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교회 헌금도 앱 결제하는 스웨덴.. 이젠 "현금 쓰자"

임경업 기자 2018. 6. 2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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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달려가던 스웨덴이 급정지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3년 내 스웨덴에서 현금이 사실상 사라지리라는 전망이 나오자 현금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불거진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스웨덴 의회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은행들이 반드시 현금 예금과 인출 관련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중앙은행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시중은행은 의무적으로 당좌 예금 업무를 해야 하며, 현금 700억크로나(약 8조8000억원)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스웨덴 국민의 99%가 사는 곳에서 25㎞ 이내에 현금 인출이 가능한 ATM (현금인출기)을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스웨덴의 6개 시중은행은 ATM 축소 정책을 스톱하고, 오히려 1억5000만크로나를 투자해야 한다. 현재 스웨덴 주요 은행 지점 1600곳 중 현금 취급 업무를 하지 않는 900여 곳의 지점이 다시 현금으로 예금을 받거나, 현금을 인출해주는 업무를 재개해야 한다. '현금 없는 신용 사회'로 진화하는 최고(最高) 선진국이라는 스웨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교회 헌금부터 구걸까지 카드와 모바일 앱을 쓰는 스웨덴 스웨덴은 '현금 없는 사회'의 문턱에 서 있다. 당장 스웨덴의 현금 사용률은 1.4%(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현금 사용률은 민간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현금으로 결제하는 총금액을 국내총생산(GDP·4조5000억크로나)으로 나눈 비중이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은 자국 경제에 대한 미래 보고서에서 "2020년이면 현금 사용률이 0.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금 사용률이 낮다 보니 가계·기업에서 보유·유통하는 현금도 줄어들고 있다. 스웨덴 민간 분야 전체에서 보유한 금액은 2008년 967억크로나(약 12조1500억원)에서 2016년 632억크로나(약 8조원)로 급감했다.

이렇다 보니 스웨덴의 상점들은 아예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사례가 흔하다. 가게 문에 '현금 안 받습니다'라고 쓴 팻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현금 결제가 가능한 상점의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10곳 중 8~9곳은 현금 결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버스·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탈 때 아예 현금으로 요금을 지급할 수가 없다. 신용카드와 스마트폰 앱 결제만 가능하다. 영국 BBC는 "스톡홀름의 한 교회는 1년간 받은 헌금 중 현금 비중이 15%에 불과했다"며 "노숙인들조차 구걸할 때 현금이 아니라 휴대형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스마트폰 앱 결제로 받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현금이 이렇게 빠르게 사라진 배경에는 핀테크(금융기술)의 발달이 한몫했다. 2012년 스웨덴 민간 은행들이 공동 개발한 모바일 앱 '스위시'는 스마트폰과 은행 계좌만 있으면 결제와 송금이 가능하다. 지난해 스위시 사용자 수는 전체 인구(1000만명)의 60%(600만명)에 달한다. 스웨덴의 핀테크 스타트업인 '아이제틀(iZettle)'은 자영업자와 노점상이 쓸 수 있는 휴대형 간편 결제기를 만들어 보급했다. 스웨덴 정부도 '2030년 현금 없는 사회'를 목표로 내걸고, 이런 핀테크 붐을 지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카페에 ‘현금 안 받는 가게(CASH FREE ZONE)’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마이니치신문

◇'현금 저항군' 등장… "현금 없는 사회는 위험" 현금이 진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현금을 원하는 사람들'이 반기를 들었다. '반(反)현금 없는 사회'를 표방하는 '현금 저항군(Cash Rebellion)'이라는 시민단체가 생겼다. 현금 저항군의 비에른 에릭센 대표는 "만약 국가의 모든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마비된다면 전 국민의 지급 수단이 사라진다"며 "아날로그 수단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스웨덴 은행 방코마트 AB가 국민 23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68%가 '미래에도 현금을 사용하길 원한다'고 답했고, '현금 없는 사회가 낫다'고 한 이들은 25%에 그쳤다. 특히 65세 이상의 85%가 현금을 필요로 했다. IT에 친숙하지 않은 노년층에겐 여전히 현금이 편리하고 믿을 만한 지급 수단인 것이다. 그러자 지난 2월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의 스테판 잉베스 총재는 "특정 집단을 경제활동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국가 위기나 전쟁 시 현금이 없어 경제 위기에 처하는 걸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방향 선회를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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