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돈벌이로 전락한 학폭위

류인하 기자 2018. 7. 1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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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학폭위 재심’을 치면 학폭위 사건 전문을 내세우는 각종 로펌 홍보광고가 뜬다. / 네이버 화면 캡쳐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학폭위 재심’을 치면 어떤 정보가 제일 먼저 뜰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절차에 관한 정보는 아니다. ‘파워링크’ 광고란에 각종 변호사사무소 링크가 뜬다. 독보적인 노하우로 학폭사건을 처리할 수 있고, 다수의 성공사례를 직접 확인하라는 유인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폭위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의 적절한 처벌 및 화해를 위한 기구가 아닌 변호사업계의 돈벌이 시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일부 변호사사무소는 학폭위에 제출할 의견서까지 대리작성하고, 학폭위에 참석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며 의뢰인을 모은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학폭위에 가해학생의 부모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등장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지방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실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주먹다짐 싸움이었는데 가해학생의 부모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학폭위에 나왔다. 모든 의견 진술과 절차 진행을 변호사가 주도했다”면서 “그 자리가 학생 간의 화해를 위한 자리인지 법정인지 순간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학폭위가 변호사업계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말 그대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학폭위는 사법절차와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지만 엄밀히 말해 사법절차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학폭위 구성원의 자격문제,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진술서를 받는 과정에서의 문제, 의결과정에서의 절차 진행 등 법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나온다. 변호사들은 이 부분을 노린다는 것이 교육계의 주장이다.

특히 가해자, 피해자를 막론하고 학폭위의 의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은 이의제기를 함으로써 결국 소송전에 돌입하는데 이 소송이 레드오션이 된 변호사 업계에 몇 남지 않은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행정심판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작성하는 ‘행정사’는 학폭사건 1건당 60만~70만원을, 변호사는 경력에 따라 300만~500만원에 가격이 책정되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4~5년 전까지는 행정사 100만원, 변호사 500만원 이상이었는데 이쪽도 변호사가 몰리면서 가격경쟁이 벌어져 그나마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이 이들 변호사 배불리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지난 2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1개 교육지원청에 학폭 전담 변호사를 배치하도록 한 것도 사실상 변호사업계 배불리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학교폭력 전문’으로 소개하는 변호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학교폭력대책자문위원회 위원’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다. 한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어떤 변호사는 자문위 활동이 끝나자마자 자문위에서 알게 된 가해·피해학생 부모에게 전화를 돌려 ‘소송을 하게 되면 내게 연락하라’고 홍보까지 했다”고 말했다.

몇 년 전 학교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 ㄱ씨는 “어디나 충돌은 있게 마련인데 변호사가 학폭위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여지는 근절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아이처럼 심하게 폭행을 당했거나 괴롭힘을 당했다면 가해학생을 처벌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변호사가 이쪽으로 들어오면서 이제는 학폭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날 기회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재판과정의 일부처럼 처리한다. 회복적 정의라는 것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이 취합한 서울시내 학교폭력 이의제기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학폭위 심의에 대한 재심건수는 158건으로 2016년(85건)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행정심판도 2016년 43건에서 지난해 146건으로 급증했다. 학폭 관련 소송(민사·행정·형사 등)은 2014년 8건에서 지난해 35건으로 불과 3년 사이 4배 이상 늘어났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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