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암흑의 동굴서 '기적 생존기' 만든 4가지 요인

남민우 기자 입력 2018. 7. 13. 10:12 수정 2018. 7. 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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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라이 유소년 축구팀 ‘무빠’(야생 멧돼지)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의 전원 구조에 전 세계가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 태국 정부와 구조대는 지난 12일 작전명 ‘멧돼지를 집으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칠흑 같은 5㎞ 거리의 동굴 내부나 수심 40m 시계 제로의 해저 모두 인명을 구조하기 쉽지 않은 극한 상황이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깜깜한 동굴 내부 물속은 잠수용 기기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물이 탁해 깊이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물의 온도도 매우 낮아 체력이 빨리 고갈돼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지난 6일 전직 태국 네이비실 대원 사만 푸난(37)이 구조 활동 중 산소 부족으로 순직할 정도로 현장 상황은 위태로웠다.

동굴에 갇힌 아이들의 모습 /태국 네이비실

현장에 있던 대다수 구조대원은 “구조활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모두가 돌아올 수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요인들이 소년들의 극적인 구조를 이끌었던 것일까.

① 전문가 말에 귀 기울인 경청 리더십

최전선에서 구조 활동을 지휘하며 모든 책임을 감당한 나롱싹 오솟따나꼰 치앙라이 지사의 리더십은 구조 성공을 이끈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치앙라이 지사는 폭우로 언제 동굴이 물에 잠길지, 소년들의 생존해 있는지 등 불확실한 상황에서 구조 책임자가 됐다. 그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열었고, 생존자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생존자 구조 순서를 결정할 때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한 호주인 의사 리처드 해리스가 결정한 그대로 따랐던 게 대표적이다.

현장을 이끌었던 나롱싹 총리

구조가 끝날 때까지 구조 과정을 ‘성과’로 포장하지 않고 중심을 잡았던 점도 찬사를 받는다. 가령, 지난 8일 소년 4명이 처음 구출됐을 때 구조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그의 판단이었다. 구조 순서를 둘러싼 혼선이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② 전 세계 노하우 총집합한 다국적 구조팀

구조 작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소년들이 동굴 깜깜한 동굴 속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견디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동굴 탐사 전문가이거나 수중 잠수 전문가로 자처한 사람들이 13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천㎞를 달려왔다. 다국적 구조팀은 구조 활동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힘을 합쳐 기지를 발휘했다.

호주 남부 출신 마취과의사 리처드 해리스는 태국 동굴 소년들의 기적 같은 탈출을 가능케 한 ‘숨은 영웅’ 중 1명으로 꼽힌다. 30년 경력의 잠수 베테랑인 그는 실종 열흘 만에 발견된 유소년 축구팀 13명이 전원 구조되기까지 자진해서 동굴로 들어가 소년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구조 순서를 정했다. 그는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이 동굴을 안전하게 빠져나간 뒤 맨 끝에서 이들을 따랐다. 구조 작업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주 출신 의사 리처드 해리슨 /조선일보 DB

지난 2일 아이들의 생존 사실을 처음 확인한 사람은 영국의 잠수 전문가인 전직 소방관 리처드 스탠턴과 IT 기술자인 존 볼런튼이다. 전 세계 동굴 조난 사고 때마다 출동 요청을 받았던 이들은 이번에도 직접 입수해 수㎞의 동굴 바닥을 기어들어가 소년들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태국을 직접 방문해 그가 특수 제작한 구조용 소형 잠수함과 암반 굴착 지원하기도 했으나, 실제 구조과정에서는 활용되지는 않았다.

③ 소년들의 마음 살핀 명상 교육

2주 이상을 동굴 안에서 과자를 먹으며 버텨냈던 소년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큰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승려 출신인 엑까뽄 찬따웡(25·사진) 코치의 명상과 마음 다스리기 교육 등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굴에 갇혔을 당시의 엑까뽄 코치의 모습 /태국 네이비실

엑까뽄 코치는 소년들에게 명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체내에 에너지를 비축해두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 하루 먹을 과자의 양을 정해주고, 복통을 일으킬 수 있는 흙탕물 대신 천장에 고인 맑은 물을 마시라고 알려줬다. 소년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자신은 거의 공복 상태에서 버틴 것이다.

한때 소년들을 데리고 동굴에 들어간 코치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그가 헌신적으로 소년들을 보살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비난은 잦아들었다.

엑까뽄 코치는 지난 6일 동굴 안에서 소년들의 부모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 “죄송하다. 아이들을 책임지고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다. 한 소년의 어머니는 “코치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알 수 없다. 절대 코치를 비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④ 악조건 속 신중한 구조

무엇보다 최대 난관은 수영과 잠수 경험이 전혀 없는 소년들이 가능한 한 더 긴 구간을 걸어서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태국 당국은 이를 위해 우선, 구조를 시작하기 전까지 1억ℓ가 넘는 물을 빼내 동굴 내 수위를 낮췄다. 8~10일 3일간 진행된 구조 작업에서는 아이들이 잠수복에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구조 대원과 몸을 연결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일단 구조대의 베이스캠프인 동굴 안 2km 지점에 도착하면 소년들은 들것에 실려 동굴 밖으로 나왔다. 유소년 축구팀 13명은 잠수 전 ‘공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항불안제도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르레 등을 이용해 구조하는 아이들을 구조하는 모습 /태국 네이비실

태국 네이비실이 공개한 구조 동영상을 보면, 두 명의 다이버가 가슴까지 물이 차오른 동굴 안에서 장비를 착용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잠수복과 헬멧을 쓴 구조대원은 준비를 마친 후 흙탕물로 가득 찬 구멍 안으로 잠수해 들어간다. 구멍 안쪽으로는 대원들을 소년들에게 안내할 금속으로 된 라인이 길게 설치돼 있다. 또한 구조대원들이 도르레나 끈 등을 이용해 좁은 틈에서 카약 모양의 들것을 끌어당기는 장면도 등장한다. 지쳐 있는 소년들을 방수 들것에 감싸 이동시킨 것이다.

전원 구조에 성공한 직후인 10일 오후 배수 펌프가 갑자기 고장 나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잠수 전문가 등 구조대 100여명이 동굴 안 1.5㎞ 지점에서 정리 작업을 하는 도중 메인 펌프가 고장 나 수위가 높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대원들은 순식간에 차오르는 물을 피해 서로 소리치며 높은 곳으로 올랐으며 공포감이 엄습했다고 목격담을 풀어놨다.

제싸다 촉담렁숙 공중보건부 사무차관은 구조 직후 “소년들이 구조돼서 감사하고 기쁘다는 말을 했다. 또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소년들은 몸무게가 1~2㎏ 빠진 것 외에는 건강엔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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