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계엄령
[경향신문]
더위의 계엄령이다. 꼬마 호떡이 엄마 호떡에게 너무 뜨겁다고 하자 엄마가 그랬다. “얘야! 그럼 얼른 뒤집어.” 평화로운 촛불을 총과 탱크로 뒤집겠다고 군인들이 아무개씨들이랑 머리를 짜냈다는 소문. 촛불광장이 뜨거우면 차가운 바닷물 쪽으로 수영이나 하러 갈 일이지 말이야.
알베르 카뮈는 연극쟁이여서 희곡을 쓰기도 했다. <계엄령>이라는 희곡은 증오와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민중의 사랑과 저항을 눈여겨 따라간다.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계엄령 속에서도 사랑하고, 아리아를 합창한다. “디에고: 당신 머리칼은 밤의 공기처럼 신선해. 빅토리아: 밤마다 창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려. 디에고: 당신 몸에서 레몬 향내가 나. 서늘한 밤과 맑은 물 때문인가 봐. 빅토리아: 아냐. 당신 사랑이 나를 꽃으로 덮어주어 그래. 디에고: 꽃들은 결국 시들고 말 텐데…. 빅토리아: 그다음은 열매들이 있잖아! 디에고: 겨울이 오면 어떡해? 빅토리아: 그때도 우린 같이 있으니 무슨 상관. 당신이 들려준 노래처럼. 디에고: 이 노래? ‘내가 죽어 백년이 지난 뒤 대지가 그댈 잊었냐고 물으면 대답하려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고.’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디에고: 왜 말을 하지 않아? 빅토리아: 너무 행복해서, 목이 메어서….” 사랑의 힘은 강인하고 뜨거운 것. 동토처럼 차가운 계엄령, 빙하처럼 얼어붙은 땅에도 사랑하고 기억하며 옹기종기 모여든 마을의 위대함.
나는 지난주부터 대서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빙하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 머물고 있다. 이곳의 서울은 레이캬비크. 곁에 ‘비데이’란 작은 섬이 있는데 존 레넌을 기념한 이매진 피스 타워가 있다. 존 레넌의 생일과 기일, 그리고 성탄과 봄날. 오노 요코의 생일에도 빛을 쏜다. 얼음의 계엄령 속에도 ‘이매진 피스’라 24개 국어로 적힌 평화의 탑에선 백야와 극야, 오로라와 함께 ‘빛의 춤’을 춘다. 여름엔 시규어 로스나 지역가수들이 공연을 하는데 ‘이매진’을 합창한다. 겨울엔 빙하 바다에 뛰어든다. 여름의 계엄령, 겨울의 계엄령에도 아랑곳 않는 빛의 춤, 촛불의 노래. 얼마간 이곳에 머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춤과 노래를 보태보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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