들 필요가 있는데 지금으로선 뒷받침이 안 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다. 절대권력을 가진 특권세력의 목표가 나라가 잘되는 게 아니라 당장 내년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다 보니 단기적인 것을 자꾸 내놓는다.”

―전 정부가 잘한 것은 이어받고, 잘못한 것은 고쳐야 하는데 그런 것이 잘 안 된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적폐대상이 되면서 이런 점이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문 = “9년 보수정권이 진행했던 부분 중 잘못된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적폐 청산에 대한 호응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적폐청산이란 미명하에 전 정부 정책 실무자를 처벌한다든지, 정책이나 국제적 협약 등 신뢰관계를 지켜야 할 부분을 무시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안타깝고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 = “적폐는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쌓인 나쁜 습관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힘 가진 자에 의해 훼손된 공공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적폐라는 것을 너무 특정 정파의 문제로 가져가기보다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박 =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의 적폐청산은 사람을 잡아다가 벌주는 형태인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김영삼 정부 때 금융실명제를 했는데 가짜 통장 가진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못 만들게 했다. 지금 완전히 실명제가 정착돼 있다. 이처럼 시스템을 개혁해야지 사람을 처벌하면 안 된다. 실무자를 때리는 것은 복지부동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외국 파견 갈까, 민간기관 파견 갈까 이런 것만 챙기는 실정이다. 중요 보직을 안 맡으려고 하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연구소와 관련이 있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 때 만든 노동개혁이 앙겔라 메르켈 정부에서도 연결이 됐다. 왜 그럴까. 외국에서는 연구소끼리 먼저 싸운다. 말이 안 되는 정책은 다 걸러내고, 누가 집권을 해도 나라를 운영하는 데 크게 문제없을 정책만 남아 정치권에서 채택이 된다. 우리는 연구소가 없다 보니 오른쪽 끝과 왼쪽 끝 정책들이 민낯으로 싸우다가 집권하면 오른쪽 끝이나 왼쪽 끝으로 막 간다. 그러니 다른 쪽에서 보기에는 너무 많이 나간 거니까 적폐가 된다.”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 정치권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박 = “정당에 대한 지원금이 지금 법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연구를 하라고 준 것이다. 그것을 연구하는 데 안 쓰고 다른 데 쓴다. 그걸 법대로 써서 좌든 우든 중도든 연구소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문 = “정치가 풀뿌리나 지역 중심이 아닌 대부분 정당 중심으로 이뤄진다. 정당 중심이다 보니 정치나 정책 연구가 줄서기 문화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이나 유럽 국가를 보면 지역의 풀뿌리 정당이 잘 구성돼 있기에 인재나 정책들이 각 지역에 맞게 만들어지고 중앙에 모여 계속 경쟁하고 토론하면서 성장한다.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능력 검증보다는 계파에 줄을 얼마나 잘 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정 = “정당개혁, 공천개혁이 필요하다. 선거구 제도는 중선거구제로 빨리 개혁하고, 기초지역 공천 제도는 국회에서 그만 내려놨으면 한다.”

―지방선거는 지역 인재를 뽑는 것인데 이번 6·13지방선거에서 보듯 바람을 타고 있다. 지역 인재와 정책 선정을 위해서는 지방선거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정 = “지방선거는 주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선거인데 공천권이 국회의원에게 있다 보니 당의 이념과 프레임에 따라 정해진다. 공천권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바꿔놔야 인물이 뽑히고 후보자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문 = “지방선거에 주변 지인, 청년들이 예비후보로 많이 나가 있는데 이분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20∼30년 전의 선거 방식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후보의 개인적인 이력 서류 외에 공적 서류마저 후보가 일일이 떼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앱 하나로 대출이 되는 세상인데 이걸 다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한다. 선거 운동 방식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비효율적인 명함인사, 큰 소리를 내는 유세 차량, 몇천만 원이 들어가는 우편 발송 등….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스마트한 시대의 선거방식이 필요한데 안타깝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선거가 없는 해에 선관위에서 제도와 선거운동 방식 재정비를 추진해보면 좋겠다. 또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능력을 파악하는 데 집중이 되는 선거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본다.”

