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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동아시아 대전쟁을 주목하는 이유

임기환 입력 2018. 07. 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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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50]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역사란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 그 과거를 아는 게 오늘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수업시간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위 지인이나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이런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하지만 역사 연구자라고 해서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교육하는 이유는 참 다양하고 때마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근자에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굳이 그런저런 이유를 따져보지 않고도 역사에 큰 관심을 갖는다. 꼭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온 숱하게 많은 궤적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동기나 이유로 역사에 접근하든지 간에 역사를 알고 공부하다 보면 '역사의 교훈'이라는 제법 실용적이기도 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우리 고대사를 공부할 때 이런 교훈적 역사로서 기억해야 할 대목으로 7세기의 역사를 첫째로 꼽는 데 나는 주저하지 않겠다. 그것은 7세기가 한국사는 물론 동아시아사 전체에 걸쳐 여러 나라와 종족, 수많은 개인의 운명을 가를 격동의 사건들이 점철돼 갔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변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국사 교과서 등 여러 역사책에서 이 시기를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왔다. 예컨대 우리가 기억하는 고대사의 인물들을 꼽아보시라. 아마도 7세기에 활약하였던 인물이 다수일 것이다.

얼핏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만 손꼽아 보아도 면면이 다 만만치 않다. 7세기 초두를 수양제에 맞서 살수대첩으로 장식한 을지문덕을 비롯해 안시성전투에서 당태종의 자존심을 짓밟은 양만춘, 고구려 말기의 집권자인 풍운아 연개소문, 백제의 멸망을 감동적인 최후로 지탱하고자 했던 계백, 신라 삼국통일의 두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김춘추와 김유신 등등. 그 외에도 숱한 인물들이 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였지만, 위 인물들에게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할애하는 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안악3호분 행렬도 (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 7세기는 동북아시아에서 수많은 전쟁이 거듭되는 전쟁의 시대였다.

이와 같이 국가의 존망을 짊어지고 활약하였던 한 시대의 '주인공'들이 다수 등장하게 된 배경은 이 7세기가 여러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이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250년 넘게 지속된 분열을 넘어서 수·당이라는 통일제국이 등장하였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급격한 국제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한반도와 만주에 자리 잡고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간에는 치열한 상쟁이 거듭되면서 동아시아 전체 국제 정세의 변동과 맞물려서 급격한 정세 변화와 세력 재편으로 확대돼 갔다.

그러한 재편 과정에서 동북아시아에서는 대전쟁이 8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고구려-수 전쟁, 고구려-당 전쟁, 나당연합-백제 전쟁, 나당연합-고구려 전쟁, 신라-당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였고, 신라가 한반도의 통일국가로 성장하였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국제 정세 운영의 중심축이었던 고구려가 소멸되었다는 것은 곧 그 변동과 재편의 진폭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동안에도 7세기의 대전쟁, 그중에서도 고구려와 수(隋), 고구려와 당(唐) 사이의 전쟁은 민족항쟁사 내지는 국난 극복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높이 평가돼 왔다. 수양제의 대규모 침입을 물리친 살수대첩을, 고려 때의 귀주대첩과 임진왜란 때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민족항쟁사상 3대첩 중 하나로 손꼽거나, 당태종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안시성전투를 고구려인의 기상을 드높인 예로 들어 칭송하는 시각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민족항쟁사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다 보니 자연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데 소홀히 하게 된 점도 없지 않다. 특히 외민족의 침략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관적 인식은 은연중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전쟁의 발발 배경이나 전쟁 결과에 대한 이해보다는 전쟁의 경과나 승리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은 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게 단순한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전쟁은 국내외 다양한 요인과 배경에 의해 발생하고 전개되는데, 무엇보다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전쟁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전쟁의 외적 환경과 조건을 파악하는 주요한 관점이다. 동시에 전쟁이라는 격렬한 환경에서 각 국가 구성원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결집 혹은 분열해 갔는가 하는 점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격동기 역사에서 한 국가의 멸망과 생존이 사회 내부의 동향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역사의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왜 멸망하고,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아 삼국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을까? 신라가 삼국통일을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 통합 과정, 그리고 이후의 역사적 전개는 한국사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7세기 대전쟁을 살펴보는 것은 한 시대의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이기도 하다.

요즘 남북 관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정세로서 올해 안으로 북·미 간에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게 되리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자주 듣게 된다. '종전'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동안 우리가 '휴전'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함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전쟁의 선택이란 어리석은 판단을 가리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거의 3세대에 걸쳐 전쟁의 위기감이나 전쟁 속에 수많은 사람의 삶이 놓여 있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라. 그런 시대가 바로 7세기였다. 오늘 우리에게 충분히 교훈적인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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