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신안 섬마을 수상한 혼인신고.. 그건 신종 '노예 서약'이었다

허경구 기자 입력 2018.07.1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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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염전주, 지적장애 '염전 노예'와 부부 행세하며 단속 피해.. 법원, 염전주에 징역 1년 6개월 선고
염전주가 거짓 혼인신고한 탓에 뒤늦게 구조된 양정민(가명)씨가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홀로 길을 걷고 있다. 최현규 기자

지적장애인을 착취하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거짓 혼인신고까지 했던 60대 여성 염전주인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염전노예’ 사건으로 문제가 됐던 전남 신안군에서 벌어진 일이다. 염전노예 피해자를 찾기 위한 경찰 조사가 강화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부부 행세를 하며 노동력을 착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조사한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전남경찰청, 피해자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하루 한 끼 먹고 염전서 중노동

지적장애 3급인 양정민(가명·62)씨는 2009년쯤부터 신안에서 염전 일을 시작했다. 부산 직업소개소를 통해 전남 진도의 한 양식장에서 일하다 해남 염전으로 옮겼고, 같이 일하던 염전 노동자의 소개로 신안에 왔다. 1년이 지나지 않아 일하던 염전 주인이 사망했다. 인근에서 염전을 운영하던 A씨(62·여)가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정민씨에게 제안했다. “우리 집에 와서 염전 일을 도와주면 급여를 줄게요.” 생계가 막막했던 정민씨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2010년 6월쯤이었던 것으로 정민씨는 기억했다.

정민씨는 A씨 염전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염전에 바닷물을 들이는 일부터 염전에서 소금을 거두고 포장하고 옮기는 일까지 전부 정민씨가 떠맡았다. 13일 만난 정민씨는 “해가 긴 여름철엔 오전 5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8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13년 A씨 남편이 사망한 뒤엔 일의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이렇게 일해도 염전주 A씨는 약속했던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루 한 끼 끼니만 챙겨줬다. 지적장애가 있던 정민씨는 그게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단속 피하려 염전노예와 혼인신고

2014년 신안군에서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다. 정부, 지자체, 경찰 등이 대대적으로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 당시 300명이 넘는 염전노예가 추가로 발견됐다. 하지만 정민씨는 구조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매년 염전노예 단속이 이뤄졌다.

2015년 경찰은 A씨가 정민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사를 받게 되자 A씨는 “밀린 임금을 다 주겠다”며 정민씨를 설득했고, 갈곳이 없었던 정민씨는 경찰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정민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돈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횡령 혐의만 적용 받아 벌금 300만원형을 받았고, 정민씨는 계속 A씨 염전에서 일했다.

A씨는 2015년 10월 16일 정민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경찰 조사 결과와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남편의 병원비 등 채무로 인해 급여를 지급할 능력이 되지 않았지만, 채무 변제를 위해 양씨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다시 경찰에 적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A씨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양씨와 혼인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A씨는 ‘일 부부’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민씨를 설득했다. “이 곳에 있으려면 일 부부를 해야 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던 정민씨는 A씨가 하자는 대로 동의했다. A씨는 서로의 인적사항을 적은 ‘혼인신고서’를 면사무소에 제출했고 둘은 서류상 부부가 됐다. 그 후로도 경찰 등은 염전노예 단속을 몇 차례 더 진행했지만 둘은 주인과 노동자가 아닌 부부 사이였기 때문에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혼인신고 후 2년 만의 극적 구조

경찰이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와 여성청소년수사과는 신안군을 포함해 도서 지역 일대에 대한 합동점검을 벌였다. 이때 “염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염전주인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뭔가 이상하단 느낌은 있었지만 부부관계인 둘을 무작정 수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A씨와 정민씨의 주거 환경을 살폈다.

정민씨는 A씨 집과 조금 떨어진 5㎡(약 1.5평) 남짓한 방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보일러 등 온열기구도 없었고 창문의 창호지도 다 찢어진 상태였다. 경찰은 바로 분리면담을 실시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정민씨는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말라 있었고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며 “면담을 해보니 한 번도 A씨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었고 잠자리도 따로 하는 등 정상적인 부부로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민씨를 긴급 구조조치한 뒤 수사를 진행했고, A씨가 거짓 혼인 신고를 해 수 천만에 달하는 임금을 미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실제 부부 사이라고 주장했으나, 이후 모든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양씨에게 1000만원을 주기도 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지난 5월 준사기,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의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고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로 벌금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A씨가 2015년 6월 임금 116만원 포함해 2017년 9월 27일까지 양씨에게 3532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민씨는 형사 재판에서 승소한 뒤 7년간 못 받았던 돈을 되찾기 위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지적장애 탓에 당시 일을 자세히 기억하진 못했지만 기자에게 수차례 “돈을 되돌려 받고 싶다”고 했다. 정민씨 사건을 맡고 있는 변호사는 “이와 별도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 배상 소송도 청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여전히 어딘가 있을지 모를 ‘현대판 노예’

노동력 착취를 위해 거짓 혼인신고까지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현대판 노예’들이 여전히 존재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염전노예 사건이 처음 발생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올해에만 경북 농가와 서울 잠실야구장, 충남 농가와 축사 등에서 현대판 노예 피해자가 계속 발견됐다.(국민일보 2월 5일, 3월 12일, 4월 2일자 1면 참조)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극심한 인권침해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박수인 팀장은 15일 “가해자가 염전 노예를 ‘가족’으로 둔갑시켜 법망을 피해가려던 사건”이라며 “이런 일들이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계속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 우리 주변에 감춰져 있는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예민한 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김강원 팀장은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뒤 현대판 노예 사건이 마무리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현대판 노예 사건 ‘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