△박 = “돈이 많이 드는 유세차의 경우 옛날에 사람 모이는 장터에 마이크 들고 떠들던 것을 아직도 하는 경우다. 그러니 신인들이 들어가기가 어렵다.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국회의원 열심히 모시고 다닌 사람이 공천을 받는다. 이제는 신인들이 마음껏 나와서 운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지방선거는 평소 지역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초와 광역 두 개로 쪼개서 선거를 하고 정치 낭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쫙 깔려 있는 게 맞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예전엔 봉사였는데 월급을 주기 시작하니 낭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진짜 정치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진입이 제약되기 시작했다.”

―6·13 지방선거가 작은 틀이라면 큰 틀의 미래 거버넌스 논의에서 개헌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미래를 위해 개헌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박 = “개헌이라는 게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개헌은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모아서 반영해야 하는데 지금은 각 정당이 자기주장만 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적인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고 개헌을 해야지 서두르면 안 된다. 그런데 개헌을 못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느냐, 그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인데 대통령이 법적으로 1만260개 정도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개헌 없이도 법률 개정을 통해 이런 부분을 줄이면 개헌에 준하는 효과를 가지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충분히 제약할 수 있다고 본다.”

△문 = “앞으로 개헌 논의에서 지방자치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개헌 동력이 떨어졌지만 그 전만 하더라도 지방자치에 대한 권한 논의가 활발했다. 그러나 지방자치 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는 실질적 제도 보완은 없었다. 전적으로 모든 권한을 지방자치 정부에 자유롭게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정=“헌법이 개정될 때 국민이 ‘내가 개헌에 참여했다’는 경험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슬란드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를 보면 국민 일부를 무작위로 뽑고 그들이 안을 내면 국회가 받는 절차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래 거버넌스에서 남북 관계도 중요하다. 남북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보나.

△박 =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 물꼬를 튼 점을 높이 인정하고 칭찬해줘야 한다. 다만 판문점 선언에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이나 평화 협정을 한다는 스케줄은 나와 있지만 비핵화 스케줄은 안 나와 있다 보니 보수층이 불안해한다. 우선 첫 번째로 북한에 비핵화 스케줄을 미·북 정상회담에서 내놔라, 두 번째로 주한미군 철수 요구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남북 관계는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면서 북한에 한국식의 자본주의가 들어가 나중에 통일되더라도 부담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독일 통일이 예측 못 한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났는데 이런 급변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50만 원밖에 안 되는데 급변 사태에 의한 통일은 대한민국에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면서 A를 지원하면 B를 받아내는 식으로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야 한다.”

△정 = “협상 테이블이 열린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 전에 보수정권은 안보를 지키려는 노력은 했지만 상대를 관리 대상으로만 봐서인지 제대로 된 대화를 못 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거꾸로 지금 열린 상황을 맞은 만큼 잘 협상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 위기는 철저히 관리해 주면 좋겠다.”

△문 = “현재 일부 북한 전문가들을 보면 과거 북한의 상황, 전례 중심으로 지금의 북한을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환멸, 불신의 감정이 강한 듯하다. 북한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북한은 현재 핵을 완성하고 경제발전을 하고 싶어 하는 상황인데 미·북 정상회담이 잘 안 될 경우 중국 등에 호소해 제2, 3의 방안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를 위해 우리 정치권에 조언한다면.

△문 = “우리 정치권이 미래 세대를 생각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현재 특권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특권이 지나치게 큰 시스템이 정치와 경제 모든 부분에 걸쳐 구축돼 있다. 정치는 국회의원 중심으로 특권을 내려놔야 하고 경제도 자율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중심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 가진 특권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 = “최근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에서의 일인데, 교수들이 석사생들에게도 발표 기회를 주기 위해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는 틀을 짜주는 것을 보면서 정말 고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도 다음 세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하면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했으면 좋겠다. 경제 분야에서도 노동하고 일하겠다는 사람들을 장려하는 문화가 더 많이 꽃피었으면 좋겠다.”

△박 =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사다리 걷어차기 얘기를 했는데 그 사다리가 생각난다. 기득권이 자기들 특권을 천수, 만수 누리려고 하는 것과 일단 정권을 잡으면 만기친람해서 모든 걸 결정하려고 하는데 이 둘 다 인류의 오랜 경험에 반하는 것이다. 인류의 경험은 시장 중심 경제로 나아가야 함을, 사회주의 경제는 다 망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는 만기친람하다 문제가 벌어졌는데 지금 정부도 만기친람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킹핀(핵심목표)은 정치의 특권 내려놓기다. 특권을 내려놓고 희망의 사다리를 놔주는 정치가 돼야 한다.”

suk@, 정리=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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