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퇴행적 이념이 되나

2018. 7. 9. 19: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정의길
선임기자

한국에서 관제 우파들이 힘을 잃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새로 출현하는 우파 민족주의 세력들이 우파의 한 덕목인 ‘포용과 관용’보다는 공격성만으로 충만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민족주의는 그 탄생지인 유럽에서 나폴레옹전쟁 때까지는 진보적인 조류였다. 억압받는 소수민족이나 약소국가 독립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는 유럽에서 온갖 전쟁과 분쟁의 한 원인이 됐다. 결정적으로 나치 독일과 그들이 야기한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민족주의는 서방에서 퇴행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2차 대전 이후 서방에서 민족주의는 배타주의, 국가주의, 인종주의와 거의 동의어가 됐다.

하지만 아시아 등지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진보적인 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한국에서 민족주의란 진보와 동의어였다. 한국 사회 기득권층의 뿌리가 친일에 있고 외세에 의해 조국이 분단됐다는 인식으로, 민족주의는 사회개혁과 민주주의를 향한 강렬한 도구가 됐다. 민족주의의 주인공인 우파를 자처하는 기득권층이 일본과 미국에 매달리는 상황은 민족주의를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만들었다. 민족주의는 진보 이념이었다.

2005년 줄기세포 개발과 그 조작을 둘러싼 황우석 박사 사태는 한국 민족주의 풍경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줬다. 황 박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줄기세포 조작 의혹을 보도하는 언론을 공격했다. 그의 조작이 입증됐는데도 지지자들은 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대중집회 등으로 표현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황 박사의 말은 그들을 열광시켰다. 젊은층이 적지 않던 그들은 우파 기득권층을 대표하던 한나라당 같은 기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 상당수는 그때까지 가장 진보적이라는 참여정부 지지층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민족주의가 결여된 기존의 우파에 만족하지 못하다가, 황우석 박사가 드러낸 애국주의에 열광한 것이었다. 당시 ‘황우석과 우익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황 박사 사태는 해방 이후 한국에서 진정한 우파 민족주의가 탄생하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항의로 곤욕을 치렀다.

한국에서 이제 민족주의는 진보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존 기득권층에 반대하면서도 강렬한 우파 성향을 가진 이들의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그들 다수는 지난 촛불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현 정부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한 세력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민주노총 등 노조를 반대하고,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적대적이다. 또 난민과 이주자들을 배척하고 반대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는 용어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기’(폴리티컬 커렉트니스) 개념도 사용한다. 진보진영이 인권이나 성평등 따위를 내세우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기만 한다고 비난하며, ‘입 진보’라고 공격한다.

최근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반대하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은 좌파 음모론과 우파 민족주의가 결합된 기묘한 논리들을 보여준다. 이슬람국가(IS)는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이 만든 조직이고, 이 이슬람국가 대원들이 난민들에 끼여서 각국으로 들어온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이나 유럽에 가는 난민들이 대부분 건장한 청장년인데 이들 중에도 이슬람국가 대원이 끼여 있다,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정부를 만들려는 글로벌리스트들의 음모다, 이런 허황한 주장들이다. 지난해 미얀마에서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탄압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로힝야족은 영국이 식민통치를 위해서 인도 쪽에서 데려온 식민부역세력이니 역대 미얀마 정부가 강력히 대처한 것은 당연하다는 글들이 국내에선 떠돌았다.

2000년 출간된 <우리 안의 파시즘>(저자 임지현 등)은 군국주의적 식민지와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저항세력도 극우 반공주의 매카시즘 폭력을 내면화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격렬한 논란을 부른 이 주장을 지금 돌이켜보면, 기득권 정권에 반대하는 명분만으로 진보진영 안에 혼재할 수밖에 없었던 우파 민족주의 성향을 짚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관제 우파들이 힘을 잃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새로 출현하는 우파 민족주의 세력들이 우파의 한 덕목인 ‘포용과 관용’보다는 공격성으로 충만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한국에서 우파 민족주의의 부상은 어쩌면 세계적인 조류를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인 백인민족주의, 유럽에서 격화되는 난민위기에 따른 극우 민족주의의 재부상 등에 한국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파의 글로벌화인가? Egil@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