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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하나 들고 '웃음 폭탄' 투척..청중을 들었다 놨다

장회정 기자 입력 2018. 06. 29. 17:01 수정 2018. 07. 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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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제약 없는 농담의 향연 ‘스탠드업 코미디’

서울 역삼동의 코미디헤이븐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민수가 던진 농담에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극장이다. 정지윤 기자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이건 정말 비밀이었는데, 저 사실 장애인이에요.” 폭소가 뒤따랐다. 이 상황에선 웃지 않는 관객이 무례한 거다. 한기명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이다. 이날의 호스트인 코미디언 김민수가 “선입견 없이 재밌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라는 소개로 힌트를 주긴 했지만, 그의 첫 농담에 관객은 바로 무장해제됐다. 어린 시절 사고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은 한기명은 낮에는 극단 배우로, 밤에는 코미디언으로 활동 중이다. 이 무대에서 장애는 그의 약점이 아니다. 필살기다. “오늘 월드컵 독일전이 있는 날이죠?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면 승리한 병신이 되어라.’ 이거 누가 한 말일까요? 제가 한 말이에요(웃음). 앨빈 토플러라는 학자가 먼저 한 얘기인데, 여러분 저를 경배하세요. 저는 승리한 병신이니까요.” 박수가 이어졌다. 이 맛에 무대에 오르지 싶다.

배설물·섹스·종교·연애사까지 잘만 웃기면 소재에 한계 없어

미국에선 유명 코미디언의 산실 거침 없는 사회적 발언대 역할

국내도 스탠드업 전용극장 생겨 아마추어들 ‘오픈마이크’ 무대도

한 시간짜리 완성된 세트 구성까진 수년간의 시간을 들여 다듬어야 코미디언들에겐 매혹적인 ‘도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마이크’ 무대에 오른 김선응은 월드컵 독일전이 열리는 날에 맞춰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정지윤 기자

지난 27일 서울 역삼동의 스탠드업 코미디(이하 스탠드업) 전용극장 코미디헤이븐을 찾았다. 오후 8시15분부터 시작된 이날 공연에서는 총 14명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하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잡았다. 주말에는 프로 코미디언의 정규 쇼가 열리고, 매주 화·수·목요일은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오픈마이크’로 운영된다. 신청자는 예상보다 많았다. 금주만 3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40대 유부남부터 캐나다인 남성, 방송사 공채 출신 개그맨, 극단 배우, 현직 수영강사 등이 등장했다. 소재에는 한계가 없었다. 코미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배설물, 섹스부터 종교, 세상을 떠난 형, 연애사 등을 망라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소재도 ‘잘만 웃기면’ 제약이 없다.

평일 입장료 5000원(주말은 1만원)을 지불하고 맥주 한 병을 앞에 둔 ‘준비된’ 관객들의 리액션은 참가자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맛보게 했다. 사전 오디션이나 대본 검열이 없는 만큼 관객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들에게 반감을 사거나 무관심을 얻으면 그 농담은 폐기된다. 코미디헤이븐의 오대현 매니징디렉터는 “ ‘반인륜적인 내용은 안된다’는 자체 수위만 있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5분은 상대적이었다. 아쉬움을 담은 박수갈채 속에 내려가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망한 섹스 개그를 하다 퇴장을 종용하는 빨간색 경광봉의 손짓을 받는 참가자도 있었다. 오픈마이크 무대이니만큼 수준도 제각각이다. 트레이닝을 받은 개그맨 출신들은 정확한 발음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일단 귀를 잡아끌었다.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참가자의 경우 핵심 단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관객이 “으응?” 하고 대꾸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오로지 제스처만 본토 코미디언일 뿐, 내용은 인터넷유머집에서 따온 것을 나열하는 듯한 참가자도 있었다. 10시10분, 오늘의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은 코미디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코미디언끼리는 공연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마음껏 웃기고 마음대로 웃는 여성들이 모이는 곳’을 표방한 스탠드업 코미디쇼 <래프라우더>를 만든 사람들. 공동기획 황효진, 출연자 맷·윤이나, 공동기획 진아(왼쪽부터).

