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취재일기] 청와대의 조문 편가르기

최민우 2018. 7. 3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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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정치팀 기자
28일 별세한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빈소는 부산에 차려졌다. 서울서 꽤 먼 거리지만 청와대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9일 빈소를 찾은 조국 민정수석은 “사적으로 제 후배의 아버님”이라며 “지금까지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조 수석은 박종철 열사의 혜광고·서울대 1년 선배다. 오후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부산을 찾아 “당연히 와 봐야 한다”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는 아버님의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가고, 주름이 깊어지는 날들을 줄곧 보아 왔다”며 “박종철 아버님은 깊은 족적을 남기셨다”고 추모했다.

노회찬 전 의원이 목숨을 끊었을 때도 청와대는 애도했다. 장례 첫날인 23일 한병도 정무수석과 송인배 정무비서관, 24일 조국 수석, 25일 임종석 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장하성 정책실장 등이 잇따라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에서 조 수석은 오열했고, 임 실장은 “대통령도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노 전 의원 사망 소식에 SNS 라이브 방송 출연을 취소했다.

23일 경북 포항 마린온 헬기 사고 영결식에 찾아온 김현종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오른쪽). [연합뉴스]
이런 청와대의 애통함은 1개월 전 김종필 전 국무총리 사망 때와는 온도 차가 크다. 당시 해외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이 귀국 후 국민 통합 차원에서 JP 빈소를 찾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결국 가지 않았다. 청와대에선 한병도 정무수석의 의례적 조문이 전부였다. 훈장 추서엔 “전직 총리라서 드렸다”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보수 정치원로이자 5·16의 주역을 추모하고 싶지 않은 청와대의 심사는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마린온 헬기 사고로 순직한 해병대 장병 5명은 왜 방치했을까. 17일 사고 이후 청와대의 첫 반응은 “우리 수리온 헬기의 성능과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김의겸 대변인의 브리핑이었다. 상(喪) 내내 빈소를 외면하던 청와대는 뒤늦게 23일이 돼서야, 그것도 수석이 아닌 김현종 국방개혁비서관 한 명을 포항 영결식장에 내려보냈다. 누가 봐도 면피성이었다. 같은 날 세상을 등진 노 전 의원 조문과 대조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요즘 청와대의 자세는 “내 편 아닌 이들의 죽음엔 별 관심 없다”는 것처럼 비친다. 세간엔 “청와대가 ‘조문 편가르기’를 한다”는 얘기가 적잖다.

최민우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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