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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현대판 노예제' 대응할 법적 틀이 아직 없다"

입력 2018. 07. 24. 19:56 수정 2018. 07. 2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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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공익법센터 어필 김종철 변호사

미국 국무부에서 지난달 ‘인신매매 척결 영웅’ 10명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으로 선정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1년 사조오양 소속 원양어선 ‘오양75호’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이 뉴질랜드로 ‘탈출’했다. 이들은 뉴질랜드 정부에 한국 선원의 욕설, 폭행, 성추행, 임금체불을 호소했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원양어선 선원의 69%(3374명)를 차지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주어선원의 인권침해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찾아 피해 당사자를 만나고, 사조오양 본사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면서 문제 해결에 나선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47) 변호사 등은 해마다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하는 미국 국무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2012년 인신매매 보고서 뉴질랜드 항목에는 한국 국적 어선에서 “여권 압수, 엄청난 빚, 신체적 폭행, 정신적 학대,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는 내용이 실렸다.

‘한국 원양어선 이주선원 강제노동’ 고발
‘2018 인신매매 보고서 영웅상’ 수상
최근 미 국무부에서…한국인 두번째

한국 ‘팔레르모 의정서’ 뒤늦게 비준
사람 사고팔때만 처벌…노예제 방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 ‘난민’ 관심”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가운데)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인신매매 척결 영웅' 시상식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과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오른쪽)으로부터 상을 수여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에게서 ‘현대판 노예제도 근절을 위해 활동한 인신매매 보고서 영웅상’을 받았다. 2014년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단체인 다시함께센터 고명진 센터장에 이은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다. 미 국무부는 인신매매 보고서 발표와 함께 인신매매 근절에 앞장선 사람들에게 이 상을 수여한다.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정의를 지키는 변호사로서, 강제노동 문제를 밝혀낸 연구자로서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미 국무부가 밝힌 수상 이유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 어필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인신매매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다. “‘인신매매’의 뜻은 사람을 사고 파는 고전적인 의미라기보다는 ‘현대적 노예제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국에서는 공연 비자를 받고 들어와 성매매 등을 강요받는 여성 이주노동자, 장시간·저임금에 시달리는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가 인신매매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원료로 물건을 만드는 기업도 넓은 의미의 인신매매에 연루된다”고 했다.

한국은 이미 2000년 여성·아동 등의 인신매매를 금지한 유엔의 ‘팔레르모 의정서’에 서명했지만, 국회 비준은 2015년에야 이뤄졌다. 김 변호사는 “의정서의 인신매매 의미는 굉장히 포괄적”이라며 “성적 착취, 노동 착취, 장기 적출을 위해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 강제력 행사와 취약성을 이용해 사람을 이동시키고 건네주고 숨기고 받는 행위 등을 모두 인신매매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이 뒤늦게 의정서 비준을 하고도 관련 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형법에선 사람을 매매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식으로 인신매매를 정의해 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사람을 사고 파는’ 인신매매만 처벌이 가능합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염전 노예’ 사건 가해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거나, 성 착취 인신매매자가 출입국관리법과 성매매알선법 위반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만 받는 이유다. 김 변호사는 “경찰 등 공무원은 ‘피해자’를 성매매 여성이나 불법체류자로 인식한다. 한국에는 현대적 노예제에 대응할 법적 틀이 아직 없다”고 꼬집었다.

‘2018년 인신매매 보고서’는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노동착취 인신매매 문제에 충분히 대처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처벌받고 추방당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지난해 한국에서 인신매매로 유죄가 확정된 42명은 집행유예를, 3명은 벌금형에 그쳤다는 점을 짚으며 “인신매매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도가 제한적이고 일관성이 없다”라고 짚었다.

김 변호사의 관심은 한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강제노동을 시키는 사람도 나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을 계속 쓰는 것도 강제노동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는 2011년부터 한국 기업이 진출한 멕시코, 방글라데시,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현지조사했다. 지난해 유엔은 한국에 대한 권고문을 통해 국외진출 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고, 하청업체 등에 대한 ‘인권실천 및 점검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하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국가보다 더 힘이 세진 기업의 인권침해는 다툴 방법이 아직 많지 않다. 기업이 인권침해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강제노동 등 인신매매로 생산된 물건을 사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첫걸음을 ‘난민 문제’로 떼었다. 사법연수원 시절 난민 지원단체인 ‘피난처’ 봉사활동을 하며 “돌아갈 나라가 없는, 우리 사회에 가장 약한 사람”인 난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난민 지원을 하다 보니 구금된 사람을 많이 보게 됐고, 난민과 비슷한 처지인 강제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또 다국적 기업의 인권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더군요.”

김 변호사는 법조인이면서도 “법적 수단은 여러 해결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개별 사건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이주어선원의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 같은 심층 연구, 법·제도 개선, 난민영화제를 통한 인식 변화, 국제기구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어필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뭉친 상근변호사 5명과 같은 마음으로 일할 행정 간사를 모시기 위해 후원을 받고 있다. (국민은행 006001-04-263886, 공익법센터 어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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