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태움' 논란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 면접서 "어떻게 버틸거냐?"

허진무 기자 2018. 7. 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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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자료사진

간호대학에서 간호사의 꿈을 키워온 ㄱ씨는 이달 초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 채용면접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질문을 받았다. 면접관은 ㄱ씨에게 “올 초 우리 병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죠”라고 물었다. ㄱ씨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정말 그 사건을 물어보는 걸까?’ 겨우 ‘지원자 미소’를 유지한 ㄱ씨가 에둘러 답변하자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그럼 본인은 어떤 방법으로 버틸 거죠?”

서울아산병원 면접관들이 신입 간호사 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우리 병원 신입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지난 2월15일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 박모씨(27)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질문한 것이다. 당시 유가족과 지인은 병원의 ‘태움 문화’가 박씨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가 교육을 명목으로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ㄱ씨는 3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다른 병원도 아니고 서울아산병원에서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게 씁쓸했다. 간호학을 공부하는 내내 꿈꿔온 병원이다. 지원자에게 ‘너는 안 그럴 거지?’라고 묻는 것 같아서 슬펐다”라고 말했다.

다른 조에서 면접을 본 지원자 ㄴ씨는 “면접관이 옆자리 지원자에게 첫 질문으로 ‘그 사건을 알고 있냐’, ‘지원할 때 주변에서 뭐라고 하지 않았냐’,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봤다. 제가 질문을 받은 것도 아닌데 엄청 당황했다. 면접이라는 비공개적인 자리에서 ‘을’인 지원자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졌다”라고 했다. 다른 지원자 ㄷ씨도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 사건을 질문해서 당황했다. 간호대학을 다니며 ‘태움 문화’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다. 만약 합격한다고 해도 서울아산병원에는 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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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한 간호사 채용정보 익명게시판에는 해당 병원 신입 간호사 지원자가 “면접에서 ‘병원에 아주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면접관이 ‘신입 생활 어떻게 버틸 것인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버틸 것인지’ 등 질문을 이어갔다”라고 글을 적었다. 다른 지원자들도 “저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었는데 해당 질문이 나오자마자 표정이 확 굳었다”, “그 질문 받아서 굉장히 난감했다. 스트레스 관리하겠다고 하자 구체적인 방법을 계속 질문했다. 그런 걸 직접적으로 묻다니”라고 댓글을 남겼다.

지난 30일 페이스북 제보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는 해당 면접울 두고 “무례하다. 당신들 정말 무례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대체 학생들의 입에서 무슨 대답을 쥐어짜내고 싶었던 걸까.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중시해야 할 병원이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이토록 무례하다”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2000여명의 추천을 받으며 논란이 됐다.

지난 3월 경찰은 박씨에 대한 ‘태움’ 가해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시민단체 등 ‘박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고용노동부에 서울아산병원이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고발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사실 확인 결과 한 면접관께서 일부 조에 그런 질문을 했는데 본인 스스로 부적절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이 간호사 내부 문화 개선에 대해 여러 방안을 찾으면서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면접관이 간호대학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취지에서 질문한 것이다. 병원도 면접관이 해당 질문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판단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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