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특수 고용' 학습지 교사도 "노동3권 보장되는 노동자"

입력 2018.06.15. 12:56 수정 2018.06.1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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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아니어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재능교육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사건, 교사들 일부승소 판결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 행사 인정

[한겨레] 특수고용 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도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이 보장되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와 다른 것으로,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상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학습지 교사·보험모집인·레미콘 기사 등 230만명에 이르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5일 전국학습지산업노조와 유아무개씨 등 재능교육 해고 교사 9명이 "노조 활동을 이유로 위탁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원고인 일부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재능교육의 위탁사업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밝혔다.

그동안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인정 범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인정 범위보다 넓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구분해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5년 웅진씽크빅 학습지 교사들이 낸 소송에서도 “학습지 교사는 회사와 사용종속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로 볼 수 없어, 이를 조합원으로 하는 학습지 노조는 법이 정하는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웅진씽크빅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판례로 확립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의 판단 기준대로 학습지 교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노동3권 보호의 필요성이 있으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경제적?조직적 종속성을 보여주는 징표들을 주요 판단요소로 삼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그 예로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보수 등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로부터 받는 수입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기준으로 보면, 재능교육 교사들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계약이 해지된 일부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불법 쟁의참가를 이유로 위탁사업계약이 해지된 다른 학습지 교사들에 대해선 부당노동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에 이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범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범위보다 넓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한 판결이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 등 헌법상 노동3권 행사에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재능교육은 2007년 12월부터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던 노조 조합원 9명에 대해 2010년 8~12월 순차적으로 위탁사업 계약을 해지했다. 해고 교사들은 노조활동 방해 및 부당해고를 이유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 차례로 구제를 신청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박태준)는 2012년 11월 “사용종속 관계 등의 조건 충족되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원고일부승소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현대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나타난 특수형태 노동자도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사용종속 관계 등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집단적으로 단결해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면서 “이들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하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따라 회사 쪽에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위탁사업 계약 해지 통보는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들이 노조 업무를 한 것에 대해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으로, 노조를 조직·운영하는 것을 방해해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를 와해시키기 위한 목적이므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인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윤성근)는 1심 판결을 뒤집고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은 물론 노조법상으로도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학습지 교사들은 위탁계약에 따른 최소한의 지시만 받을 뿐 업무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회사와 사용종속관계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대부분 인정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