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유와 성찰]마지막 수업의 상상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입력 2018.06.2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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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각급 학교의 정년퇴임 행사가 분주하게 열리는 시절이다. <마지막 연애의 상상>이라는 소설을 썼던 이인성처럼, 나도 마지막 수업을 상상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수업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선 학교에 정규직으로 취직을 해야 하고, 학령인구가 급감함에도 불구하고 그 직장이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 그뿐인가. 학교에 불을 질러서도 안 되고, 돌연사를 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비로소 정년을 맞을 수 있다.

그렇게 자리보전을 했다고 해서 모두 마지막 수업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컴퓨터를 다운시키지는 않지만 꾸준히 속도를 느리게 하는, 애매하게 질 나쁜 바이러스처럼, 평생을 태업으로 일관한 교육자들도 마지막 수업을 향유할 자격이 있을까. 학생이나 동료를 상대로 성폭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강도 성추행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도 마지막 수업을 개설할 자격이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비판적 태도로 한세상 살아온 이들도 마지막 수업에 나타날 자격이 있을까. 교육과 연구를 등한시하고 권력을 좇는 것으로 일생을 보낸, 그러나 그 덕분에 거창한 보직 경력이나 수상 경력을 쌓은 이들도 마지막 수업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다행히도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여 정년이 머지않은 원로교수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점에도 마지막 수업을 제대로 열기 위한 최후의 장애물이 남아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원로교수가 되면, 멀쩡하던 사람도 정신이 약간 갈 수 있다. 자신이 동료보다 나이가 좀 더 많다는 사실 하나로, 막말과 갑질을 하려 들 수 있다. 다가오는 정년이 불러올 권력 공백이 두려워, 측근을 후계자로 ‘심어’ 영향력이 지속되기를 꾀할 수도 있다. 정년이 닥쳤는데도 미련이 남은 나머지 방을 제대로 빼지 않아 후임자로 하여금 연구실 없이 여기저기 전전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지나치게 거창한 정년기념 강연회를 열어, 학과의 재원을 고갈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심적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피하고 싶은 사례들이라면, 닮고 싶은 사례도 있다. 도쿄대학에서 가르치다 정년을 맞은 와타나베 히로시 선생의 마지막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있기 두어 달 전 함께 요코하마에 갔을 때, 항구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 선을 보면서 와타나베 선생은 말했다. 정년을 맞고 나면 한가할 터이니, 부인에게 크루즈 선을 타고 세계 일주를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그러나 그의 부인은, 배 위에서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 소위 일본 정치학계 천황이라 일컬어졌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계자였으나, 그가 마루야마를 학문적으로 계승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는 일찍이 자기 스승의 학설에 반대하였고, 유행하다시피 하는 마루야마에 대한 찬사와 추모 대열에 쉽사리 이름을 섞지 않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정년 이후에도, 그는 매달 많은 양의 책을 정기적으로 살 것이고, 그 책을 자신의 서재에 놓을 것이다. 그는 자식을 낳지 않았으며,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고 내게 말했다.

그러한 와타나베 선생의 바람대로, 그의 마지막 수업에는 아무런 특별 행사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하필 그의 마지막 수업은, 마루야마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일본정치사상사 수업이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진도를 나갔고, 질문을 받았으며, 기말시험에 대한 공지를 하였다. 기말시험에 대한 공지를 끝으로 수업이 끝나자, 박수 소리가 여느 때보다 크고 길게 이어졌다. 와타나베 선생은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조용히 마지막 수업을 같이한 옛 제자들이 좌중에서 일어나 강단으로 걸어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몇 사람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좋았으나, 나는 상상한다. 인생의 과분한 행운이 함께하여, 언젠가 내게도 마지막 수업의 기회가 혹시 온다면, 부족한 나에게 좀 더 어울리는 마지막 수업을 시도해보겠노라고. 먼저 정년기념 강연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미리 공지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미워하지 않은 옛 학생 한두 명이라도 마지막 수업 강의실에 매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선생이 좋아했던 만화책이나 티라미수 조각 케이크를 들고서. 그리하여, 나는 이 직업에 종사한 이래 최초로 무단 결강을 하겠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옛 학생들과의 어색한 공적인 만남, 의례적인 과분한 박수, 행사를 위한 행사에 의한 행사의 꽃다발을 피하기 위하여, 아예 결근하겠다. 나는 이처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마지막 수업을 상상한다. 증발을 상상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