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건방? 당당함!' 페미니스트 후보의 녹색 포스터 속 메시지

이재덕 기자 2018. 6. 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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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 벽보 | 녹색당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한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벽보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한 유명 남성 변호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시건방지고 오시한 눈빛”이라며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고 비난했다. 서울 27개 지역에서는 신 후보의 벽보만 사라지거나, 눈 부분이 파이는 등 훼손된 채로 발견됐다. 논란의 포스터는 서울 용산구 햇빛스튜디오의 박철희(30)·박지성(31) 디자이너가 제작을 맡았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여성과 여성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시건방지다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이 드러나도록 이미지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박철희 디자이너는 7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 사진을 공보 벽보로 선택한 것은 표정과 미소가 믿음직스럽고 진짜 정치가의 느낌이 나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라며 “기성 세대는 여성 정치인이라면 응당 선거 포스터에 ‘살림 잘 돌보겠다’ 이런 슬로건을 걸고, 벽보 속 눈빛은 자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녹색당도, 저희도 그런 시선으로 벽보를 만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건방지다’는 말 속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위계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나이든 남성인 나는 젊은 여성인 당신보다 서열이 위에 있다’는 의미다. 벽보 속 젊은 여성이 시선을 약간 아래로 하고 있으니 ‘하극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벽보 속 신 후보는 안경을 착용했다. 박 디자이너는 당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김은정 선수가 ‘안경 선배’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성 아나운서도 뉴스에 안경을 처음 쓰고 나와 이슈가 되지 않았나. 남성들은 안경을 쓰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오히려 전문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가는데, 여성들에게는 렌즈를 권하고, 안경을 쓰면 이슈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안경을 쓴 후보의 모습이 더 당당하게 보였고 의미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 선수의 별명 ‘안경선배’의 모티브가 된 만화 슬램덩크의 이미지도 차용했다. 그는 “그 만화에서는 ‘안경선배’ 캐릭터가 멋있게 표현될 때 안경에 빛이 ‘착’ 들어가는 장면을 쓴다. 신지예 후보 포스터에서 그런 만화적 효과를 차용했다. 안경알에 후보정을 해서 빛이 반짝이는 효과를 넣었다”고 말했다.

슬로건인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글자체와 색상에도 ‘의미’를 넣었다. ‘시옷’을 하얀 리본으로 변형했다. 박 디자이너는 “2년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여성들이 하얀리본 캠페인을 벌였다. 고인을 추모하며 여성 살인을 멈추라.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의미였다. 그 리본을 모티브로 글씨를 넣었다”고 말했다.

녹색당을 뜻하는 배경색인 ‘초록색’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박 디자이너는 “어떤 녹색을 쓸지 고민했다. 녹색당처럼 녹색을 사용했던 원내정당이 있지 않았나. 그 정당은 좀 촌스럽게 녹색을 썼다. 우린 트렌디하게 녹색에 ‘민트빛’을 좀 넣었다”고 말했다.

