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서승원] 일본외교의 부활을 기대한다

입력 2018. 6.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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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에 이어 역사에 획을 그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을 둘러싼 급격하고도 유례 없는 상황은 블랙홀처럼 동북아 국제관계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런 흐름이 그간의 대립과 반목을 넘어 새로운 평화와 화합의 장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만 이 흐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까지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원치 않은 각을 세워야 했다. 그 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격렬한 외교전도 치렀다. 북·미 관계가 원만하게 타결되면 이후 북·일 관계 정상화가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상황은 계속 변할 전망이다. 민주화의 경험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하나를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1년 반 동안 ‘한반도 포커스’ 일본 파트를 집필해 왔다. 이번이 마지막 회다. 미·일 관계, 위안부 문제, 북·일 관계 등 이슈들을 다루며 일본 외교의 존재감 저하현상을 목도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대북 외교가 구설에 오르고 있다. 구설은 북한말로는 말밥.‘재팬 패싱’ ‘모기장 밖의 일본’ 등등의 비판이 무성하다. 2002년 9월 외무성 심의관으로서 북·일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킨 다나카 히토시 현 일본총합연구소장도 일본의 전략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한다.

이를 증명하듯 ‘최대한의 압력’만을 강조해 온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8일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는 최종적으로 나와 김정은 위원장 간에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북·일 정상회담 의욕을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물길이 바뀌자 서둘러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 8월 초 싱가포르에서 북·일 외무장관 회담 개최 의사를 북한 측에 제안했다는 말도 들린다. 아베 정권은 납치 문제 해결을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왔다. 게다가 대륙간탄도탄은 물론 일본에 도달하는 단거리·중거리 미사일, 핵무기를 비롯한 화학·생물학무기까지 안보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대화를 위한 허들을 너무 높여 놨다.

역사의 데자뷔일까. 아베 총리는 마치 외조부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전철을 밟는 듯하다. 아베의 외조부는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그는 한국 박정희정권, 대만 장제스정권과 함께 아시아 반공연대 구축을 도모했었다. 기시의 친동생이 사토다. 사토는 1960년대 재임기간 내내 반중 자세로 일관했다. 미국과 이인삼각으로 중국의 유엔 가입을 저지하고 대만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유엔총회에서 중국의 가입과 대만 탈퇴가 결의되고, 서로 적대시했던 미·중 양국이 화해했다. 다급해진 사토 내각은 태도를 180도 바꿔 중국과 수교를 추진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수교 파트너로 사토 정권이 아닌 다나카 가쿠에이 정권을 택했다.

일본 외교는 적어도 두 차원에서 시급히 전략 조정을 해야 한다. 하나는 미국 일변도의 수정이다. 아베 정권은 미·일 관계만 잘되면 다른 관계는 자연히 따라온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정권의 정책 기조를 한층 심화시켰다. 그동안 네 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부지기수로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납치 문제나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 주리라고 믿는 건 잘못이다. 대미 일변도는 이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 주범이다.

또 하나는 안보 패러다임을 군사가 아닌 외교 중심적으로의 전환이다. 북·미 회담에서의 종전선언 가능성이 제기되자 일본 내에서는 향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이고 미국의 방위선이 후퇴해 일본이 중국 러시아와 직접 상대하는 ‘최전선 국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군 철수→한반도 중립화→중립화한 한반도의 중국 세력권 편입→쓰시마 해협의 38선화라는 단순 도식이다. 일본이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구태의연한 전통 지정학적 사고를 버리고 외교의 본래적 역할을 부활시켜야 한다.

서승원(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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