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Why] 신사동 치과에서 교정받으려고, 땡볕에 줄서고 노숙하는 까닭

김아사 기자 입력 2018.07.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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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치과 원장의 꼼수
서울 신사동에 있는 이 대형 치과는 4층 규모인 본관 문을 닫고 좁은 별관에서 한정된 인원만 진료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지난 18일 오전 치과 별관 건물 밖에 대기하는 환자들, 오른쪽은 전날부터 줄을 선 환자가 건물 내부에서 쪽잠을 자는 모습이다. /김아사 기자

지난 18일 서울 신사동의 한 대형 치과 앞.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 50여 명이 건물 밖까지 줄을 서 있다. 이날 치과가 진료를 시작한 시각은 오후 1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돗자리와 담요, 방석, 모기향, 휴대용 선풍기 등 줄을 선 이들의 짐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교정 치료를 받기 위해 전날부터 밤을 새운 흔적이다.

노숙까지 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지난 5월부터 이 치과 운영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약이 불가능하고 하루에 단 몇 명, 정해진 인원만 진료한다. 환자들은 치료 전날 오후 10시쯤부터 모이기 시작해 당일 오전 6~7시만 되면 치과 주변에 장사진이 펼쳐진다. 교정 치료 중인 중2 자녀를 대신해 줄을 선다는 한 학부모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온종일 건물 밖 땡볕에서 기다리거나, 순번이 밀려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치과 측이 진료 인원으로 고지한 인원은 50명. 순번 탓에 돌아간 이도 많았다.

이 치과는 2016년 매출액이 342억원을 기록해, 치과 중엔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한다. 수백만원을 선급금으로 낸 환자들은 치료되지 않는 상황에 격분해 원장 강모씨를 사기죄로 고소까지 했다. 이 치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급금 받은 후 환자 사실상 방치

본지가 접촉한 이 치과 전직 관계자와 대한치과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치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쯤부터라고 한다. 환자가 줄면서 경영 상태가 악화했다는 것이다. 이 치과는 투명 교정기를 자체 기공소를 통해 만든다고 홍보했다. 투명 교정은 기존의 보철 교정과 달리 탈부착이 가능한 장치를 사용하는 교정법이다. 새로 들여온 3D 프린터 등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교정기 제작이 늦어지는 경우가 잦아지고, 교정 치료 결과와 관련해서도 불만이 제기됐다고 한다. 핵심 고객인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자 금세 환자가 줄었다는 것. 이즈음 직원들에게 임금을 체납하는 일도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 이 치과 관계사가 투명 교정기를 제작 공급하는 과정에서 식약처의 인증을 제대로 받지 않은 중국산 재료를 사용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내부에서조차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는 게 병원 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강 원장은 가격이 80%가량으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사용을 강행했다고 한다. 협회 관계자는 "당시 병원 내부에서 작성된 내부 일지 등을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이후 이 치과에서 일하던 의사와 간호사, 치위생사들이 집단 퇴사했고, 현재는 소수의 직원만이 남아 사실상 치료 중단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치과 측은 "인력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진료 공백이 있었던 것일 뿐"이라며 "현재 정상적 치료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고의 일탈 의혹

수상한 것은 강 원장의 전력이다. 강 원장은 지난 2001년 W 치과를 열었다. 2007년쯤부터 양악수술과 교정 치료로 유명해졌지만, 지금 치과처럼 직원들이 갑자기 퇴사하고 선급금을 받은 원장은 치과를 포기하는 전철을 밟았다. 실제 W 치과는 2012년 폐업했다. 강 원장이 현재의 치과를 다시 개원한 것은 이듬해인 2013년이다.

현재 경찰에 강 원장을 고소한 이들은 1000여 명. 경찰은 피해 액수를 20억~30억원쯤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협회는 이 치과에서 치료받은 환자를 1만 명쯤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은 강 원장이 병원 운영에 사용했어야 할 돈을 빼돌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 강 원장은 W 치과를 운영하며 탈세했다가 처벌받은 적이 있다. 그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현금 매출을 신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47억원을 탈세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0억원을 선고받았다. 검찰 조사에선 그가 2개의 장부를 만든 뒤 세무조사에 대비해 실제 매출 내역을 직원들의 집이나 자동차에 보관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강 원장에 대해 두 차례 계좌 추적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모두 기각했다. 사기죄 혐의에 다툼이 있다는 이유다.

강 원장은 치과 관련 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치아미백 제품 생산을 하는 '화이트생활건강'을, 2016년에는 투명 교정기를 생산하는 '클리어라인'을 만들었다. 올 초에는 플라스틱 투명 교정기를 개발한 '이클리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치과에 투명 교정기를 공급하는 회사를 직접 운영한 것이다. 의료계에는 강 원장이 이 회사들을 이용해 국내 치과 일을 정리하고 해외에서 치과 법인을 만들려 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환자들은 정상적으로 다시 치료하거나 환불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병원 측이 치료를 완전히 중단하지 않은 탓에 사기죄 적용이나 손해배상 소송 제기 등이 어려워지는 면이 있는 것. 이 때문에 강 원장 측이 폐업만 하지 않는 꼼수를 쓴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돈을 받고 치료하지 않으면 곧바로 사기 혐의에 해당할 수 있지만 직원 퇴사 등으로 고의가 아님을 주장하며 최소한의 치료를 이어가 혐의 적용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더욱이 교정 치료에 2~3년이 필요하고 개인마다 치아 상태가 달라 과실 등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도 환자에게 불리한 요소다. 본지는 강 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