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약 발암물질 파동, 제약산업 후진성 드러나

강경훈 2018. 7. 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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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원료 비율 2.8%지만 품목수는 20%
오리지널약 뺀 나머지 99%가 20%시장서 경쟁
가격 정해져 있어 값싼 중국산 원료 도입
의약품 유통시스템 선진화 절실
처방받은 약을 사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변변한 자체 신약 없이 복제약(제네릭)에 의존해 가격경쟁만 벌인 결과라고 봅니다.”

10일 중국산 발암의심물질 원료의약품으로 촉발한 국내 혈압약 파동을 지켜본 제약바이오 업계 고위관계자는 “중국 등지에서 값싼 원료의약품을 들여와 만든 저가 복제약 위주로 사업을 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후진적인 국내 제약산업의 단면을 고스란히 노출한 사건”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9일 오후 중국 제지앙 화아이로부터 수입한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이 들어간 것으로 최종 확인한 혈압약 115개 품목에 대해 제조·판매 중지 조치를 내렸다. 문제가 처음 불거진 지난 7일 219개 품목에 대해 판매 중지 조치를 내린지 이틀 만에 전수조사 과정을 거쳐 해당 원료를 쓰지 않은 104개 품목은 중지 조치를 해제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문제가 된 중국산 발사르탄은 최근 3년간 1만 3770㎏이 수입됐다. 같은 기간 수입한 발사르탄이 48만 4682㎏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8%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를 사용한 혈압약 품목 수는 115개로 국내에서 허가된 총 571개 중 20%에 달했다. 품목 수는 20%지만 실제 매출은 미미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발사르탄 시장 규모는 약 1000억원이다. 이중 오리지널 약인 ‘디오반’과 복합제 ‘엑스포지’(이상 노바티스)의 매출이 각각 240억원과 620억원을 차지했다. 품목수로는 전체의 0.35%에 불과하지만 매출은 80%가량을 차지한다. 디오반·엑스포지를 제외한 99.6% 품목이 나머지 20%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셈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약을 직접 만들지 않고 외주에 생산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체에서 같은 약을 만들어 여러 제약사에 공급, 각각 다른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문제가 된 중국산 원료를 수입한 업체는 9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판매 중지 조치를 받은 제약사는 총 54개였다.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의약품을 직접 만들기에 수익성이 떨어져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 환경도 의약품 위탁생산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의사가 10종류의 약이 필요할 경우 제약사 영업담당자 10명을 만나는 것보다 10개의 약을 만드는 한명을 만나는 게 편하기 때문. 한 제약사 병원 영업담당자는 “의사가 필요한 약이 없다는 이유로 나머지 약을 빼겠다고 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당 약을 채워야 한다”며 “자체 의약품 외에 부족한 품목은 외주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복제약 시장은 다수 제약사가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경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제약사가 마음대로 정하지도 않는다. 약가는 건강보험공단이 정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발사르탄은 한 알에 400~900원 수준이다. 한 제약사 임원은 “의약품 가격이 정해진 상황에서 이익을 내는 방법은 원가를 절감하는 것”이라며 “중국산 원료의약품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인도산 원료의약품은 국산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산의 경우 이보다 낮은 40% 수준이다.

의약품 중 화학물질을 합성할 경우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나 복제약을 만들 수 있다. 또 복제약은 오리지널 약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 해외제약사 임원은 “미국이나 유럽은 복제약이더라도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해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춘 업체만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등 관리가 엄격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국내 제약시장은 복제약에 대한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제약 허가에 필요한 생물학적동등성 실험을 할 때 개발사 한 곳에 위탁의뢰자를 최대 3곳까지만 허용하는 ‘1+3’ 방안을 식약처에 건의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일을 국내 복제약 시장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복제약 품질관리시스템과 의약품 유통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할 것”이라며 “제약사들도 경쟁력 없는 품목을 위탁에 맡겨 품목 수만 늘릴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경훈 (kwk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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