햇빛스튜디오 트위터 캡쳐
다음은 인터뷰 전문.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포스터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햇빛스튜디오에서 맡은 일은? =“박지성 디자이너와 제가 공보 벽보, 공보 현수막, 후보자 명함 세가지에 대한 아트디렉팅을 맡았다. 두 디자이너가 공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그래픽 디자인 등을 담당했다고 보면 된다. 녹색당과는 지난 3월부터 공보물 컨셉에 대한 느낌을 맞춰갔다.” -특히 신경 쓴 부분은? =“공보 벽보에 들어가는 인물사진에 가장 신경을 썼다. 신 후보가 안경을 이미 사용하고 있어서 안경은 쓴 사진도 찍어보고 벗은 사진도 찍어봤다. 한 100여장을 찍은 뒤 골랐다. 안경 쓴 사진이 더 느낌이 나더라. 주체적이고 당당한 이미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김은정 선수가 ‘안경 선배’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성 아나운서도 뉴스에 안경을 처음 쓰고 나와 이슈가 되지 않았나. 남성들은 안경을 쓰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오히려 전문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가는데, 여성들에게는 렌즈를 권하고, 안경을 쓰면 이슈가 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안경을 쓴 후보의 모습이 더 당당하게 보였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만화적 효과도 넣었다. 슬램덩크 만화에서는 ‘안경선배’ 캐릭터가 멋있게 표현될 때 안경에 빛이 ‘착’ 들어가는 장면을 쓴다. 신지예 후보 포스터에 그런 효과를 차용했다. 안경알에 후보정을 해서 빛이 반짝이는 효과를 넣었다. 신 후보에게 꼭 쓰고 다니시라고 했다. 어떤 녹색을 쓸지도 고민했다. 녹색당처럼 녹색을 사용했던 원내정당이 있지 않았나. 그 정당은 좀 촌스럽게 녹색을 썼다. 우린 트렌디하게 녹색에 ‘민트빛’을 좀 넣었다.” -가장 신경을 썼다는 인물사진이 되려 ‘시건방지다. 찢어버리고 싶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런 반응이 놀라웠다. 사진을 찍을 때 애티튜드도 생각을 해서 고른거다. 당당해보이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녹색당이 군소정당이다보니 더 튀게 하고 싶었는데, 하고 싶었던 것보다 보수적으로 나왔다. 그러니 그런 반응이 놀라울 수밖에… 후보 슬로건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아닌가. 페미니스트라면 ‘당당해야 한다’ 같은 생각나는 애티튜드가 있지않나. 신지예란 사람이 워낙에 에너지도 많고 당당해서 그게 잘 드러나길 원했다. 그래서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이 드러나도록 사진 이미지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의상과 장신구, 스타일리스트도 섭외해서 진행했다. 사진은 동물권 잡지 ‘오보이 매거진’에 계시는 분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셨고, 스타일링은 서울메탈(쥬얼리), 할로미늄(의류) 등에서 진행했다. 사실 후보의 얼굴과 표정은 스타일리스트와 사진작가가 만든 것과 다름없다. 녹색당과도 이미 그런 의견을 서로 맞춰놓은 상태였다. 녹색당 의견 취합해서 이 사진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일부러 당당해보이는 표정을 골라 공보 벽보 사진으로 선택했다? =“그렇다. ‘시건방지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여성 정치인이라면 응당 선거 포스터에 ‘살림 잘 돌보겠다’ 이런 얘기를 써놔야 하고, 눈빛은 자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여성과 여성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신지예 후보 자체가 그것에 반하는 기조를 가진 후보이기도 하고, 녹색당도, 저희도 그런 시선으로 공보 벽보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은 시건방지다고 하는데 저흰 오히려 그 표정과 미소에서 온화함을 느꼈다. 그 미소가 믿음직스럽고, 진짜 정치가의 느낌이 나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믿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시건방지고 오시하다고하니 놀라웠다. 젊고 여성이니까 좀 아래로 본 것 아닌가. 아래로 봤는데 신 후보가 시선을 약간 아래로 하고 있으니 하극상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사실 그런 얘기를 하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하는 위계라는 것이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는 거다. 나이든 남성인 나는 너같은 젊은 여성보다는 당연이 위라는… 그게 저에겐 좀 재밌는 지점이었다.” -서울에선 20여군데 넘게 벽보가 찢겼다. 다른 후보 선거 벽보 훼손보다 그 수가 훨씬 많다. =“그렇게까지는 안할 거라고 생각했다. 포스터를 찢고 눈을 파고 그렇게 하더라. 신 후보의 그 눈빛이 얼마나 대단한 눈빛이길래 위협으로까지 느껴질까 싶었다. 그분 표현을 빌리면 ‘더 시건방진’ 사진도 있었는데 그랬으면 아주 게거품 물고 쓰러졌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보 벽보 슬로건에 ‘시옷’이 리본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의미인가. =“2년전 강남역 살인사건 때 하얀리본 캠페인이 있었다. 고인에 대한 추모이자 ‘여성 살인을 멈춰라’ ‘여성 혐오를 멈춰라’는 의미였다. 그 하얀 리본을 모티브로 했다.” -공보 현수막에 해시태그(#)와 이모티콘을 넣었다. =“타깃이 인터넷과 SNS를 사용하는 젊은 층이었다. 그들이 이용하는 매체적 특징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이모티콘 때문에 잘 안읽힌다는 사람도 있는데 보고 재밌어서 한번 더 보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공보 벽보가 내용이 많지 않고 깔끔하다. =“녹색당에서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긴 포스터를 별로 안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제가 녹색당으로부터 받은 텍스트 자료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슬로건 정도 뿐이었다. 덕분에 단순한 포스터를 만들수 있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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