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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코르셋' 여학생 교복, 아동복과 비교해 보니..

입력 2018.07.04. 18:21 수정 2018.07.0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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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사회

[동아일보]

중학생 어린이 옷 비교
“휴!”

4일 서울 한 교복 판매점 주인이 권해준 여고생 교복 상의 단추를 채우려면 심호흡을 한 뒤 숨을 꾹 참아야 했다. 겨우 단추를 잠갔지만 교복은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몸을 꽉 조였다. 여고생과 비슷한 기자의 키와 몸무게에 맞춰 나온 ‘정사이즈’였지만 “이건 못 입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여학생들이 교복을 ‘현대판 코르셋’이라고 부르는 게 괜한 얘기가 아니었다.

모델 몸매에 맞춘 듯한 비현실적인 슬림한 디자인과 아동복보다 작은 사이즈로 오랫동안 여학생들의 원성을 샀던 교복 실태에 최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을 직접 언급하면서 교육당국도 ‘꽉끼는 교복’ 개선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여학생과 학부모들은 오래 전부터 교복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최근 ‘탈(脫)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여성계에서도 “이런 교복을 강요하는 건 인권 침해”라고 지적하면서 교복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관련 청원 건수만 4일 현재 357건에 달한다.

여학생들이 “밥을 먹기 힘들 정도”라는 ‘꽉끼는 교복’ 실태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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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손잡이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어요.”

4일 오전 7시40분경 서울 소재 한 고교 등굣길에 만난 김모 양(17)은 엉덩이까지 덮는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짧은 교복 상의 탓에 지하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기 위해 손을 어깨 위로 올리면 옆구리 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여름 더위에 진한 남색 가디건은 보기만 해도 답답해 보였다. “불편한 교복 때문에 등하굣길도 힘들고, 수업에 집중하기도 힘들어요.” 김 양은 무릎에 닿은 치맛단을 연신 손으로 끌어내리며 교실로 가는 돌계단을 올랐다.

● 초등학생용 아동복보다 작은 교복

본보 취재팀이 이날 만난 여학생들은 기말고사로 바쁜 등굣길에도 교복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등굣길에 교복 대신 편한 체육복을 겹쳐 입은 여학생들이 많았다. 유독 헐렁한 상의를 입은 이모 양(17)이 눈에 띄었다. 남녀공학 학교에 다니는 이 양은 일주일 전부터 남학생용 교복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 “몸에 딱 붙은 상의 때문에 점심시간만 지나면 답답해서 단추를 풀어야 했고, 부채질도 하기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한결 편해요.”

도대체 교복이 얼마나 불편하길래 그럴까. 대형 교복업체 매장에서 서울 C고교 여름 교복 상의를 구매해 초등학교 5학년용(11~12세) 아동복 티셔츠 크기를 비교했다. 어깨너비, 가슴둘레, 길이, 밑단까지 모두 교복이 아동복보다 작았다. 특히 교복 길이는 51.5cm로 아동복 (60cm)보다 8.5cm나 짧았다. 이 교복은 고교 2학년 여학생의 평균 체형(키 160.7cm, 몸무게 57.3kg)에 맞춘 사이즈였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에 비해 키는 15cm, 몸무게는 17kg 큰 여고생이 아동복보다 작은 교복을 입고 하루 10~12시간을 버텨왔던 것이다.

● 라인, 핏 강조한 과도한 디자인이 문제

본인의 사이즈보다 큰 사이즈를 입는다고 불편함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상의 사이즈가 커져도 통이 넓어질 뿐 길이는 거의 차이가 없다. 여학생들은 속옷이 비치는 탓에 속옷 위에 반팔이나 민소매티를 입어야 하는 불편함도 호소했다.

학생들은 ‘라인’, ‘핏’을 과도하게 강조한 교복 디자인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미니스커트처럼 짧은 치마가 여전히 유행이라 치마 길이를 일부러 줄이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치마는 줄여도 상의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실제 대형 교복업체 4곳은 유명 여성 아이돌 모델을 내세워 짧고 달라붙은 교복을 광고한다. 이들 교복은 세일러복 같은 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조차 없을만큼 딱 달라붙어 공연 무대 복장에 가깝다는 평이다. 인터넷 프로필을 기준으로 계산한 아이돌 모델 25명의 평균 키와 몸무게는 164.6cm, 46.7kg였다. 보통 여학생보다 4.6cm 크지만 몸무게는 10kg 덜 나간다. 의학적으로 저체중이다. 깡마른 이들에게나 맞을 법한 교복을 보통 여고생들이 입어왔다.

● 편안한 교복 도입 논의 활발 관건은 학부모, 학교 공감대

여학생 교복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최근 여성계에서 교복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올 초 여성단체인 ‘불꽃페미액션’과 ‘초등성평등연구회’가 여학생 교복과 아동복을 비교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20만 건을 넘기며 화제가 됐다. 일본 등 해외에서 성별 구별을 없앤 교복이 도입됐다는 소식도 큰 관심을 끌었다.

후드티, 반소매티 등 생활복을 교복으로 도입한 학교 사례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06년 반바지에 이어 2014년 후드티 교복을 도입한 서울 양천구 한가람고가 대표적이다. 백성호 한가람고 교장은 “학생들은 더 이상 교복에 신경쓰지 않고 수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학부모들도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교복에 관해 개선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4일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교복 문제를 거론하며 “학생 눈높이에서 점검해 달라”고 말했다. 이미 조희연 서울교육감, 강은희 대구교육감 등 상당수 교육감이 편한 교복을 공약으로 내걸거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편한 교복 확산에 탄력이 불을 전망이다.

다만 일괄적인 교복 개선안이 나오기는 어려워보인다. 교복은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상 학교 자율이다. 학교, 학부모, 학생들 간 합의가 관건이다. 송재범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장은 “이르면 이달부터 편한 교복을 주제로 한 공론화 추진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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