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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통신사 이익 줄어들까 봐..소비자에 덤터기 씌우는 1588 '대표번호'

김수형 기자 입력 2018.07.16. 18:21 수정 2018.07.18. 00:45


● 통화 대기 시간까지 고객 돈으로…소비자 주머니 터는 '대표번호'

1588, 1577로 시작하는 대표번호는 소비자들에게 친숙합니다. 뒤에 4자리만 추가로 누르면 전화 연결이 되기 때문에 사용하기 쉽습니다. 은행, 카드사, 전자회사 같은 기업들이 소비자 불만과 민원을 접수받는 전화번호는 대게 이런 대표번호로 시작합니다. 기업들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알려주는 번호기 때문에 통화료는 공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시민 대다수는 이 번호가 공짜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통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과금이 되는 것도 억울할 판에 대기 시간까지 온전히 고객 몫입니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10분 이상 전화를 기다린 경험은 국민 대다수가 갖고 있을 겁니다. 대기인이 줄어드는 걸 들으면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고 기다렸다가, 마지막 순간에 전화가 툭 끊기는 경험도 있을 겁니다. 서비스를 빨리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불만을 제기하려 참고 전화를 거는데 대기 시간까지 고객에 내라는 건 불합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화난 고객들을 줄 세워놓고 몰래 주머니까지 털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 음성 무제한 요금제까지 무용지물…10분에 1200원 각오해야

또 다른 착각은 무제한 음성 요금제를 쓰니까 대표 번호에 걸면 통화료가 공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대표번호로 걸면 음성 무제한 요금제까지 무용지물입니다. 요금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50분정도의 한도를 정해놓고 그 이상으로 사용하면 어김없이 돈을 내야 합니다. 게다가 대표번호 말고 영상 통화를 쓴 걸 합쳐서 50분 한도여서 자칫 예상과 달리 바로 돈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음성 무제한 요금제 고객들도 초당 1.98원이 부과됩니다. 10분에 1200원을 각오해야합니다. 민원 제기하러 갔는데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서 10분에 1200원씩 내야 한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겁니다.

민주당 신경민 의원실에서 통신사들로부터 자료를 취합해봤더니 지난 2016년 전 국민의 대표번호 사용량은 54억분에 달했습니다. 액수로 치면 5900억 원에 달합니다. 한 사람당 1만2천원 꼴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1만2천 원을 자신도 모는 사이 내고 있는 셈입니다.

● 공짜 전화 080 번호는 없거나, 꼭꼭 숨기거나

물론 기업이 통화료를 부담하는 번호가 있습니다. 080으로 시작하는 번호인데, 이걸로 걸면 요금 부담 없이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080 번호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번호를 운영하는 업체도 대게 080번호는 꼭꼭 숨겨놨습니다. 홈페이지를 샅샅이 훑어봐도 안 나와서 검색엔진을 돌려야 겨우 발견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화가 난 누리꾼들이 비슷한 업종의 080번호를 묶어서 인터넷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나마 080 번호가 있는 곳은 양반입니다. 아예 없는 곳도 부지기수입니다. 국내 5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가운데 홈페이지에 080 번호를 갖고 있는 곳은 2곳에 불과했습니다.

기업들은 080 번호는 뒤에 나머지 번호를 다 채우면 10자리나 되기 때문에 1588보다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속내는 기업 돈으로 통화료를 내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홈페이지 제일 잘 보이는 곳에 080번호만 올려놓는다면 고객들은 아무 불만 없이 그 번호를 이용할 겁니다.

● 정부 보호 아래 사이좋게 고객 돈 나눠먹는 통신사들

대표번호를 따로 떼서 요금을 부과하는 이유는 이동통신사가 유선통신사를 거쳐 전화를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대표번호를 연결시켜주는 지능망을 개발한 유선통신사들이 있는데, 이곳을 거치기 때문에 비용을 지급해야 합니다. 접속료라는 이름으로 1분에 23원이 책정돼 있는데, 통신사들은 이걸 고객에게 뒤집어씌우는 간편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은 1분에 120원 정도를 고객에게 부과할 수 있고, 유선통신사들은 여기서 23원을 챙깁니다. 통신사들은 윈윈하는 구조입니다. 고객에게 덤터기를 씌우고 서로 남는 장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업자들의 이해관계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는 게 정부입니다. 접속료 23원을 결정해주는 게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통신사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사이좋게 이익을 공유합니다. 이 대표번호 시장에는 사업자들끼리 요금을 내리는 경쟁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현찰이 따박따박 들어오는데다 정부가 가격을 결정해주니 뒤탈이 날 우려도 없습니다.

● 통신사 이익만 걱정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정부가 이런 구조를 방치, 묵인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접속료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버리면 고객에게 요금을 전가하기 어려워집니다. 고객에게 간편하게 돈을 내라고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정부의 의견서를 보면 "전화부가사업자의 접속수지 영향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접속료 인하를 추진해야한다"고 답했습니다. 그 밑에는 "접속료 대가를 인하하면 후발 사업자의 접속수지가 악화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친절하게 통신사의 이익을 걱정할지는 몰랐습니다. 특정 사업자의 이익을 걱정하는 내용을 당당하게 담아서 국회에 의견서로 제출한 정부 부처를 저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통신비 정책을 소비자 보다는 통신사를 중심에 두고 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과격하지만 대표번호 자체를 수신자 부담 번호로 바꾸는 것도 검토 가능합니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방안에도 부정적입니다. 대표번호를 무료로 만들면 기업들이 사용하지 않을 거고, 괜히 번호 자원만 낭비된다는 이유에섭니다.

대표번호 문제는 금액이 상대적으로 소액이고, 소비자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치돼 왔습니다. 격렬하게 항의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정부도 더 신경을 썼겠지만, 국민 대다수가 과금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정부도 무관심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통신 적폐를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과기정통부가 통신사 편이 아니라 소비자 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 주머니 터는 대표번호 문제는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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