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 안전모, 무료대여 나흘만에 절반 사라졌다

이벌찬 기자 2018. 7. 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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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 못따라가는 시민의식
따릉이 안전모 대여 시작 하루 전인 지난 19일 여의도 대여소의 안전모 보관함. 꽉 차 있던 안전모는 대여 나흘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안전모는 보관함이나 자전거 바구니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김지호 기자


서울시가 공공 자전거 '따릉이' 안전모를 무료로 빌려준 지 나흘 만에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영등포구 여의도 따릉이 대여소 30곳에 안전모 858개를 비치했다. 오는 9월 28일부터 안전모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사전 서비스였다. 그러나 시행 5일째인 24일 점검해보니 404개(47%)가 분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전역 대여소 1290곳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시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회수율이 낮을 줄 몰라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시민의 양심(良心)을 믿고 시작한 공유 경제 서비스가 흔들리고 있다. 여의도 지역 따릉이 안전모 무료 대여는 한 달짜리 시범 사업이다. 따릉이를 빌릴 때 별도 대여 절차 없이 안전모도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안전모는 자전거 바구니에 두거나 보관함에 비치해뒀다. 반납할 때는 자전거 바구니에 두거나 가까운 보관함에 넣으면 된다. 그러나 이용자가 아닌데도 안전모를 가져가거나 쓰고도 돌려주지 않는 사례가 잇따랐다. 김백영(72) 따릉이 관리요원은 "따릉이를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안전모를 무작정 가져가는 사람을 현장에서 붙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역 앞 따릉이 대여소에 개인 자전거를 탄 30대 남성이 찾아왔다. 남성은 보관함에서 안전모를 꺼내더니 눌러쓰고 떠나려 했다. 따릉이 관리요원이 "안전모는 따릉이 이용자만 빌릴 수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남성은 대꾸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22일 오전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앞에서는 나들이 나온 중년 남녀 5~6명이 안전모 보관함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이게 뭐냐, 신기하다"며 하나씩 집어가려 했다. 시 직원이 나서서 "자전거 빌리는 분들을 위한 것"이라며 막았다. 24일 여의도 한강변과 지하철역 주변 등에서는 개인 자전거를 타면서 따릉이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안전모 사라진 따릉이 - 바구니 24일 낮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따릉이’ 대여소에 세워진 자전거 바구니에 안전모가 보이지 않는다. 시는 지난 20일부터 여의도 지역 따릉이 대여소 30곳에 안전모를 비치하고 있지만 나흘 만에 절반 정도가 분실됐다. /이태경 기자


서울시는 당초 따릉이 안전모에 태그를 부착해 위치 추적과 신원 확인이 가능한 대여·반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한 해 통신비로만 12억원이 들어 별도 장치 없이 운영하기로 했다. 시민의식을 믿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전모 분실률이 높게 나오면서 무료 대여 사업을 아예 폐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절반 수준의 회수율로는 열흘도 못 버티고 시범 사업을 종료해야 한다. 시는 시행 3일째인 22일부터는 "대여소 보관함에 안전모를 가득 채워넣지 말라"는 지침도 내렸다. 서울 전역 안전모 회수도 일주일에 한 번 하기로 한 것을 세 번으로 늘리기로 했다. 사업 시행 하루 전인 19일에는 안전모가 한꺼번에 도난당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여의나루역 따릉이 대여소 보관함에 넣어둔 64개 안전모 중 30여개가 시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몇 시간 사이에 사라졌다.

따릉이 안전모와 같은 공유 경제 실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책, 우산, 상비약 등 함께 나눠쓰자고 시작한 서비스가 일부 시민 때문에 폐지된 경우가 많다. 대전시는 지난 2014년 자전거 안전모 150개를 엑스포 시민광장과 무역전시관 등지에 있는 대여소에 배치했지만 두 달도 되지 않아 90%가 사라졌다. 서울 경의중앙선은 2016년 1월부터 지하철 역사 도서관 '독서바람 열차'를 운행했지만 7개월 만에 책 500여권 중 80여권이 사라졌다. 서울교통공사도 지난 2011년 양심도서관 13곳에 책 1300여 권을 비치했지만 이 중 9곳의 회수율이 3%대에 그쳐 2년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해 7월부터 구청과 보건소, 22개 모든 동주민센터에 공유 우산 450개를 무료로 빌려주는 '청렴 우산' 서비스를 시작했다. 25개 자치구 중 우산 공유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실시한 곳은 강남구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24일 강남구 관계자는 "현재 회수된 우산은 30~40개에 불과하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5월 지하철 5~8호선 35개 역에 반창고, 생리대 등을 비치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이 불필요하게 많이 가져가 시범 운영 6개월 만에 사업을 중단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시민이 가족 단위의 소규모 공동체 생활에만 집중해 공유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도 많은 국민이 공공서비스로 제공되는 물건들을 공짜 물건으로만 여긴다"며 "우리 사회는 신뢰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최소한의 비용을 부과하거나,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시 같은 대도시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적더라도 비용을 부과하고, 사용자 확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관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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