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이고 뭐고 나라가 돌아가야지",'갈라파고스 일본'을 돌려세운 일손 부족

서승욱 입력 2018. 6. 24. 16:27 수정 2018. 6. 2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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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시설에 간병인이 없다"청원 빗발치자
스가 장관이 직접 아베 총리 설득에 나서
간병,건설 등 단순 외국인 노동자 받기로
보수층 의식해 꿈쩍않던 아베 총리도 백기
일손 부족에 보수든 진보든 버틸 장사 없어

“편의점도 외국인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이제 외국인이 우리를 선택하는 시대가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의 오른팔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요즘 주변에 자주 털어놓는 이야기라고 한다.

지난 21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외국인 문호 개방에 관한 한 ‘갈라파고스 일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고립주의적이었던 일본이 개방 정책으로 선회한 계기를 추적하는 기사에서 스가 장관의 말을 소개했다.
간병시설의 심각한 일손 부족 현상은 단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문호 개방 정책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중앙포토]

스가 장관을 비롯한 아베 총리 주변 인물들의 위기감이 아베 총리의 마음까지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지난 5일 일본 정부는 단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문호를 여는 '갈라파고스 일본'으로선 혁명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2019년 4월부터 건설·간병·농업·조선·숙박 등 5개 분야에서 최장 5년동안의 취업을 인정하는 새로운 체류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방안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일손 부족 앞에서 일본이 선택한 고육책이다.

아베 총리로선 마지막까지 꺼내고 싶지 않았던 카드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실제로 그는 자신의 간판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규제 개혁’을 내걸었지만 유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문호 개방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2012년 재집권이후 줄곧 “절대로 이민 (확대)정책은 취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닛케이는 “아베 총리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은 치안악화 우려와 일본인 고용확보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아주 신중하다"며 "그래서 아베 총리로선 일손부족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국인으로 채우겠다는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기술 습득을 위해 일본에 온 외국인 기능실습생이나 유학생들이 일손 부족분을 보충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공식적으로는 “단순 노동자는 안받아들인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렇듯 견고했던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민간으로부터 “간병시설을 새로 만들어도 간병하는 사람이 부족해 운영이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해달라”는 청원이 관방장관실에 쏟아졌다.

스가 장관이 확인한 결과 전국에 개설돼 있는 간병시설 중 약 20%가 간병인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인사회 일본에서 간병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선거전략상으로도 민감한 문제다.

일본의 첨단 간병 로봇.[중앙포토]
“2025년 말엔 간병분야에서만 55만명의 일손이 부족할 것”이란 후생노동성의 조사 결과는 더 악몽이었다. 간병이외의 다른 분야로 조사 범위를 넓혔더니 건설, 농업, 조선, 숙박 등에도 향후 극심한 일손부족을 피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결국 스가 장관이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합시다”라며 외국인 노동자 개방 문제에 대해 직접 아베 총리 설득에 나섰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소극적이던 아베 총리였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올 2월께 “다른 도리가 없다”라며 두 손을 들게 됐다는 것이다.

비록 ‘일정한 전문성과 기능을 가진 인재’라는 조건이 붙긴했지만 사실상 단순노동자에 대한 문호개방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아베 총리까지 백기를 든 만큼 관련 정책은 3개월여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까지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만든 건 외국인 없이는 나라가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깊이 관여해온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선 “과거엔 지방 유권자들의 경우 70%가 반대였는데, 지금은 지방이나 도시를 불문하고 찬성이 많다. 일손 부족으로 지역사회의 기업활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보수층의 외국인 기피든 외국인으로 인한 치안악화든, 일할 사람이 없는데 버텨낼 장사는 없었던 셈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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