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소득주도 성장에 당의 입혀 포장만 바꾼들 ..
지금 필요한 건 간판 교체가 아닌 효율성 높일 혁신
청와대 대변인은 “포용적 성장은 상위개념이다. 하위개념으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포용적 성장은 아버지고 소득주도 성장은 아버지가 품은 자식이라는 얘기다. 맞는 말인가.
소득주도 성장은 저임금 노동자와 가계의 소득을 끌어올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원래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주창한 ‘임금주도 성장’이 뿌리다. 이 이론이 한국에 들어와 소득주도로 화장을 고쳤다. 한국에는 5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가 있다. 소득주도라는 더 넓은 개념이 등장한 이유다.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는다. 이 결과 기업의 생산이 증가하고 투자가 늘어난다.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은 더 증가한다. 이론대로라면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소득이 늘어나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가 일자리를 만들고, 어떻게 소득을 늘리냐는 점이다. 정부 주도로 만든 일자리는 임시방편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증대시키는 건 대부분 민간의 몫이다. 소득주도 성장 이론의 흠결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할 수 없는 법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임금을 더 주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퍼레이드는 그렇게 나왔다.
이 결과 한계 선상에 놓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정부의 개입을 만병통치약으로 본 소득주도 성장론의 부작용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투수를 바꿨다. 소득주도 성장의 이론적 기틀을 쌓았던 교수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강판당했다. 대신 관료 출신인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가 마운드에 올랐다. 새 경제 수석의 취임 일성은 “포용적 성장”이었다.
포용적 성장은 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OECD 등 국제기구가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이론이다. ‘골고루 잘 살자’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졌다. 빈부 격차는 성장의 걸림돌이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저소득층의 소득도 는다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가 사라졌다.
지금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총수요 진작 및 경기 활성화를 꾀하는‘분수 효과(Trickle-up effect)’가 필요해졌다. 성장과 분배는 별개가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두 바퀴다.
어찌 보면 소득주도 성장과 포용적 성장이 가는 길은 비슷해 보인다. 그건 겉 포장만 그럴 뿐이다. 이론적 배경과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다.
포용적 성장의 핵심은 시장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 임금이나 가격 결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경쟁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정부가 나서 최소화해야 한다고 본다. IMF는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포용적 성장 확장하기’ 보고서를 제출했다. 경쟁에서 밀린 소외 계층을 위해 나랏돈을 풀어 교육받을 기회를 보장하고, 건강권과 금융 접근권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최저임금 등 1차적 분배에 개입하고 있다. 이걸 포용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득주도 성장에 당의 입혀 포장만 바꾼다고 경제가 나아지는 게 아니다. 경제 성장의 필수조건은 생산성 향상이다. 지금 필요한 건 성장 앞에 붙는 형용사 고쳐 쓰기가 아니다. 규제 완화나 노동 개혁과 같은 효율성 높일 혁신이 급선무다.
김종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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