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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400년전 '논어' 구절·궁궐명 적힌 백제목간 나왔다

입력 2018. 07. 12. 02:46 수정 2018. 07. 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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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성인 공자의 어록인 <논어> 의 첫머리 '학이(學而)'편 1·2장의 유명한 문구가 1400년전 백제인의 나무쪽 문서인 목간에 선명한 붓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7세기 백제 사비시대 왕경 유적이 처음 드러난 충남 부여 쌍북리 56번지 한옥마을조성터(<한겨레> 5월16일치 26면 참조)에서 <논어> '학이'편 1, 2장의 구절과 당대 궁궐명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적힌 목간 등이 잇따라 출토된 사실을 이날 자리에서 처음 공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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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구절, 궁궐명 적은 백제목간
부여 쌍북리 왕경유적서 출토
12일 한국목간학회 워크숍서 공개
'목간밭' 왕경유적 보존가치 커질 듯

[한겨레]

부여 쌍북리 백제 왕경유적에서 나온 <논어>목간. ‘학이편’ 1, 2장 구절들을 선명한 먹글씨로 적었다.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중국 성인 공자의 어록인 <논어>의 첫머리 ‘학이(學而)’편 1·2장의 유명한 문구가 1400년전 백제인의 나무쪽 문서인 목간에 선명한 붓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12일 낮 경남 창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 워크숍은 열기로 가득했다. 7세기 백제 사비시대 왕경 유적이 처음 드러난 충남 부여 쌍북리 56번지 한옥마을조성터(<한겨레>5월16일치 26면 참조)에서 <논어> ‘학이’편 1, 2장의 구절과 당대 궁궐명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적힌 목간 등이 잇따라 출토된 사실을 이날 자리에서 처음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유적을 발굴한 울산발전연구원의 한지아·김성식 부연구위원은 이날 판독 내용을 담은 출토 목간들의 내역을 조심스럽게 소개했다. 연구원의 보고문을 보면,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은 모두 17점으로, 문자가 일부라도 판독된 것은 5점이다. 연구원 쪽은 <논어>의 ‘학이’편 구절이 적힌 사면 목간을 비롯해, ‘丁巳年(정사년)’이란 연대명과 ‘岑凍宮(잠동궁)’으로 자체 판독된 목간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논어>목간은 길이 28cm에, 너비가 각각 1.8cm, 2.5cm로 ‘학이편’ 1장 전체와 2장의 서두 일부분을 적었다. 1면은 ‘공자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란 뜻의 ‘자왈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子曰學而時習之 不亦說(乎))’, 2면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뜻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3면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란 뜻의 ‘인부지이불온불역(人不知而不? 不亦(君))’ 구절이 말미 한두글자가 빠진 것을 빼고는 온전하게 씌어 있다. 4면은 ‘유자가 말하기를, 사람됨이…’이란 뜻의 ‘자호유자왈기위인야(子乎 有子曰 其爲人也)’란 구절만 남았다. 특히 3, 4면의 경우 문구 사이 띄어쓰기가 되어있고 띄운 공간에 각주로 추정되는 먹 자국도 보이는 점이 주목됐다. 백제인이 <논어>를 자체적으로 번역해 새겨 읽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다. 윤선태 동국대교수는 “한문을 번역할 때 우리식 어법에 맞게 띄어서 읽는 방식이 구결의 시초인데, 이번에 나온 논어 목간은 한반도 구결역사의 첫 장을 여는 중요한 자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토 목간의 ‘학이편’ 첫구절에 나오는 ‘기쁠 열(悅)’자는 백제 특유의 표기 방식으로, 고대 일본의 <논어>목간의 글자 표기와 똑같다. 중국 산동반도 일대의 고대 제나라 강역의 <논어> 표기와도 연관성이 보여 중국서 전래된 <논어>를 백제가 다시 일본에 전파했다는 실증적 근거로 볼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한반도의 고대 <논어>목간은 1990년대 평양 정백동 낙랑계 고분에서 출토된 기원전 1세기 <논어> 죽간(대나무 문서)이 가장 오래된 유물로 꼽히는데, 전한시대 중국인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에서는 2000년 경남 김해 봉황대 출토품과 2005년 인천 계양산성 출토품이 있는데, 모두 신라시대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선문대가 발굴한 계양산성 목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5세기 한성백제 토기와 목재조각들이 출토층에서 나온 점을 근거로 조사단 쪽이 국내 최고의 <논어>목간으로 단정한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확인된 <논어>목간은 백제인이 쓰고 읽은 사실이 이론의 여지없이 확인되는 최초의 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게 연구자들의 견해였다.

‘정사년’이란 연대와 ‘잠동궁’이란 궁궐명칭이 처음 확인된 쌍북리 출토 목간.

발표회에서는 ‘정사년(丁巳年) 10월20일’이란 연대명과 백제 궁궐명이 확인되는 다른 목간의 문구를 놓고도 논란이 오갔다. 연구원 쪽은 궁궐명을 ‘잠동궁(岑凍宮)’으로 판독했으나, 공개된 확대사진을 검토한 학자들은 획 상태로 미뤄 ‘잠동’이 아닌 다른 글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 목간에는 ‘먹는 쌀 일곱석 여섯두’라는 뜻으로 보이는 ‘飡米七石六斗□(찬미칠석육두)’란 글귀도 판독돼 곡물 입출고 내역 등을 적은 장부였을 것으로 연구원 쪽은 추정했다. 정사년의 연대도 사비시대의 597년(위덕왕 44년)과 657년(의자왕 17년)의 두 가설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연구원은 657년이 유력하다고 봤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필체가 6세기 무령왕릉의 묘지석과 비슷해 597년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마을 이장으로 추정되는 ‘里後(이후)’, 농가로 추정되는 ‘田舍(전사)’ 등 옛 문헌에 거의 보이지 않는 한자어가 들어간 목간들도 눈길을 모았다.

목간이 나온 쌍북리 한옥마을조성터는 학계에서 사비도읍의 백제 관청가이자 물류거점으로 유력시되어 왔다. 2000년대 이래 부근에서 대규모 생산유적, 도로터는 물론, 백제시대 구구단표와 춘궁기 구황사업을 기록한 장부인 ‘?‘좌관대식기’ 등의 중요 목간들이 잇따라 출토됐기 때문이다. <논어>목간과 궁궐명 목간의 추가발굴로 이곳이 백제 생활사 타임캡슐인 목간들의 ‘밭’이란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부여군은 이곳을 부여 도심 발굴대상터 주민들의 이주단지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사실상 굳힌 상황이어서, 유적 보존을 둘러싼 학계와 당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창원/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울산발전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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