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세먼지·적자·폐쇄비.. 탈원전의 3대 그림자

안준호 기자 입력 2018.06.19. 03:10 수정 2018.06.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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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실험 1년] [上] 3대 부작용 낳았다
4차 산업혁명은 전기 먹고 크는데.. 값싼 원전부터 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脫)원전' 정책을 선언하며 "원전과 함께 석탄화력 발전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1분기 원전 발전량은 2년 전보다 37%, 작년보다 29% 급감했다. 원전 24기 중 8기의 가동이 중단돼 재작년 80%였던 원전 가동률은 현재 58%다.

그러나 석탄화력 발전량(1분기)은 오히려 2년 전에 비해 22%, 작년보다 6% 늘었다. 미세 먼지의 주요 원인인 석탄 발전을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행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정부는 원전 대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늘렸다. 그러나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원전을 대체할 수 없어 결국 석탄 발전을 늘린 것이다.

탈원전의 부작용은 또 있다. 값비싼 석탄과 LNG 발전 증가로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공기업은 실적이 악화했다. 한전은 2분기 연속 1200억원대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원전 조기 폐쇄와 건설 백지화로 허공으로 사라지는 혈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 기간의 건설 중단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1228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건설이 백지화된 신규 원전 4기에 투입된 937억원과 조기 폐쇄가 결정된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에 투자된 7000억원도 무용지물이 됐다. 한수원의 부채는 1년 만에 2조8000억원 증가했다. 남동발전과 중부발전 등 발전 공기업들은 자금난 해소를 위해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전기차,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전력 수요는 늘 수밖에 없으며 세계 각국은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다시 원전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목동 KT 인터넷 데이터센터(IDC)에선 수만 대의 서버가 24시간 쉼 없이 가동된다. 이곳은 2016년 한 해 1억8000만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을 소비했다. 4만8000여 가구의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

전기차·무인차·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전력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2009년 73개에서 2015년 124개로 늘었다. 이 데이터센터들의 연간 전력사용량은 26억kWh로, 70만 가구의 소비량과 비슷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에너지 전망 2017'에서 현재 200만대에 불과한 전기차가 2040년엔 2억800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급증은 전기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빗나간 수요 예측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기에는 관심이 없다. 지난해 12월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력 수요는 이번엔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같은 정부 예측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는 이미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겨울 최대 전력 수요를 85.2기가와트(GW)로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 1~2월에만 1일 최대 전력 수요가 정부 전망치를 넘어선 날이 13일이었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력 수요 예측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보수적으로 여유 있게 전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전력 수급 불안에 따른 산업 피해 등 치러야 할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희천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독일·일본·영국 등 선진국의 1인당 전력 소비는 줄어드는 반면 전기요금이 저렴한 한국은 증가 추세"라며 "이런 추세라면 2021년 1인당 전력 소비는 한국(1만2423kWh)이 미국(1만2353kWh)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값싸고 질 좋은 전기 경쟁력 사라질 위기 우리보다 먼저 원전 가동을 중단했던 다른 나라들은 여러 문제점을 호되게 겪었다. 탈원전을 추진하는 대만은 지난해 8월 15일 대정전 사태를 겪었다. 이후 대만 최대 반도체 회사 TSMC는 불안정한 전력 공급 상황을 우려해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해외에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던 일본은 전기요금이 급등했다. 그러자 일본 기업들이 질 좋은 전기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 도레이첨단소재·데이진·미쓰비시화학 등 화학 기업이 일본 대신 한국에 공장을 지었다. ICT 기업인 소프트뱅크도 2011년 11월 KT와 합작해 새 데이터센터를 경남 김해에 지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압축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값싸고 질 좋은 전기 경쟁력이 탈원전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가 값싼 원전 대신 비싼 석탄·LNG·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할인 폭을 축소할 경우 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은 9494억~4조919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