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승태 행정처, 대법·헌재논리 엎고 '박근혜정부 입맛 맞추기'

2018. 7.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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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초반에 법원행정처가 문건을 작성한 배경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행정처가 '소송을 각하하거나 기각하라'는 결론을 낸 문건이 작성된 시점은 정식 재판 시작보다 20여일 앞선 1월4일이다.

대법원도 2012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신일철주금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불법적인 식민 지배 시절 발생한 인권침해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게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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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송 각하·기각 계획 마련
일본 상대 조정신청 위안부 12명에
법원, 12·28 이틀 뒤 조정 불성립 결정
정식재판 넘겨 신속매듭 시도
대법·헌재, 대일 배상청구권 인정에도
행정처는 한국 재판 부적합성과
청구권 소멸 논리 주장 펼쳐

[한겨레]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맨 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12·28 합의’(2015년 12월28일)→조정 불성립(12월30일)→행정처 ‘재판거래’ 문건(2016년 1월4일)→1심 민사소송 시작(1월2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초반에 법원행정처가 문건을 작성한 배경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피해자들은 2013년 8월 조정신청을 냈지만,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으며 2년 넘게 발이 묶여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며 ‘위안부’ 문제 논의를 봉쇄하자, 서울중앙지법이 기다렸다는 듯 이틀 만에 ‘조정 불성립’을 선언하고 정식 재판에 넘긴다. 해당 소송은 이듬해 1월28일 정식 재판에 회부된다.

행정처가 ‘소송을 각하하거나 기각하라’는 결론을 낸 문건이 작성된 시점은 정식 재판 시작보다 20여일 앞선 1월4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선언을 고스란히 수용한 셈이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 과정에 대해 “행정처가 청와대에 ‘절차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조정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 짓고 소송은 각하·기각하라는 ‘시그널’(신호)을 하급심 재판부에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헌재·대법 논리도 뒤집으려 했다 게다가 행정처가 내세운 논리는 국제사회 기준 및 사법부 판결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행정처가 소송의 요건을 문제 삼기 위해 내세운 ‘주권 면제’에 대해 이탈리아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199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제한적 범위이긴 하지만 “외국 정부의 사법적 행위에 대해 한국 법원도 심판할 수 있다”고 했다. 첨예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에서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었던 상황이다.

행정처가 피해자들의 요구를 ‘기각’하는 명분으로 삼은 한-일 청구권 협정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위안부’ 문제를 일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 보고,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대해 배상청구권을 갖는다고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도 2012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신일철주금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불법적인 식민 지배 시절 발생한 인권침해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게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언했다. 행정처가 최고법원의 판결과 결정을 뒤집으면서까지 정부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하급심에 ‘이식’하려 한 셈이다.

■ 피해자 절반 숨져…‘징용 사건’과 판박이 ‘12·28 합의’에 대한 사회 전반의 비판이 거셌던데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법원도 해당 소송의 결론을 미루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배씨 등이 낸 소송은 3년째 1심 법원에 계류 중이다. 심리가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그사이 소송을 낸 12명 가운데 배씨를 포함한 6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6년 말 곽예남씨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이들 중에서도 3명이 숨졌다.

이런 구조는 법원이 ‘강제징용’ 소송에서 취해온 입장과 비슷하다. 대법원은 스스로 한차례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같은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이 별다른 이유 없이 5년 넘게 결론을 미루고 있다. 그사이 피해자 9명 중 7명이 숨졌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27일 뒤늦게 ‘강제징용’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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