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에 빠져 자식 갖는 것도 포기했다는 이 사람

이정은 2018. 7.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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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6)

황삼용 장인이 자개를 0.4mm로 썰어 작품 위에 끊음질하는 모습. [사진 이정은]

미술에서 ‘오브제(object)’란 자연의 물체나 기성품 또는 그 부분품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나전칠기 끊음질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이 하나의 공간 오브제가 된다. 황삼용(60) 장인의 작품이 그러하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황 장인은 17살 때 당시 26살이던 친형 황의용 장인 때문에 우연히 나전칠기를 접하게 됐다. 그 당시 나전칠기는 ‘자개장롱’의 인기로 공장만 열면 돈을 벌었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 나전칠기 공장이 즐비했고, 한 공장당 7~8명씩 분업한 장인이 함께 제작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큰 공장을 운영한 형 옆에서 1976년부터 1998년까지 자개 붙이는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점점 나전칠기의 인기가 떨어졌음에도 이를 천직으로 삼고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났던 장인의 삶은 그 누구보다 다이내믹했다. 눈빛에 작업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한 우물 파느라 자식도 포기한 43년 차 ‘쟁이’
황삼용 장인의 '황소'. [사진 이정은]

“자식을 낳게 되면 우리나라 정서상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도와줘야 하는데, 나전칠기만 해서는 점점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리니 제가 사랑하는 나전칠기를 못할까 봐 자식을 갖지 않았어요. 2010년부터 2018년 지금까지 참 운이 좋았죠. 돌이켜보면 저의 삶이 누구보다 다사다난했지만 지금까지 작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간 주변에서 저를 경제적으로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죠. 특히 손혜원 국회의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평생 이 업을 해야만 불안하지 않는다는 ‘쟁이’인지라 자식을 갖지 않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는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장인은 누구든 공방에 들어와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고 하면 가진 노하우를 전해준다고 한다. 열심히 가르쳐 그 제자가 앞으로 나전칠기 쪽 일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영희 장인 작업 모습. 자개는 전복껍데기를 얇게 잘라낸 것이다. [사진 이정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 그의 옆에는 애제자이자 도제인 권영희(46) 씨가 있다. 14살. 스승과 제자의 나이 차이다. 많은 40대 중후반 가정주부들이 그러하듯 권씨도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됐다. 2014년 취미로 이 일을 시작해 어느덧 4년. 나전칠기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권씨에게 취미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천직으로 삼은 4년 동안의 고충을 물었다. “글쎄요. 전 공방에 나와서 일하는 게 이유 없이 그냥 좋아요. 고충이라면 주말에 신랑과 아이들 눈치 보면서 공방으로 일하러 가야 하는 것이요. 신랑은 늘 ‘또 공방 가?’라고 물어요.”

그의 원동력은 43년 차 황삼용 장인이라 한다. 스승이 열정적으로 차별 없이 가르쳐 주어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첫 3 개월은 호흡 맞추고 저도 적응하느라 어색했지만, 이제는 또 한 주 작업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 늘 기다려져요. 지금은 천직이자 천업이라 생각해요.” 내 눈엔 그도 젊은 ‘쟁이’처럼 보였다.


천직이라 여기는 애제자, 그 자녀들도 같은 길 걸을 채비
권영희 장인의 '쌍구어도'. [사진 이정은]

“밖에서는 유명한 조약돌 황삼용 작가지만, 항상 해맑게 웃으면 공방에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다 퍼줍니다. 전 그런 순수한 선생님을 존경해요. 고3인 큰 아이가 대학 전공을 미술 공예 쪽으로 정했어요. 제가 작업하는 바람에, 제가 즐겁게 일하는 거 보니까 재밌어 보인다며 꿈이 생겼다 하죠. 저 또한 꿈을 좇기에 말리지 않았어요. 중학교 2학년 둘째는 자기도 황삼용 스승님께 나전칠기 배울 거래요. 황 선생님, 저, 우리 아이들이 함께 마음 편히 나전칠기 하는 게 제 소박한 꿈입니다.”

황삼용 장인에게 물었다. 장인의 제자가 되려면 어떤 것이 중요한지. “제자들에게 강조해요. 누구나 장단점은 있다. 작품에도 그러하다. 좋은 점만 배우면 된다고. 비록 우린 ‘쟁이’이지만, 상상력이 무궁무진해야 하고 남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고요.”

끊음질 자개 재료. [사진 이정은]

황삼용 장인은 작업할 때 주로 끊음질 기법, 주름질, 타박이법을 모두 사용한다. 남해안에서 나는 전복껍질(색패)을 주로 사용하고 부분적으로 백패 야광(소라껍질) 패를 사용하는데 주로 귀패와 바닥패를 쓴다. 현재 주로 쓰는 기법은 끊음질 기법으로 이는 자개를 가늘게 잘라 이어붙이는 기법이다.

끊음질은 자개를 이용해 문양을 표현할 때 자개를 1mm 이하의 크기로 자른 후 칼로 끊어 붙이면서 문양에 따라 이어 나가는 방법이다. 주로 조선 전기부터는 끊어 사용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나전 공예의 발전으로 많이 응용되고 있다.

전통 나전칠기의 핵심인 옻칠에 대해서 조심스레 물었다.
“조선 시대에 카슈가 있었으면 썼을 거예요. 어떤 부분에선 자개를 부착할 때 옻칠보단 우레탄이나 카슈가 더 낫죠. 물론 옻칠이 인체에 좋고 고가이며 제작할 때 까다롭지만, 작품으로서 미적인 부분만을 추구할 때엔 대체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단 컬렉터를 속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죠."

황삼용 장인의 '독도'. [사진 이정은]

황삼용 장인에게 인간문화재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인간문화재가 되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죠. 다만 나의 꿈은 계속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오늘도 인터뷰 하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오래전부터 정교함과 우수성을 인정받은 우리의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는 현대사회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 전통 방식과 현대성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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