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위 '재벌개혁 3인방' 배제 논란에 부쳐

박세열 기자 입력 2018. 7. 14. 14:42 수정 2018. 7. 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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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박지원의 '채점표'엔 동의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박세열 기자]

 
여야가 원구성을 통해 상임위원장 선출과 관련된 '룰'을 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8개 상임위 중 운영위·기획재정위·정무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국방위·여성가족위·행정안전위·문화체육관광위 등 8곳의 상임위원장을 가져가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은 법제사법위·국토교통위·예산결산특별위·외교통일위·보건복지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환경노동위 등 7곳을 맡게 됐다. 바른미래당은 교육위와 정보위를, 평화와 정의의 모임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가져간다. 

'나눠먹기' 비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미국처럼 집권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운영을 원활히 하면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통해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평가인데,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이번 국회 원구성 협상에서 민주당은 문재인정부의 정체성을 지키는 국회 상임위원장을 몽땅 한국당에 안겨줬다"며 "위기에 처했던 한국당과 김성태 원내대표의 완승"이라는 채점표를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한 운영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민주당이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고도 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 운영위원회는 여당으로서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초기지다. 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전부 가져가지 않는 '룰'에 따른다면, 운영위는 다수당이 맡는 게 당연하다. 

박지원 의원의 견해도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여당의 짐', '여당의 역할론'을 설파하며 '야당에 통큰 양보를 해야 한다'고 했던 일관된 메시지의 주인공이 그였다. 이번 '채점표'는 그런 '일관됨'에서 조금 벗어났다. 여당은 야당을 배려했고, 꽤 많은 양보를 했다. 야당의 체면도 세워줬다. 예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처럼 상임위원회 하나 잘 통제해 '법안 날치기'나 '법안 보이콧'을 감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다. 만약 '홍영표 대표의 완승'으로 상임위 배분이 이뤄졌다면 다른 말들이 더 나왔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상임위를 다 내 줬다는 비판이 있는데,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게 대체적으로 외교통일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정보위원회 등이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이다. 현재 보건복지위원회나, 환경노동위원회 소관 이슈들에서 문재인 정부가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노동 분야의 최저임금산입 범위 개악이나, 노동시간 단축 후퇴 등 이슈를 보면 그렇다. 보수적인 관료들과, 재계의 거센 '백래시'를 직접 체감한 결과일 것이다. 지지율 70~80%의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런 상황인데, 지지율 50%도 안되는 여당은 어떨까. 여당 의원이 환노위원장,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게 된다면 가뜩이나 정부 눈치를 보는 여당 의원들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물론 자유한국당의 노동관이 매우 우려스럽긴 하다. 그러나 여당이 '퇴행'을 방관하는 것보다, 야당이 날카로운 대안을 내놓는 구도가 더 나을 수 있다. 야당을 이끌어야 한다. 운영하기 나름이다. 오히려 여당 안에 자리잡은 소신 있는 의원들의 정부 견제 활동이 도드라질 수도 있다. 

복지위나 환노위를 집권당이 가져간 사례도 별로 없다. 관행적으로 야당이 맡아 왔던 곳이다. 위원회 자체가 '기울어진 노동 생태계', '기울어진 복지 생태계' 속에 존재하고 있으니, 정부에 대한 비판을 주로 수행하는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17대 국회에서도 야당 소속 홍준표 전 의원이 환노위원장을 맡았고, 18대 국회에서도 야당 소속인 추미애 대표가 환노위원장을 맡았던 일이 있다. 물론 실수도 많이 벌이긴 했지만, 집권 세력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복지위나 환노위는 '장'을 누가 가져가느냐 문제보다는 '운영의 묘'가 절실한 곳이다.  여당이 위원장을 가져왔다고 해서 상임위가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지금 정부나 여당의 퇴행적 노동 정책, 퇴행적 복지 정책을 보면 우려가 앞선다. 

외교통일위원회나 정보위원회는 '역발상'이 필요한 곳일 수 있다. 뒤집어보면 야당에게도 '외교'와 '안보'에서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흔히 여당 필수 상임위로 국방위, 외통위, 정보위를 꼽는데, 정부와 여당이 외교 안보 분야에서 긴밀하게 한 몸이 돼 엇박자 없이 움직이라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들 상임위를 야당에 배려한 것은 '작은 실험'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야당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지, 정부의 일관된 '평화 정책'을 흔들어 외교 안보 정책에 구멍을 낼 지는 지켜볼 일이다. 역시 홍영표 원내대표의 '운영의 묘'를 기대한다. 

박용진 등 '재벌 저격수' 빼는 진짜 이유는 뭘까?

오히려 실망스러운 점은 따로 있다. 정무위 이야기다. 20대 국회 초반 정무위원회에서 재벌 개혁에 앞장서온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이학영 의원, 제윤경 의원 등 '재벌 저격수' 3인방이 정무위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가 났다. 정무위는 금융 기업, 은행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위원회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를 뒤틀고 편법을 일삼아온 재벌에 대한 개혁이 필수적이다. 특히 박용진 의원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이끌어 내는 등, 거대 재벌 기업의 상징적 존재인 삼성의 잘못된 관행을 꾸준히 고발해 왔던 인사다. 이들이 국회 활동을 통해 낸 성과로 불공정한 관행이 시정되고, 잘못된 제도가 바로잡히기 시작한 부문이 꽤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을 정무위에서 제외하려 할까? 

지난 12일 국회를 찾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를 만나 "정부가 규제개혁을 위해 노력해도 국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라며 "규제개혁과 관련해 국회는 물론 민주당 내부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관련해 규제개혁 입법사항으로 인터넷은행 지분 규제와 관련한 은산분리법을 제시했다. 홍 원내대표는 여기에 대해 "규제 문제는 사실 민주당이 소극적이거나 내부 조정이 되지 않아 추진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8월까지는 그런 이견도 해소해서 정기국회 때부터는 정부와 여당이 규제혁신 법안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갖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비이락'일까? 정부의 요청에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는 차원의 상임위원 배정이라면 국회의 존립 의미를 흔드는 일이다. 부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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