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저, '페미'라고 생각하면 어쩌죠?"..페미니즘, 학내 갈등의 씨앗이 되다

김수연 입력 2018.07.25. 07:00 수정 2018.07.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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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커트 한 여학생인데 페미니스트로 오해받을 수 있나요?

지난달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공개 질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는 1년 동안 쇼트커트를 하고 있는 중학생입니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고, 메갈들(극단적 페미니스트)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데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이니 뭐니 하면서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쇼트커트을 한 여자를 보면 페미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쇼트커트를 한 것 때문에 페미로 오해받을 수 있나요? 그리고 페미들 때문에 쇼트커트 여성의 이미지가 나빠지지는 않았는지요? 페미들 때문에 편하고 제가 좋아하는 머리 스타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ID가 비공개 된 글이니, 글쓴이가 실제 쇼트커트를 한 여학생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알 수 있는 사실은 학교에서 이른바 '페미'를 대하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A군
"'아싸'(아웃사이더) 아시죠. 대놓고 따돌리는 게 아니고 안 끼워주는 거죠."

A군은 여학생들이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군은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아이들을 대놓고 따돌리거나 하지는 않는다"며 "동아리에서 활동에 안 끼워주는 식으로 조금씩 배제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학생들이 이른바 '아싸'(아웃사이더)가 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A군은 설명했습니다.

A군은 또 "여학생 중에 페미니스트가 있긴 하다"면서도 "본인들은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기는 껄끄러워한다"고 말했습니다. A군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SNS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리면 좋아요 보다는 '싫어요'·'슬퍼요'가 훨씬 많이 달리고 부정적인 댓글 일색"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충북 △△중학교 '여성 혐오 표현 벽보 붙였더니 남성 혐오 벽보도 나와'

충북의 한 중학교에선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여학생 10여 명이 모여 만든 페미니즘 연구 동아리에서 "여성 혐오 단어를 쓰지 말자"는 취지의 벽보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여혐' 단어에는 김치녀·된장녀 등의 비하 단어와 '년'으로 끝나는 욕설 등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동아리 학생들은 이 벽보를 학내에 붙였습니다.

이튿날, 이번엔 일부 남학생들이 "'남성 혐오' 단어를 쓰지 말자"며 벽보를 붙였다고 합니다. 이른바 '남혐' 단어에는 '놈'으로 끝나는 욕설과 한남 등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페미니즘 동아리는 남학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 교사 B씨는 "여학생들의 벽보를 남학생들은 공격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학교에서 성 대결 양상의 갈등이 생기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도 □□고등학교 "'성차별 발언하지 말자' 벽보 붙이니 SNS로 공격"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최근 있었던 일입니다. 한 여학생이 '성차별 발언을 하지 말자'라는 벽보를 만들어 학내에 게시했다고 합니다. '성차별 발언'에는 "여자는 시집이나 가야지"·"(남자 교사의) 오빠라고 불러라" 등의 발언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그러자 일부 남학생들이 이 여학생의 SNS에 부정적인 게시글을 다는 방식으로 반발했다고 합니다.

이 학교의 이야기를 전해준 교사 C씨는 "'너 페미지?'라는 말이 공격적인 단어로 인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C씨는 "학생들이 인터넷 댓글이나 방송 등을 통해 '페미'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배운다"고 덧붙였습니다.


#청소년페미가 겪는 학교폭력 #집단 민원 제기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실제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활동하는 집단도 생겼습니다. '청소년페미가 겪는 학교폭력'은 교육청과 국민신문고 등에 민원을 넣는 방법으로 집단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성 혐오 학교 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학생 대상 페미니즘 교육 요구, 교사와 교직원 대상 페미니즘 연수 정례화 등을 요구할 정도로 교육 제도의 변화를 원한다."

서울시교육청 측은 이들의 민원을 해당 과에 전달하고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청소년페미가 겪는 학교폭력'은 지난 13일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지난 20일 경기도교육청에도 민원 제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 차원에서 관련 민원을 파악하고 있거나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 학생부에서 빼달라고 하더라"…사회를 옮긴 학교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D씨는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학교로 옮겨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D씨는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아이들과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아이들이 생활기록부에서 이 책을 빼달라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입학사정관은 남자가 많을 텐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D씨는 "단순한 성희롱·성매매 예방 교육을 넘어서 성평등 연수 확대를 통해 교사의 지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혐오가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페미니즘을 둘러싼 학내 갈등은 계속될 것 같다고 학생과 교사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김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