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난민도 사람입니다..출입국사무소 가니 앉지도 못하게"(종합)

입력 2018.07.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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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보고대회서 '한국사회의 편견' 증언 쏟아져
"난민 신청자에 정확한 정보 제공해야..한국도 예멘 내전에 책임"
예멘 난민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난민 신청자, 난민 인정자, 외국인, 이주노동자, 이런 이름을 붙이면 안 됩니다. 그 전에 '사람'으로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입니다."

모국에서 정치사범으로 몰려 우리나라로 도피해 난민으로 살고 있는 A씨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을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A씨는 20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 공동사무국' 주최로 열린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보고대회에 참석해 이렇게 호소했다.

한 법률사무소에서 난민 신청을 돕고 있다는 A씨는 한 난민 신청자와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가 출입국 관리 직원이 난민 신청자에게 "의자에 앉지 마라. 당장 일어나라. 내가 허락할 때 앉아라"라고 명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A씨는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만 가더라도 난민 신청자들을 범죄자 취급한다"면서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한국 사회는 외국인이 한 명의 사람으로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활동가도 발표에서 난민 신청 단계부터 수많은 권리 침해와 차별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난민 불인정 결정에 대한 행정심판이 진행 중인 자, 난민 신청을 재신청한 자, 1년 이상 체류하면서 체류기한이 임박해 난민 신청을 한 자 등에 대해 권리를 일부 제한하도록 규정하는 난민법 제44조를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그는 "사법부는 난민 행정소송 재판에 제대로 출석하는 비율이 5분의 1도 안돼서 재판이 체류 시간 끌기에 이용되는 의혹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당사자들을 만나보면 한글도 잘 모르고 일자리 때문에 주거지도 불안정해서 소송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난민 심사를 들여다보면 통역사가 허위로 통역하는 사례가 많은데 불허 사유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호주는 1차 심사 거부 판정을 받으면 불허 사유가 200페이지로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A4 반쪽짜리가 한글로 나오고 개별 사유 없이 대체로 '복사 붙여넣기' 식"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0일 오전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토론회를 하고 있다. UN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 공동사무국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최했다. 2018.7.20 xyz@yna.co.kr

제주도민으로서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공동대표는 "'육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제주 사람들'은 예멘 난민을 어떻게 수용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난민 500여명이 단기간에 입도하면서 법무부나 제주도 측도 놀라서 상황을 막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면서 "4월 출도 제한 조치와 6월 예멘에 대한 무비자 입국 불허국가 추가 조치가 연달아 이뤄지니, 육지에서는 '뭔가 문제가 있나 보다' 여기고 제주도에서는 '중앙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여기면서 그사이에 혐오가 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난민 모두에 생계비 지원이 안되니까 특별히 취업 연계를 해줬는데, 이게 취업설명회에 예멘 난민들 모아서 '여기부터 여기 끊어서 농장, 여기부터 여기는 요식업' 이런 식으로 보내졌다"면서 "일을 그만두는 난민이 늘어나면서 업주들 사이에 '예멘 사람이 게으르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법무부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백 대표는 "제주 시민사회는 난민들이 예멘에서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직종을 개발하려고 고민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아랍어나 예멘 음식 교실에 자리를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며, 한 지역신문은 기자 출신 난민을 특별채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인권은 여론에 의해 양보할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므로 법무부는 속도가 아니라 양질의 심사를 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예멘 내전에 있어서 반군 측인 이란과 예멘군 측인 UAE 모두에 무기를 수출하고 있으므로, 예멘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19세기 후반 개항기에 서구 중심의 인종 서열주의를 받아들였으며, 미국 중심의 미디어를 소비하면서 이를 뿌리 깊게 내재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의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서구 인종주의는 독립 후에도 미국 중심 세계 질서가 이어지면서 함께 지속됐다"면서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를 수입하면서 우리는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를 지배했던 의식 구조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소외된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며, 이를 위해 인종차별금지법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재단법인 동천 이탁건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이주 아동의 체류권은 물론 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유엔 아동권리위 권고나 선진국 수준에 준하는 체류자격 정규화 정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날 보고대회는 올해 12월 예정돼 있는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 대한민국 제17∼19차 정부보고서 심의를 앞두고 정부에 시민사회 목소리를 전달하고, 최근 예멘 난민 대거 입국에 따른 난민 혐오 현상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변호사회관에서 21일까지 진행된다.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두레방, 민변,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이주와인권연구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다.

hy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