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난민 환영 도시에서 반난민 도시로 변한 마체라타의 비극"

이희경 입력 2018.07.30. 17:06 수정 2018.07.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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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사건 가해자 루카 트라이니. AP통신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13년만 해도 0.6%에 머물렀던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는 이제 반(反)난민 정서가 득세하는 도시로 변했다. 마체라타는 2020년 문화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해 대규모로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을 세웠던 곳으로 이민자에게 열린 도시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나이지리아 마약상의 10대 여성 살인 사건, 이에 분노한 극우 청년의 총격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지난 3월 치러진 총선에서 극우 정당 ‘동맹’에 대한 지지도가 21%까지 치솟았다. 이민자 등 외부 세력을 적으로 삼아 세력 확장을 꾀하는 극우 정당의 정치적 프레임 속에 마체라타는 급속히 분열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극우 정당의 상징적인 장소로 부상하고 있는 마체라타를 통해 반난민 정서가 어떻게 생겨나 확산했고, 이런 정서가 마을 공동체를 어떻게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지 분석했다.

마체라타는 라우로 로시 오페라 극장 등이 유명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또 관용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여 2013년 중앙 정부로부터 통합 우수 지역으로 선정됐다. 가톨릭 주교가 “이 지역 주민들의 DNA에는 타인을 환영하는 영혼이 배어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13년 0.6%에 그쳤던 배경이다. 이런 지역 특성을 바탕으로 로마노 카란치니 마체라타 시장은 지난해 말부터 ‘친근한 마체라타’라는 표어를 내걸고 2020년 ‘이탈리아 문화 수도’ 유치를 공언하며 지역 경제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 마스트로피에스트로의 엄마가 지난 5월 로마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모습. EPA통신

하지만 총선을 앞둔 지난 2월1일 18세 소녀 파멜라 마스트로피에트로가 토막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체라타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경찰에 따르면 마약 치료를 받고 있던 마스트로피에트로는 지난 1월29일 치료 센터를 나와 주로 이민자들이 마약을 파는 대표적인 장소인 ‘디아즈 가든’으로 갔다. 이곳에서 마스트로피에트로는 2014년 8월 이탈리아에 건너 온 나이지리아 출신 이노선트 오세갈레로를 만났다. 오세갈레로는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약 밀매업을 하며 이탈리아에 불법 체류하던 처지였다. 이들의 만남 이후 사흘 만에 마스트로피에트로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오세갈레로의 아파트에서 피 묻은 그의 옷이 압수됐다. 경찰은 지난달 오세갈레로를 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은 극우 정당에게 놓칠 수 없는 호재였다. 마테오 살비니 극우 ‘동맹’의 대표는 “이 벌레는 이탈리아에서 뭘 하고 있는가? 전쟁을 피해서 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탈리아에 전쟁을 가져왔다”는 혐오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반난민 정서를 자극했다. 그는 아울러 불법 이민자가 직업을 뺏어가고 있다며 길거리에서 이들을 집단적으로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30%가 넘는 최악의 실업률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청년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발언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좌·우 진영의 표를 모으기 위해 정당들은 중도를 표방하기 마련이지만 동맹은 이 사건을 이용해 더욱 분노를 조장했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2월3일 루카 트라이니가 총을 발사한 이탈리아 마체라타의 한 음식점의 모습. 뉴욕타임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평소 살비니를 ‘대장’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역도선수 출신 루카 트라이니(28)가 보복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트라이니의 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2월3일 라디오를 통해 마스트로피에트로 사건을 접한 뒤 이성을 잃고 부모님 자택으로 가 총알 50발과 권총을 확보해 디아즈 가든으로 향했다. 가든 인근 식당, 민주당 당사에서 남성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그는 마스트로피에트로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애도를 표한 뒤 자신을 해고했던 식당으로 가 매니저 등을 향해 총을 쐈다. 6명의 남성이 총에 맞았는데 이들은 모두 가나, 말리, 나이지리아 출신의 흑인이었다. 명백한 혐오 범죄였지만 살비니는 폭력의 부당함을 비난하면서도 “걸러지지 않은 이민자들이 혼돈과 분노, 마약 거래, 절도, 강간과 폭력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잇따른 비극을 활용한 동맹은 결국 마체라타에서만 21%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총선에서 민주당 등 기성정당을 눌렀다.

마체라타에서 발생한 이 사건들에 영향을 받아 2020년 문화 수도로 도약하겠다던 카란치니 시장의 목표는 물거품이 됐다. 더 큰 상처는 마체라타에서 이민자들을 배제하는 정서가 확산하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마스트로피에트로의 장례식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찾아온 나이지리아 출신 공무원이 참석을 거부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트라이니 총격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 모두 마약과 관련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는 트라이니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여론이 퍼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카란치니 시장은 유대인을 차별하고 배제했던 나치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퍼졌던 상황을 거론하며 “마체라타는 현재 엄청난 어려움과 불확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NYT는 “유럽의 역사는 피의 역사였고, 도피처가 된 건 최근의 일인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잊고 있다”며 “마체라타의 변화는 이민 정책 등을 중심으로 EU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현주소를 (집약해)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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