■마이크 하나로 관객을 쥐락펴락

“스탠드업 코미디쇼 무대에는 단 한 명만 올라가. 무대에 오른 코미디언은 마이크 하나 달랑 들고 관객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어진 시간을 채우는 거야.” 외신 기자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은 <스탠드업 뉴욕>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등받이가 없는 스툴, 마이크, 생수 한 병과 코미디언이 있는 무대 풍경은 지극히 ‘미국적’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로 소극장 무대가 개그맨의 산실로 통한다면, 미국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이 그 역할을 한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 애덤 샌들러, 방송인 제이 레노, 데이비드 레터먼 등이 스탠드업 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보통 ‘잘나가는’ 코미디언들은 하룻밤 서너 군데의 클럽을 돌며 공연한다.

관객이 ‘빵 터질’ 것을 예상하고 힘을 주는 대목을 ‘펀치라인’이라 부른다. 주로 반전이나 놀라게 할 만한 농담을 담는다. 이 맛을 살린 스탠드업 무대가 국내에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생긴 코미디헤이븐은 홍대권에서 ‘스탠드업 라이브쇼’를 해온 정재형, 이용주, 박철현, 김민수를 간판 삼아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전용극장이다.

“과거에는 정치 개그를 하더라도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는 수준이었어요. 제대로 된 풍자가 없었죠. 이제는 시청자 의식 수준이 높아져 슬랩스틱코미디나 정치인 흉내 내는 정도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걸 채워주지 못할 겁니다.” 미국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스탠드업 무대에도 서고 있는 오대현 매니징디렉터는 스탠드업의 부상은 필연적이라 짚었다. 이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유병재다. 지난 4월 열린 그의 두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은 티켓 오픈 1분 만에 1500여석 공연장의 3일치가 매진됐다.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공연을 계기로 스탠드업 코미디쇼 시장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이크 하나 달랑 들고 시작한 그의 입담은 전 대통령, 악플러, 자신의 소속사 등을 모두 비판하는 신공을 발휘하다가 성적인 농담까지 넘나들었다.

미국의 경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루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미투 운동이 그랬다.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는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인종차별에 가차 없는 조롱을 가하는 것으로 이름 높다. 스탠드업의 매력 중 하나는 코미디언이 들려주는 얘기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코미디언은 작가이자 공연자가 돼야 한다. ‘진짜’ 얘기는 코미디언과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작가 없는 드라마, 거침없는 발언대

넷플릭스로 서비스되고 있는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는 꽉 찬 1시간짜리 스탠드업의 정석을 보여준다. 호주의 코미디언인 개즈비는 “펀치라인에는 상처(트라우마)가 필요하다”며 보수적인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동성애 혐오자로 자란 동성애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물론 권력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한때 누가 펀치라인으로 잘 쓰였는지 아세요? 모니카 르윈스키! 코미디언들이 자신들의 일에 충실해 권력을 남용하는 남성을 조롱했다면 지금쯤 백악관에는 제대로 된 경력을 지닌 여성 대통령이 앉아 있었겠죠. 자기가 그럴 능력이 된다고 여겨서 여자를 성희롱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저런 놈이 아니라요.”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각본과 주연을 맡은 에이미 슈머는 거침없는 섹스 토크로 잘 알려진 미국 코미디언이다. 12세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아버지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슈머는 미국 패션지 ‘보그’를 통해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자신의 방어기제”였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신의 농담에 대해서는 가족의 동의를 구하고 무대에 올린다는 철칙을 지킨다. 존중과 배려, 그리고 아픔을 관통하고 빛나는 재치가 슈머의 인기 비결로 통한다.

스탠드업은 발언대이기도 하다. “마음껏 웃기고 마음대로 웃는 여성들이 모이는 곳”을 표방한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쇼 <래프라우더>는 티켓 오픈 12시간 만에 매진됐다. 지난 4월 말 열린 이 행사를 주최한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는 “코미디언을 표방하거나 무대에 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며 할 말이 많은 여성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목표는 작게나마 달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성으로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호평에 탄력을 받은 <래프라우더>는 무대를 이어가기 위해 지방 공연을 계획 중이다.

