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 재처리 허용' 미·일 30년 만기 원자력협정 은근슬쩍 연장

서승욱 2018. 7. 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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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에 플루토늄 제조 권리 인정한 미·일 원자력협정
30년 만기 끝났지만 개정 안하고 16일 자동연장
"한국도 재처리 권리 주장할라, 국제사회 시선 의식"
日 원전 줄며 플루토늄 47톤 쌓여, 원폭 6000발분
협정 한쪽이 폐기 통고하면 6개월뒤엔 자동 종료
日 정부 "트럼프외교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불안"
미ㆍ일 원자력 협정이 30년의 만기를 맞는 16일 자동연장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핵무기 비보유국 중 유일하게 일본에게만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제조를 인정한 협정이다.
지난 6월 백악관에서의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자동연장은 두 나라가 개정 협상을 하지 않고 자동연장되는 쪽을 일부러 선택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15일 “1988년 발효된 협정의 만기가 다가오자 양국 내엔 재협상을 통해 또 수십 년 만기의 새로운 협정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지난 1월 양측은 협정 개정 대신 자동연장을 택했다”며 “이는 자국에도 재처리의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플루토늄 제조는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일본은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사용하지 않고 발전 등 평화적 이용에만 한정한다’는 걸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제조 권리를 인정받았다. 플루토늄을 다시 핵발전에 이용하는 이른바 ‘핵연료 주기(사이클) 정책’이 그 명분이다.

하지만 우라늄· 플루토늄 혼합 MOX(목스) 연료를 활용하는 고속증식로 몬주가 1995년 발생한 사고로 전혀 가동되지 못했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률이 급락하면서 플루토늄은 쌓여만 갔다. 1995~2016년 21년동안 일본의 플루노튬 보유량은 3배나 늘었다.
고속증식로 몬주가 설치돼 있는 일본 후쿠이 쓰루가 핵발전소의 모습.[중앙포토]

결국 원자폭탄 약 600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47톤이 국내외 관련 시설에 보관돼 있다.

이렇게 일본에게만 특혜를 부여한 미·일간 협정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닛케이는 “중국은 일본의 핵 보유와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경계하며 협정을 비판해왔고, 미래의 핵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반발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경우 ‘일본에게만 재처리를 인정하는 건 불공평하다’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 재처리 인정을 요청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원자력협정 개정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각종 요구가 빗발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개정 대신 자동연장을 선택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앞 바다.[중앙포토]
닛케이는 "협정 개정을 위해선 미국 의회의 승인가 필요한데, 의회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됐다가는 한국 등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라며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사히 신문은 “핵확산 반대파들이 만만치 않은 세력을 점유하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자칫 미·일 관계에 찬물을 붓느니 자동연장이 낫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핵 없는 세계’를 주장하며 “플루토늄을 안 줄이면 원자력협정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던 오바마 행정부만큼은 아니지만 트럼프 행정부도 최근 들어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등은 일본 정부에 플루토늄의 적절한 이용과 관리, 감축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놀란 일본 정부는 결국 지난 3일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에서 결정한 에너지 기본계획에 ‘플루토늄 보유량 삭감’방침을 명기했다. 플루토늄 보유의 상한도 조만간 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원자력협정이 일단 자동연장됐지만 일본 정부 내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재협상을 통해 협정을 개정하거나 만기를 새롭게 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사전에 폐기 통고를 하면 6개월 후 협정이 종료되는 “지극히 불안정한 상황”(고노 다로 외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당장 협정을 폐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트럼프 외교의 특성상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와 어떤 딜을 할지 모르니 계속 주시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대세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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