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양승태 행정처, 소송규칙까지 고쳐 '강제징용' 재판개입 정황

2018. 7.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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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사법정책실 문건에
"서면으로 입장 반영안 신설 노력"
2015년 대법, 민사소송규칙 고쳐
"국가기관, 대법 재판에 의견서 가능"
제3자인 외교부 의견 제출 실현돼
검찰, 법관 해외파견과 연관성 의심

[한겨레]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맨 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을 둘러싼 ‘양승태 대법원-외교부-청와대’ 삼각커넥션 의혹이 검찰의 핵심 수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정부의 재판 관여 ‘통로’를 열어주려고 관련 규칙까지 일사천리로 갈아엎은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26일 <한겨레> 취재 결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2013년 9월 ‘대일본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외교부 입장을 강제징용 소송에 반영하는 계획을 짰다. 해당 문건에는 “외교부 입장을 ‘서면’으로 재판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신설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외교부는 2012년 8월 대법원이 ‘미쓰비시 등은 강제징용 피해자 9명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이후 지속해서 불만을 제기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외교부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어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재판에 반영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2015년 1월, 대법원은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한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익 관련 사항에 관하여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급심이 아닌 대법원 재판에 한해 소송과 관련 없는 제3자의 의견도 듣겠다고 규칙을 변경한 것인데, 대법원은 이를 ‘상고심 충실화’라는 이유를 붙였다.

이후 박근혜 정부 초대 주일본 대사를 지낸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교부는 법원행정처가 닦아놓은 ‘내규 고속도로’를 적극 활용했다. 일본 전범기업들을 대리하던 김앤장은 2016년 10월 ‘대한민국 외교부’에 의견서를 요청했다. 파기환송 과정을 거쳐 대법원에 재상고된 지 3년이 지나서야 당사자도 아닌 외교부의 의견을 듣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회’를 얻은 외교부는 대법원에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려운 사안” 등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당시 행정처가 외교부와 긴밀히 교감하면서 재판을 미루는 대가로 법관 해외공관 파견 확대 등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을 했던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대로 사건이 다시 올라온 지 5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앞서 대법원이 내린 ‘배상 책임’ 판단을 따랐다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단 몇 개월 만에 끝났을 사안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평가다.

행정처가 외교부를 ‘창구’로, 사실상 청와대와 교감했다고 볼 만한 대목도 있다. 2014년 3월 정다주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서, 행정처는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을 접수한다. 또 대법원에서 “하급심 판결을 교정”하는 대가로 “재외 공관 파견에 적극적 협조”한다고 계획한다. 대법원 자체조사단도 이에 대해 “사법행정권이 대법원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고, 본안 결론을 함부로 관측하는 것은 실행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사건이 대법원에 발이 묶여 있던 시기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ㄱ판사는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시 선배 연구관과 대법관 등이 (미쓰비시 사건에 대해) ‘한일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라며 재검토도 지시했는데, 대법원이 자신이 내린 판결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는 <한겨레>에 “당시 외교부에서 의견을 제기해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파기환송 고려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파기환송을 검토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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