젊은층에게는 ‘힙’한 트렌드로 통하는 스탠드업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오락으로 돌아왔다. 코미디언 이용식은 이달 초 서울 청담동에 코미디극장앤쇼를 열었다. 이용식, 엄용수, 최병서, 김한국, 오재미 등 코미디계를 주름잡은 왕년의 스타들이 대거 무대에 올라 입담에 기름을 친다.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스탠드업 외에 가수들의 공연, 마술, 뮤지컬 등의 쇼를 곁들였다는 것. 개그 프로그램 폐지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던 이용식은 “능력 있는 후배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한편 즐길 거리가 없는 40~60대를 위한 공감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전했다. 부부를 비롯한 중장년층으로 공략 대상을 좁히니 농담의 수위는 높아지고 웃음은 진해졌다. 클럽은 무대를 넓히는 보강공사를 마치고 7월20일 재개장할 예정이다.

꽉 찬 1시간짜리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꾸려갈 수 있는 베테랑은 드물다. 넷플릭스를 통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데이브 샤펠>과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스탠드업은 도전이다

스탠드업의 부상은 현재 코미디 시스템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개그 프로그램의 깊은 침체는 방송사가 코미디언의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통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방송사에서 시험을 통해 개그맨을 뽑아 관리하는 시스템은 전 세계 한국이 유일하다. 1999년 <개그콘서트>가 포문을 열고 공개 코미디 포맷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텔레비전 공개 코미디 무대는 개그맨들이 토크쇼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개콘> 원년멤버인 김준호의 도전은 그래서 도드라진다.

김준호는 단짝 김대희와 함께 다음달 6일부터 ‘옴니버스 스탠드업 코미디쇼’에 선다. 소속사인 JDB엔터테인먼트 이강희 대표는 “주말버라이어티에 나오는 스타가 하기 힘든 결정이었다”며 “일찍이 유튜브에 ‘얼간 김준호’를 만들어 다른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과 같이 사명감으로 시작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폭소클럽> 등을 통해 토크 코미디에 잔뼈가 굵은 유민상과 미국에서 스탠드업 투어를 하며 칼날을 벼린 박영진이 가세했다.

스탠드업은 코미디언들에게도 매혹적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서려면 매주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진의 자체 검증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 스트레스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라고 전한다. 반면 스탠드업은 하나의 완성된 세트를 구성하면 사골처럼 우려먹을 수 있다. 물론 푹 곤 곰탕 같은 한 시간짜리 완성된 세트를 짜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품이 든다. 현재 국내 스탠드업이 옴니버스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만한 저력이 쌓이지 않은 탓이 크다. 이 대표는 “미국 신인 코미디언이 코미디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농담을 개발해 1시간짜리로 다듬는 데에 8년 정도 걸린다”고 전했다.

한국 생활 3년차로 국내 스탠드업 무대 경험 12회를 자랑하는 코미디언 폴서울(본명 Paul Alexandre Fournier)은 “아직 한국은 캐나다와 달리 성정체성, 인종, 섹스 얘기 등은 불편한 게 사실이라 조심하고 있다”며 “향후 5년 뒤에는 한국에서도 제한 없이 자유로운 무대를 펼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폭탄(bomb·관객의 무반응을 일컫는 업계 용어)을 맞더라도 계속 무대에 올라봐야 감을 잡을 수 있다”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다.

현재 스탠드업에 뛰어든 이들은 ‘투자’라고 말한다. 당장의 수입을 생각하면 바로 발을 빼야 할 만큼 저변이 마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마이크 하나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장르로 보인다. 세계적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는 스탠드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 분야 스타들은 지난해 넷플릭스의 판권 수입을 통해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렸다. 크리스 록이 201억원, 데이브 샤펠 503억원, 제리 사인펠드가 727억원을 벌었다. 오대현 매니징디렉터는 “코미디언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스스로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맞는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강희 대표는 “삼성에서 R&D센터를 짓듯이 우리도 신인 및 공연 개발을 위해 공연장 JDB스퀘어를 지었다”며 “스탠드업을 통해 나오는 콘텐츠가 향후 5년, 10년, 100년을 책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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