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대학원에 가고 싶은데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입력 2018. 7. 2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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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람들은 가끔 내심 결정을 내려놓고서, 상대의 인정을 얻기 위해 의견을 구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평생을 함께하기로 이미 자기들끼리 약속해놓은 뒤, 결혼 상대를 부모에게 소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결혼생활이야 어차피 당사자가 알아서 감당할 일,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면 그만일지 모른다. 의례적으로 “저 사람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질문에, 정색을 하고 약혼 상대의 단점을 솔직히 말했다가는 오히려 서로 감정을 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역성을 들면, 세월이 흐른 뒤에 난처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했건만, 막상 함께 살아보면 상대가 꼭 계속 좋으리란 법은 없기 마련. 결혼생활의 위기에 봉착한 자식이 어느 날 찾아와 따지기 시작하는 거다.

총명한 학생이 찾아와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고 상담을 청할 때는 어떤가. 요즘 세상에 순수 학문을 추구하겠다는 뜻이 가상한 나머지 “음, 세계적인 학자가 될 기운이 느껴지는걸. 자네, 도(道)를 알고 싶지 않나”라고 부추겨야 할까. 덜컥 대학원 진학을 권했다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아와 따지면 어떡하란 말인가. 아니 대학생이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허락해주는 교수가 어디 있어요! 좀 자세히 알아도 보고, 반대도 하고 그래야지, 교수가! 이럴까 두렵다. 그래서 21세기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일이 갖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 자상하게 말해주고 싶다. 학위 취득 후, 취직 기회가 충분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학생들도 대개 알고 있다. 따라서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상담을 해줄 필요가 있다.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진리를 일종의 먹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 하는 연구가 먹고사는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증명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심해요. 한국에서는 개를 먹잖아요? 그러니 개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죠. 사람들이 개를 먹는 사회에서 개를 키우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겠죠. 얼마 전에도 이웃집 개에게 먹이를 줘서 유인한 뒤 목을 달아 죽이고 사람들이 나누어 먹은 일이 있었죠. 보도에 따르면, 개를 키우던 여성의 아버지에게 함께 먹자고 초대까지 했다고 하네요. 한국에서 진리라는 이름의 개를 키우고, 사랑하고, 탐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일 수 있어요.

그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면, 왜 학자들은 진리탐구에 종사하는 거죠?

비극적이고 로맨틱하니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세요. 박해받을수록 사랑은 뜨거워지기 마련이죠.

그렇다면 저도 진리와의 화끈한 로맨스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음, 혹시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았나요. 일종의 심리편향인데, 이런 거죠. 무식할수록 용감하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진리를 안다고 설치는 반면, 유식한 사람일수록 진리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거죠.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매체에 나와서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은 대개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아요.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게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라면, 진리를 결국 다 알 수 없다는 게 학문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요컨대, 진리를 알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서 학문을 하는 셈이죠.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렇다면, 저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를 찾아 취직해야 하는 걸까요?

적성에 맞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가 진정한 나일까? 대학원에 다니면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돈을 버는 건 결국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질지도 모르죠.

선생님이 이 길이 적성에 맞는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글짓기 숙제를 낸 적이 있었어요. 어떤 주제로 써와도 좋다는 뜻에서, 칠판에 “글짓기 주제는 자유”라고 쓰셨죠. 다른 학생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상에 대해서 글짓기를 해온 반면, 나는 자유(liberty)에 대해 글을 써갔죠. 담임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면서, 회사에 취직해서 매출 떨어뜨리지 말고 다른 길을 가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학자가 되면 좋은 점은 없나요?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책도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죠. 나도 책을 읽으면 행복하지만, 책도 나에게 읽히는 게 분명 행복할 거야, 라는 충족감이 들죠. 또 직장인들이 월요일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할 때, 창문을 열고 “월요일이란 무엇인가!”라고 소리를 지를 수 있어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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